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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Oct 10. 2023

탈모 운명의 수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스로 만족하는 외모의 선을 지켜내는 성실함

머리카락이 못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 사실을 20대부터 알아차렸다. 머리카락이, 머리숱이 못생길 수 있고 그 못생김이 얼굴과 전체적인 이미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젊은 시절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일단 나는 어지간한 머리카락의 단점을 모두 갖췄다. 가늘고 힘없는 머리카락, 빈약한 머리숱, 악성 반곱슬. 빈티 나는 스타일링에 최적의 조건이다.(그런데 살다 보면 이 조건을 가진 한국인이 꽤 많다.)


특히 빈약한 머리숱은 탈모라는 운명의 수레바퀴 주변을 얼쩡거렸다. 뭘 모를 땐 탈모는 나이 든 남성에게만 벌어지는 사건인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있나. 여성 탈모도 아주 많다. 일단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가 들면 머리숱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또 출산한 여성은 나이와 관계없이 탈모를 경험하는 이가 적지 않고, 남성의 경우 20대부터 이마에 M자가 도드라지거나 동전만 한 크기의 탈모가 시작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세상에, 살다 살다 내가 탈모를 걱정할 줄이야.


어느 날부턴가 거울을 보면 뭔가 빠져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뭐가 빠진 건지, 뭐가 변한 건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길을 걷다 바람이 불면 뭔가 빠져있는 인상이 강해지고 평소보다 얼굴이 커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저 나이가 들며 얼굴이 변한 건가 싶다가도 알 수 없는 휑한 기분을 백 퍼센트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다 미용실에 방문한 날이었다. 단골 미용사는 내 머리를 살펴보며 담담하게 폭탄선언을 했다.

“탈모 왔었네요. 다행히 머리가 새로 나고 있어요.”

“제가요? 제가 탈모요? 저 아직 30대인데요?”

“머리가 전반적으로 빠지고 새로 나고 있어요. 아기 배넷머리처럼 가늘게 나오고 있어요.”


그렇다면 평소 뭔가 빠진 것 같다고 느낀 그게 바로 머리카락이었단 말인가! 충격을 받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내게 미용사는 위로를 건넸다.

“그래도 다시 나오는 게 어디예요. 머리 새로 안 나면 탈모 클리닉 가셔야 해요.”

그날 머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충격이 가시지 않아 그대로 소파에 누워 끙끙거렸다. 먼 미래에 파파 할머니가 되면 머리가 듬성듬성 빠질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30대 후반부터 탈모 운명의 수레바퀴가 회전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되짚어보면 조짐은 있었다. 머리를 감을 때 유난히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던 날들, 스트레스로 잠 못 이루던 날들. 그럴 때 안 그래도 힘없고 연약했던 머리카락들이 두피와 이별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특히 출간을 준비하며 출판사에 초고를 넘길 때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데 뭔가 빠진 듯 휑한 기분은 이때 가장 강렬해진다. 초고를 넘길 땐 세상에서 가장 글 못 쓰는 작가, 제일 재미없는 글쟁이가 된 기분에 사로잡혀 3일에 하루 잘 정도로 불면증이 심해진다. 잠 못 자고 스트레스가 치솟고 하루에도 수십 번 열을 내니 머리카락이 못 참고 탈출할 만하다.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 패턴은 출간 준비 시기마다 어김없이 찾아왔고, 초고를 넘기고 한두 달 이내에 다시 머리카락이 나와 포슬포슬 머리통을 감싸기 시작했다. 지금껏 4권의 책을 냈고(개정판 제외) 4번의 탈모를 경험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샴푸는 모두 탈모방지용 샴푸로 바꿨다. 또래들과 만나면 혹시 탈모샴푸를 쓰는지 묻고 제품 리뷰를 공유한다. 물론 탈모샴푸를 쓴다고 탈모를 완벽하게 예방할 수는 없지만 안 쓰는 것보단 나을 거라 믿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탈모의 운명이 시작됐음을 인정한 뒤로 줄곧 주장해 왔던 두 가지 의견을 수정해야 했다. 하나는 “탈모가 오면 머리 길러서 가리느라 애쓰느니 빡빡 미는 게 낫다.”라고 주정하던 부분이다.


탈모가 종종 찾아오고 예전보다 머리숱이 적어졌다는 이유로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민머리의 나. 딱히 힙하게 생기지도, 모델처럼 늘씬하지도, 시크한 분위기도 없이 둥글고 푸근하게 생긴 민머리의 나. 상상도 할 수 없다. 머리 빠지면 빡빡 밀어버리란 말은 너무 무책임한 제안 아니었을까.


또 하나는 “염색이나 파마로 머리를 괴롭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늙어갈 것”이라고 주장한 부분이다. 그런 당돌한 주장은 당시의 내가 늙어보지 않아서 할 수 있었던 말이었다. 젊은 시절이라 그런 말도 가볍게 했던 거다. 자연스러운 노화, 멋진 말이라는 것 인정한다.


하지만 막상 머리숱이 줄고 흰머리가 나면 그리 자연스럽고 멋지지 않다. 나이 듦에 따른 머리카락의 변화는 사람을 힘없어 보이게 만든다. 툭 치면 억 하고 쓰러질 듯 허술해 보인다. 특히 머리숱이 줄면 굉장히 가난해 보인다. 거기에 반곱슬까지 있다면 빈티가 최고조에 이른다. 그게 바로 나다.

조금 나이 들어보니 늙는다는 게 단순히 눈가에 인상 좋은 주름 하나 늘어가는 게 아니었다. 현실의 노화는 머리숱이 적어지고 그걸 감추느라 파마를 쉴 수 없는 거였다. 얼굴에는 그늘이 진 것처럼 기미가 생기고 아침에 낀 마스크의 자국이 점심 먹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 현실이었다. 운동으로 군살 찌는 걸 예방하는 데는 한계가 너무 많고, 어쩌다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잘 때까지 속이 울렁이는 그런 반응이었다.


최근에는 숱이 적어지고 힘없이 늘어지는 머리 때문에 특별한 드라이기를 장만했다. 그 제품으로 정수리에 볼륨을 넣을 수 있고 웨이브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숱 없는 머리에 마법 같은 변화는 없지만, 어느 정도 감내하더라도 쓸만한 제품이다. 대신 스타일링을 하는 동안 정수리가 뜨거웠다 차가웠다 고생할 뿐이다.


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머리가 빠지면 밀고, 흰머리가 나면서 회색이 감도는 머리를 견디라고 무심하게 대응하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는 나이에 맞는 적응방법을 배워가는 시절의 초입이라 느낀다.


그 적응방법은 젊고 예뻐 보이려 안간힘을 쓴다기보단 스스로 만족하는 외모의 선을 지켜내는 성실함이다. 20, 30대로 보이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단정하고 따뜻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 그로 인해 예전보다 조금 공들여 머리를 다듬고 건강을 챙기는 부지런함이다. 그걸 누가 노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흉볼 수 있을까.

누가 뭐라든, 누가 쳐다보든 아무래도 내 외모를 가장 신경 쓰고 소중히 여기는 건 나 자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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