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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9. 2021
펫로스 증후군에서 살아남는 법
죽음의 망각으로 시작한 반려 생활
결혼 준비 과정에서 싸움 한번 없었던 우리 부부가 5년간 합의점을 찾지 못한 부분이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반려견이었다. 나와 남편은 둘 다 개를 아주 좋아해서 결혼하면 꼭 개 한 마리를 기르자고 수없이 약속했다.
결혼생활을 상상할 때 널찍한 소파 위에 얌전한 개가 한 마리 앉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예쁜 그릇에 고소한 냄새가 나는 사료를 담아주면 눈을 반짝이며 달려와 아작아작 씹는 모습이며, 잔디밭 위에 피크닉 용품을 펼쳐두고 그 앞에서 개와 남편이 원반 던지기를 하며 노는 모습이 있었다. 그 평화와 풍요의 풍경. 오히려 아이를 키우는 상상이 아니라 개가 있는 풍경을 상상한 걸 보면 무의식이 내게 반려 생활을 점지해준 게 아닌가 싶다.
이렇듯 개를 키우는 풍경을 상상하고 설렜던 만큼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약속 이행을 요구했다. 이제 결혼을 했으니 개를 키우자며 당장 지갑을 들고 어디든 가서 개를 데려올 준비태세를 갖췄다.(말은 이렇게 썼지만 우리는 펫샵에서 강아지를 산 적이 없다.)
그렇게 입에 ‘멍멍이’ 소리를 달고 사는 남편을 보면서도 5년간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이유는 나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친정에서는 항상 개를 키웠다. 생애 첫 반려견 아심이, 부모님 지인이 분양해준 흰둥이, 임시 보호를 맡았던 초롱이, 길에서 데려온 유기견 짐보 등등 많은 개가 우리 집에서 살았는데 가장 마지막에 키운 개는 여름이었다.
다른 개들은 성견으로 왔다면 여름이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우리 집에 온 갓난쟁이였다. 그동안의 개들은 성견으로 우리 집에 와서 마당에서 살았기 때문에 전혀 몰랐던 개의 성장 과정을 여름이를 통해 하나씩 알게 됐다.
개도 사람처럼 이갈이를 하고, 배변을 ‘훈련’한다는 점, 사람이 먹는 음식 아무거나 입에 넣으면 안 되고, 사람처럼 예방접종을 한다는 것. 잘 때는 꼭 내 방으로 찾아와 내 팔을 베고 한 이불 덮고 잤고, 아침이면 나와 함께 일어나 펄쩍펄쩍 뛰며 하루를 시작했다. 모든 게 생소했고, 즐거웠다.
여름이와 찍어둔 딱 한 장의 사진. 필름카메라를 쓰던 시절.하지만 여름이와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여름이가 우리 집에 온 지 1년 반쯤 지난 무렵이었다. 조끼 형태의 가슴줄을 착용하고 나와 바깥 구경을 나온 여름이는 좋다고 날뛰었고, 그만 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조끼에서 줄이 떨어져 나가고 하필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우리 중 여름이가 차도로 뛰어나갔다. 그 뒤를 따라가며 목격한 것은 달려오던 택시에 부딪혀 공중에 붕 뜨던 여름이의 마지막 생명이었다.
여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데는 1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여름이를 따라 차도에 뛰어들었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여름이를 들어 올렸을 땐 이미 사후강직이 시작되고 있었다. 자동차 경적이 귓가에 왱왱 울려왔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여름이를 잃었다. 숱한 눈물을 흘렸고, 시간이 흐를수록 추억은 흐릿해졌다. 그런데 수년의 세월이 흘러도 한 번씩 여름이의 사진을 목격하거나 강아지를 잃은 사연을 접하면 반사작용처럼 눈물이 흘렀다. 슬프다거나 가슴이 아프다는 감정을 인지하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렀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울음이 지속됐다.
상실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질 줄 알았건만 십 년이 지나도록 달라진 건 없었다. 어린 여름이를 떠나보낸 부채감과 죄책감은 애초에 자존감이 높지 않은 나를 한없이 나쁘고 무책임한 인간으로 가뒀다.
‘내가 여름이를 데리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혹시 그 가슴줄이 아닌 다른 줄을 샀더라면 여름이는 지금 살아있을까?’
‘애초에 내가 키우지 않았더라면.’
무수한 ‘만약’이 나를 괴롭혔고, 종종 여름이는 꿈속에 등장해 평소처럼 애교를 떨었다. 그 지독한 세월이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인지조차 못 한 채 나는 15년을 살았다.
여름이가 떠나고 15년쯤 지난 시점은 남편과 결혼한 지 어느덧 5년 정도 지난 무렵이었다. 해결되지 않은 펫로스 증후군을 안은 채 한동안 ‘결혼하면 개를 키우자.’, ‘우리 집에 개가 한 마리 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린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 걸까. 여름이를 떠나보낸 우울감과 상실감을 15년째 키워왔으면서 정작 스스로에게 ‘이제 괜찮아질 때가 됐는데 왜 이래?’라며 채찍질한 꼴이었다.
곁을 내어줬던 동물의 죽음, 가족과 다를 바 없는 존재의 죽음은 살아남은 자를 옭아맨다. 그 선량한 동물의 눈길과 행동을 더는 볼 수 없음에 가슴을 짓이기는 상실감을 경험하고, 어떤 개를 키우든 나보다 앞서 떠나게 되는 수명의 이치에 절망하고야 만다.
나는 가끔 남편에게 “당신보다 딱 3일만 더 살고 싶다.”라고 말한다. 남편이 사망하면 장례를 치러주고 떠나겠다는 심산이다. 남편 장례까지는 신경 쓰지만, 솔직히 내 장례야 될 대로 되라는 식이니 얼핏 모순이다.
그러면서도 어렴풋이 나는 죽음을 회피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남편이 나 없이 홀로 사는 것이 안타까워 싫으면서도, 그보다 조금 더 깊은 마음속에는 소중한 이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을 견디고 회복하며 살아갈 자신이 없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 남편의 부재를 견딜 도량은 장례를 치르는 고작 3일뿐이다.
그런 연유로 여름이를 잃고 15년간 아파하며 반사작용처럼 울어 재끼던 나는 결혼 전 ‘개 한 마리 꼭 키우자.’ 던 남편과의 약속을 피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를 앞서 떠나갈 개 한 마리, 다시금 내게 상실과 슬픔을 떠넘길 존재.
다시 개를 키울 수 있을까.
잊을 수 없던 반려동물의 죽음, 그리고 죽음이 주는 공포와 우울감을 15년간 앓았던 나. 죽음을 잊지 못한다면 혹은 인정하지 못한다면 결코 새 생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구멍 난 인생.
아임 뽀시래기 모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