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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Oct 03. 2023

배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남은 생에 나는 또 무언가 완성하겠지.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는다고들 한다. 그래서 공부도 때가 있다고 한다. 그 말이 참 전형적이라 싫었다. 그저 뜻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고 노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핑계라고 믿었다. 그러니 나이가 들었어도 그 핑계에 젖어들지 않으려면 나는 공부한 만큼 결실을 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다시 공부한다면? 아, 왜 갑자기 머리에 석회가 낀 것처럼 굳은 느낌이지?


마흔에 가까워지며 새로운 공부나 기술에 도전하는 사람이 주변에 적지 않다. 흔히 제2의 인생을 준비한다는 명분으로 새로운 도전을 한다. 흔한 종목은 다수가 도전하는 공부는 공무원, 공인중개사 등이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베이킹 등 기술을 배워 창업하기도 한다.


이 말인즉슨 중년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년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여생을 어찌 보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재산이 많거나 투자에 성공한 파이어족이라면 일찍 은퇴하더라도 가진 것을 쓰며 여유롭게 지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소수를 제외한다면 대다수는 중년 이후가 불안하다. 불안의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면 ‘중년 이후에 뭘 먹고살아야 하나’와 ‘중년 이후 뭘 하고 살아야 하나’ 일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하기 위해 다수의 중년이 새로운 공부에 도전한다.

얼마 전 가까운 곳에 사는 언니와 담소를 나눴다. 나보다 2살 많은 언니는 금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데 희망퇴직 모집에 벌써 언니의 출생연도가 포함돼 충격받았다고 했다. 은퇴가 한참 남은 것 같았는데, 마흔두 살의 언니도 희망퇴직 대상이 됐다는 건 듣는 나도 충격이었다.


희망퇴직은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신청자가 꽤 많은 편이라 심사를 받아야 한다. 만약 희망퇴직자로 선정되면 그동안 적립해 온 퇴직금에 위로금 차원에서 나오는 추가금을 받을 수 있다. 부동산 호황기에는 그 돈으로 투자를 잘해 재산을 불린 선배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어떤 투자에도 확신이 없는 시대, 언니는 은퇴가 머지않은 나이에 계획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음을 털어놓았다.

“희망퇴직자로 선정돼서 큰돈을 받고 나와도 확실한 계획이 없다면 돈은 금방 바닥나지 않을까? 문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거지.”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고역인 중년의 초입, 나도 언니와 다를 바가 없다. 나는 뭘 하고 싶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할 말이 없다. 뭘 배우고 싶다, 하고 생각해 보면 취미 삼아 배우고 싶은 거야 많지만 제2의 인생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그 고민이 숙제로 다가오는 시기가 마흔 아닐까. 또 어떤 배움에 시도할 때 여생에 금전적 여유와 성취감을 모두 해소할 수 있는지 판단도 거쳐야 한다. 무엇을 배워야 제2의 인생에 후회가 없을지 고민해야 하고, 그 고민을 슬쩍 넘겼다간 숙제를 하지 못해 혼나는 삶을 살까 봐 두려워지고야 만다.


다들 제2의 인생을 고민하느라 두려움에 덜덜 떨며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요즘, 솔직히 나는 슬럼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어려운 터널 속에 머무르고 있다. 요즘 말로 ‘글태기’라고도 한다. PC를 켜면 망망대해 같은 흰 화면 앞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예전에 비해 쓰고 싶은 게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쓰는 삶이 좋고, 쓰는 시간은 여전히 좋은데도 그렇다. 뭘 써야 할지, 지금 내가 뭘 쓰고 싶은지 알 수 없어서 의도치 않은 침묵의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이런 글태기의 감정이 제2의 인생을 생각할 때 막막한 사람들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40년쯤 살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이 잡히고 세상을 보는 눈이 명확해질 줄 알았는데 사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하나도 모른다.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불혹에 접어들었음에도 나는 언제나 흔들리고 매혹당하고 주춤한다.

저의 첫 아크릴화랍니다. 멋있쥬?

주어진 삶이 있고, 그 마무리가 언제인지 모르기에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솔직히 그런 건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20대 내내 매진해서 30대에 또 그만한 고생을 하며 어떤 황금기를 거쳐온 지금에서 또 나아가야만 할까? 그냥 이 정도에 머무르면 안 될까? 대체 언제까지 ‘노오력’해야 할까?


성장하는 삶, 물론 좋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키다리가 돼야 하는 건 아니니까, 이 정도 키에 머무르고 싶은 사람도 있으니까. 지금에서 더 나아가고 싶지 않은 기분 역시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 삶이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다만 한 번 이룩한 수십 년 치의 노력을 다시 시작하자니 피로할 뿐이다.


지금에 머무르고 싶다, 이 정도면 좋다고 말하면서도 또 어떤 날에는 뭐라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도전과 머무름 사이에 갈팡질팡하며 매주, 매달 해내야 할 목표를 적어놓는다. 혹은 PC 앞에 앉아 전기를 낭비하며 침묵할지언정 단 한 글자라도 쓰자고 담금질한다. 열심히 마흔까지 살아왔지만, 여기가 종착지가 아니라 경유지였으니 앞으로도 노력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자신을 설득한다.


다행이라면 그 노력에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스스로 잘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모습은 좋아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온 아주심기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양파는 모종 심기에서 시작된다. 가을에 씨를 뿌려두었다가 발로 잘 밟고 건조와 비를 피해 멍석을 열흘 정도 덮어두었다가 싹이 나면 걷는다. 싹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키워서 미리 거름을 준 밭에 옮겨 심는데 이것이 아주심기다.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의미다. 아주심기를 하고 난 다음에 뿌리가 자랄 때까지 보살펴주면 겨울 서릿발에 뿌리가 들떠 말라죽을 일도 없을뿐더러 겨울을 겪어낸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
- 리틀 포레스트
저의 첫 유화랍니다. 멋있쥬?


작년 가을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려 제2의 인생에 화가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생에 금전적 도움이 되지 않을 배움이다.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씩 화실에 나가 두 시간 반 동안 그림에 푹 빠져있으면 어떤 고민도 걱정도 목표도 없이 그림 그리는 자신만 남아있다. 그 감각이 좋아 계절이 바뀌면서도 계속 나가고 있다. 완성한 그림은 성취감을 선물해 준다.


이렇듯 뭐라도 시작해 본다. 30대의 막막했던 시절 집에서 홀로 글을 쓰다 상을 받아 작가가 됐듯이, 막막한 중년의 초입에서 또다시 글을 쓰고 이제는 그림도 그린다. 이렇게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마흔이라도 뭔가 되어야겠지. 남은 생에 나는 또 무언가 완성하겠지.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다 보면 다시 싹이 트고 넝쿨이 기어오르는 듯한 생동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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