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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Oct 24. 2023

친구는 어디로 갔을까

미래에 새롭게 만날 친구들도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스물한 살 생일파티, 그날은 내 생일을 축하해 준다는 50여 명의 친구가 한 장소로 이동해 이구동성으로 생일축하곡을 불러준 날이다. 그럴 땐 으레 생일인 사람이 한턱내는 날이기 때문에 나는 그날 한 달 치 아르바이트비를 몽땅 써버렸다. 


그래도 참 즐거웠다. 기상천외하게 믹스한 생일주를 코 막고 마셨고, 그 당시 유행하던 생일불쇼를 구경했다. 호프집에서는 요란한 생일축하곡을 틀어줬고 가게의 절반 이상을 내 친구들이 채웠다. 다들 내게 좋은 말, 예쁜 말을 들려줬다. 선물 역시 50여 개가 쌓였고, 받은 케이크만 7개였다. 선물이 너무 많아서 가족의 도움을 받아 집에 실어 나르기도 했다.


요란했던 20대의 생일, 그땐 평생 북적이며 살 줄 알았다. 인간관계가 끝없이 변화하는 무형의 무언가라는 건 20대에 미리 상상할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마흔의 생일, 나는 남편이 차려주는 생일상과 생일축하 노래를 듣는다. 선물은 매년 내가 갖고 싶은 것으로 직접 고른다. 그 곁에는 추임새를 넣는 반려견이 있고, 카톡으로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상품권이나 선물교환권이 도착한다. 하지만 스물한 살 때처럼 그 많은 사람이 날 위해 한 데 모일 일은 없다. 


생일만 그랬을까. 친한 친구들과 변치 말자며 맞춘 우정 반지는 족히 열 개는 넘었는데 남아있는 건 왜 한 개도 없을까. 결혼해도 일 년에 한 번씩 여행 가자는 약속도 번번이 해왔지만, 결혼 후 친구들과 간 여행은 한 번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잊힌 약속은 어느 밤 잠이 안 와 잡생각이 많아질 무렵 희뿌옇게 떠오를 뿐이다.


학창 시절부터 20대를 지내며 우정을 나눈 친구들은 이제 모두 어디로 갔을까. 누구 하나 세상밖으로 내쳐진 이가 없는데 왜 내 곁에 있지도 소식이 들리지도 않을까. 이제 종종 연락하는 친구는 오랜 인연과 새로운 인연을 모두 합쳐 30여 명 남짓이다. 생일파티에 우르르 몰려오던 친구들과 함께 전국을 누비던 친구 중 몇은 연락이 닿지만 모든 친구들의 우정을 간직하진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 시절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혹은 친구들에게 나는 어디로 간 걸까. 모두 싸워서 틀어지거나 극적인 사건으로 멀어진 것도 아니다. 계기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누군가 먼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 외출이 어려워진다. 간혹 만나더라도 집에서 아이만 돌본 친구들은 딱히 주고받을 말이 없다.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도 각자의 직장생활과 새로운 취미생활에 몰입하며 새로운 관계를 불려 나간다. 그러다 보면 오랜 친구들보다 새로운 관계에서의 교집합이 커지고 재밌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혼을 하거나 주거지를 옮기는 등의 변화가 찾아오면 오랜 친구들과는 조금씩 느슨해지고 만다. 느슨한 관계의 끈은 흩날리다 어디론가 날아가 사라진다. 


자연스레 느슨해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가치관의 변화로 멀어지는 친구도 분명 있다. 스무 살 때부터 나와 아주 잘 맞았던 한 친구는 30대 이후 종종 충돌하곤 했다. 친구가 성적 농담을 즐기던 것을 내가 모르지도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그 농담들이 버거웠다. 30대 중반으로 향하며 친구는 회사에서 조금씩 책임 있는 직급을 갖게 됐는데 그럴수록 농담의 수위는 깊어졌다. 직장 내 후배의 몸이 닿을 때 쾌감을 느끼고, 누가 보든 말든 모니터에 낯 뜨거운 그림을 배경화면으로 걸어두는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내게 털어놨다. 그럴 때 도무지 가만히 듣고만 있기가 어려워 입바른 소리를 하면 친구 역시 불편해했다. 우리는 서로 연락하지 않고 만나지 않는 동안 평화가 유지된다는 걸 깨달았고, 이제는 안부를 묻는 것조차 어려워지고 말았다. 


자연스러운 느슨함이든, 가치관의 충돌이든 인간관계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스무 살의 내가, 서른 살의 내가 지금과는 다르듯 인간관계는 계속 변화했다. 처음엔 수가 줄어들고 멀어지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내 인간성 때문이 아닐까 의심했다. 

‘내가 못돼서, 너그럽지 못해서, 좀 더 다정하지 못해서 친구의 수가 줄어드는 건 아닐까.’

‘내가 좀 더 착하게, 잘 참아주고, 더 많이 즐겁게 해 주면 친구들이 유지될까.’

모든 게 내 탓, 모든 관계가 나 때문인 것 같던 날들이 수북하니 쌓였다. 늦가을 낙엽에 발이 빠지듯 덥석덥석 자괴감에 발목을 잡혔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있었다. 나이는 나만 먹는 게 아니었다. 나이 들며 내가 변하듯 친구들도 변했을 텐데 나 혼자 애쓰고 참아준다고 모든 관계가 유지되는 게 가능할까? 변화는 내게만 찾아오지 않는 게 분명했다. 친구들에게도 가치관과 환경과 상황의 변화가 있게 마련이고, 내가 겪은 것처럼 느슨해지고 충돌하는 시간이 분명 있을 터다. 


사실 우린 모두 비슷한 속도로 변했고 그 변화의 방향이 너무 달라서 교차하지 않았던 거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고 믿는다. 그러니 인간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건 내 가치관 속에서 홀로 경험하는 아이러니이자 뒤늦게 깨닫는 세상의 가변이었다.


오래 산다면 앞으로 살아온 만큼 더 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껏 많은 변화가 있었으니 앞으로도 그만큼의 변화가 또 있을지 모를 일이다. 끝없이 변화할 인간관계를 받아들이는 일이 20대에는 할 필요 없었지만, 중년에겐 필수과제 아닐까. 국가에서 관리하는 건강검진처럼 말이다. 


다만 평생 곁에 있을 듯, 미래에 당연히 서로가 있을 줄 알았던 존재들의 빈자리가 아직 담담하진 않다. 그래서 자신과 약속을 해본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 매일 달라지는 관계로 인해 슬퍼지더라도 그 슬픔에 잠식돼 나를 해치지 말자는 약속이다. 어릴 적 친구들이 느슨해지는 동안 팽팽하게 가까워지는 새로운 친구들도 있다는 걸 나는 몸소 겪고 있다. 잃어버린 관계로 마음에 구멍이 나는 건 피할 수 없지만, 구멍은 새로운 관계로 겹겹이 메워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지금 내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들은 각자의 터를 잡고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나처럼 잠이 안 오는 밤이면 뿌옇게 옛일이 떠오르고 더러 내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또 미래에 새롭게 만날 친구들도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좋은 기회와 시간에 만나 새로운 관계로 켜켜이 쌓여갈 것을 나는 이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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