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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Sep 16. 2021

파양에 꽃길은 없다

파양견의 첫 견주들은 지금 이 시간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모카를 데려와서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거나, 1분 1초도 빠짐없이 행복했다고 말할 순 없다. 데려온 지 얼마 안 된 몇 개월간 기본적인 배변훈련과 어린 강아지의 안전과 건강을 살피느라 나는 2시간 넘게 외출한 일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따금 모카가 오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도 있었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그 정도의 불평 없이 단 1초도 후회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에겐 오히려 신뢰가 가지 않는달까. 


어쩌다 그런 감정이 들었어도 모카를 파양하지 않은 건 몹시 당연한 판단이었다. 강아지를 키우기로 마음먹고 데려올 땐 어떤 모진 시간이 닥쳐도 견디고 책임질 각오가 필요하다. 배변훈련이 힘들어서 손의 피부가 다 벗겨지고, 하루에 몇 번씩 놀아주고 밥을 먹이느라 생활 패턴이 깨지더라도 새 생명을 데려올 땐 그만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을 입양하거나 낳더라도 마찬가지다. 그게 바로 이성의 힘이다. 

그럼에도 모카를 키우며 주변에서 파양에 관한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들었다. 직접 만나지 않은 온라인에서는 더 숱하게 봐왔다. 자주 접속하는 지역 카페에는 강아지를 분양받았는데 배변훈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키워줄 사람이 있다면 보낸다는 글이 수차례 올라온 적 있다. 당시 그 강아지는 고작 생후 8개월이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 보호자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을 그 강아지는 사실 보호자가 자길 어디에 보내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게 돼 키워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은 더욱 많이 봤다. 우리나라에 강아지 털 알레르기를 보유한 사람이 그리 많은 줄은 몰랐는데, 분양받기 전 알레르기 검사 한 번 하는 게 그리 어려웠나 생각하면 화도 조금 난다. 나도 알레르기 검사를 해봤는데 몇만 원이면 자세히 결과를 알 수 있었다. 강아지를 데려오기 전 동네 병원에 가서 검사 한 번 했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사실 그들도 나도 이미 알고 있다. 알레르기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파양된 강아지가 운이 좋아서 새 견주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알게 된 어떤 사람은 길에서 유기견을 발견해 주인까지 찾았는데 주인이 키울 형편이 못 된다며 그냥 버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유기견을 발견한 사람이 본래 키우던 강아지까지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제일 어처구니없는 경우는 비숑을 분양받은 사람이 비숑 치고 다리가 길어서 순종이 아닌 것 같다며 파양한 경우다. 다리가 긴 게 파양의 원인이 된다는 게 상식적일 수 있을까.


강아지를 파양하는 사람들의 핑계는 닮은 구석이 있다. 외로워서 강아지를 데려왔는데 막상 키워보니 강아지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은 게 미안해서, 기존에 키우던 강아지와 사이가 너무 안 좋아서,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키워보니 자신은 부족한 사람인 걸 알게 돼서 등의 사유다. 혹은 사유를 밝히지도 않고 키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만 말하기도 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강아지에게 미안해서 파양하는 듯, 강아지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길 원하는 마음에 파양하는 듯, 자신의 여리고 착한 마음을 어필하며 정당성을 만들고자 한다. 

반려견을 키우려면 이 생명의 평생을 책임질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별 노래에서도 제일 우스운 게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소리다. 강아지에게 미안해서 파양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모르는 생명을 버리면서 “이게 다 너에게 미안해서 그래.”라고 말하는 잔악함. 그런 사람들은 훗날 결혼해서 자녀를 낳은 다음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고 육아가 힘들면 다른 집에 키워달라고 보낼 것인가. 


이렇게 말을 하면 일부는 되묻는다. 

“사람하고 개가 같니?”


논리가 없는 사람들의 최종 방어는 사람과 개가 다르다는 소리뿐이다. 맞다, 사람과 개는 같을 수 없다. 강아지는 길에서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새끼를 버리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힘들어지면 강아지를 다른 가정에 버린다. 그래 놓고도 자신의 끼니는 거르지 않을 것이다. 그게 사람과 강아지의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또 말이 좋아 파양이지, 그들은 잠깐 강아지를 키우는 기쁨을 맛본 후 다른 가정에 유기한 것과 다름없다. 강아지 파양과 유기는 같은 의미다. 우리나라는 몇 년째 유기견 문제가 심각한 편인데, 미안하다는 핑계와 눈물 뒤에 숨어서 오늘도 유기견의 수에 1을 더하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글을 쓰던 중 궁금해져서 포털사이트에 강아지 파양을 검색해봤다. 아니나 다를까. 파양한 강아지의 재입양을 주선하는 업체의 홍보글이 가득하다. 그들은 파양이 강아지에게 꽃길이라는 둥, 행복한 앞날이라는 둥 어처구니없는 문구를 남발한다. 이런 어이없는 상술은 미안하다는 핑계를 대는 견주들과 찰떡궁합이다. 미안해서 파양하겠다는 견주와 그런 파양견을 비싼 값에 받아 다시 재입양을 하겠다는 업체는 서로의 죄책감을 상쇄한다. 


물론 파양된 강아지가 새 가족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경우도 있다. 다만 그 아름다운 비율을 전체 파양견과 유기견 수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그 적은 확률에 기대 오늘도 내가 키우는 강아지를 다른 곳에 보내고 싶어 하는 견주에게 난 꼭 이 말을 하고 싶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생각은 단순히 파양이 아니라 살해 계획에 다름없다고 말이다. 


파양된 강아지가 새 가족을 못 만나고 업체나 보호소에 들어가 있으면 열악한 환경에서 건강을 해치고 위축된 채 아픔을 견디며 생을 연명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보호소나 임시보호처에 들어가면 다행이다. 거리에 유기된 채 지자체에 신고되면 며칠 뒤 안락사를 당하게 되고, 거리에서 생활하며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다른 동물에 물려 다치고 장애가 생기는 둥 처절한 삶을 버텨야 한다. 그렇게 될 미래를 알면서도 강아지를 다른 곳에 보내거나 버리려는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동물의 살해를 계획하는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모카 한복 장만했습니다:)

독일에서는 만 18세 이상의 사람이 정부가 허가한 동물보호소에 방문해 반려동물 기본상식과 훈련 수업 등을 이수해 최종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입양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처럼 돈을 얼마쯤 내면 누구나 반려동물을 데려가는 구조와 달리 반려인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동물을 키울 수 있는 구조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시험과 절차가 필요하다.


그런가 하면 독일에서는 오래전부터 반려동물 보험과 보유세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반려동물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 적절한 의료비만 지출하고, 보유세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환경 조성에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반려동물 보유세를 걷어 유기견 관리에 쓰인다고 해서 논란이 된 적 있다. 강아지 버리는 사람 따로, 버려진 강아지 보호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꼴이다. 


솔직히 보유세를 내고 그게 제대로 반려동물 복지와 환경 조성에 쓰인다면 얼마든 낼 의향이 있다. 지금처럼 타인이 저지른 사고 뒤처리에 쓰이거나 어디에 쓰이는지 깜깜무소식 세금이 될 게 아니라면 반려인 대부분이 동의할 부분이다.


반려 생활의 시작은 누구나 비슷하다. 잘 키우겠다, 예쁘고 행복한 강아지로 만들어주겠다, 사랑만 주겠다며 데려올 것이다.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반려 생활을 경험하면서 숨겨왔던 이기적 본성이 두각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그 과정에서 죄 없는 동물들만 희생된다. 그런 종류의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줄 명분도 없다고 본다. 자신이 선택한 동물을 내다 버리고 편안함을 취할 인간에게 존엄을 지켜줄 필요가 도대체 어디 있을까. 


가끔 상상해본다. 내 주변에 새 가족을 찾은 파양견, 그들의 첫 견주들은 지금 이 시간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행을 다니며 까르르 웃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인간관계를 관리하고, 게임을 하거나 콘텐츠를 보며 유희를 즐길 게 분명한 그 사람들을. 그리고 한때 그런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버려져 지옥을 경험했을 파양견의 과거를 생각하면 사람의 민낯이란 도대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 한탄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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