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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Nov 01. 2023

가족은 현재진행형

시아버지, 제 이름 모르시죠?

“난 확신해. 아버지는 내 이름을 모르셔.”

이 말은 나와 남편 사이에 종종 오가는 농담 소재다. 대화를 주고받다가 문득 “그런데 아버지 내 이름 모르시잖아.”하면 남편은 웃음이 확 터진다. 농담이긴 농담이되 너무나 있는 그대로의 사실, 시아버지는 내 이름을 모른다.


결혼한 지 꽉 찬 9년차,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시아버지가 아무래도 내 이름을 모르는 것 같다는 점이다. 남편은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다. 그도 알고 있다. 9년간 시아버지가 단 한 번도 내 이름을 부르거나 며느리로서의 호칭을 부른 적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도 주변에서 나나 엄마가 부르는 이름을 들었을 텐데, 설마 모를까.”

“그리고 난 또 한 가지 확신해. 아버지는 내 폰번호도 모르셔.”

이 역시 남편은 부정할 수 없다. 시아버지는 내 번호를 물어온 적 없고, 9년간 단 한 번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용건이 있으면 시어머니를 통하거나 남편에게 연락하셨다. 물론 여기서 오해는 없어야 한다. 나는 시아버지의 연락을 원하거나 기다린 적이 없다. 오히려 남편을 통해 전달하니 편리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연락 여부를 떠나 이름과 연락처를 아느냐 모르느냐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내가 시가의 구성원인가 여전히 외부인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기준으로 삼기에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면 최소한 알아야 하는 정보가 이름, 연락처, 사는 곳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만약 내가 가족구성원의 이름, 연락처, 사는 곳조차 모른다면 심각하게 그 관계를 돌이켜봐도 나쁠 게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부부와 시부모님은 처음부터 사이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결혼을 준비할 무렵부터 두 분은 나를 무척이나 반대하셨고, 결혼 이후에도 줄곧 냉랭했다. 시아버지가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 나를 (팩트가 아닌 상상으로)험담하신 걸 목격한 적 있고, 시어머니는 반대했던 나를 며느리로 인정한다며 과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결혼 후 4년 정도 어이없는 일이 숱하게 벌어졌다.


그렇다고 그 어이없음에 눈물짓고 가슴 아파하며 시부모님께 잘 보이고 애쓸 생각은 없었다. 싫으면 싫어하시라고 두는 게 나았다. 마음에 없는 아양만큼은 절대 할 수 없었다. 시부모님이나 우리 부부 어느 한쪽도 곱게 넘어갈 성미가 되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결혼 후 4년 정도는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대는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 무렵 나는 시가와의 관계에 있어 조금 날이 서 있었다. 그 시절 쓴 글을 보면 시가족을 향한 무뚝뚝이 거칠게 드러나 있다. 주변에서 시가족과의 고민을 털어놓으면 냉정한 대응방법을 알려주는 쪽이었다. 그래서일까. 평생 내가 시부모님에게 애정 어린 행동을 할 일은 영영 없을 줄 알았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은 흘렀고 나와 남편은 결혼한 지 9년이 됐다. 내년이면 10년이다. 30대 초반에 결혼해 올해 마흔이니 9년간 서로의 변천사를 꿰뚫고 있다. 그동안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게 변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을 꼽으라면 시부모님과 우리의 좋아진 관계도 포함이다.


관계가 유연해지는 데 큰 역할을 한 쪽은 시어머니였다. 몇 년간 호랑이처럼 서로 그르렁대기만 했건만 아들 사랑이 지극하신 시어머니는 더는 참을 수 없으셨을 터다. 내키지 않아도 조금 숙이고, 과한 요구를 거둬들이고, 아들 내외의 뜻을 꺾지 않는 쪽으로 우리를 살살 달래셨다.


언제 어디서 누굴 만나든 할 말은 꼭 하고, 결코 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중무장한 환불원정대 재질로 살아오던 나였지만 내심 속내가 여린 시어머니 앞에서는 고집을 부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라는 말처럼, 시어머니는 자식 앞에 분명한 약자였다.

그런 크고 작은 과정을 겪어오며 마음속 날은 무뎌져 갔다. 분명 나를 화나게 하고, 자존심을 뭉개고, 존중과 배려를 찾아볼 수 없던 어른들이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분노가 흐릿해졌다. 그게 오롯이 시어머니의 노력 때문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날 선 마음이 수그러든 건 나의 시부모님을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체감해서일 것이다. 나쁜 의미로 어른들을 우습게 내려다보는 게 아니다. 결혼을 앞두거나 막 결혼한 사람은 배우자의 부모를 어렵게 여기고 크고 매서운 어른으로 느끼기 쉽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배우자의 부모가 그리 큰 어른으로 보이지 않는 순간이 번번이 찾아온다. 자식에게 냉정한 말을 듣고 당황하는 모습이라든가, 그리 값지고 비싼 선물이 아닌데도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이라든가, 어쩌다 얼굴을 보자고 연락한 자녀가 반가워 일정도 다 맞춘다던가. 이런 앎은 결혼의 연차가 쌓여서일 수도 있고, 나이를 먹어 인간사를 무디게 받아들여서일 수도 있다.


시부모님은 한때 세상에서 가장 큰 절벽이었다. 하지만 마흔을 먹은 내가 바라보는 시부모님은 알면 알수록 평범하고, 조금은 연약하고, 나이를 훌쩍 먹은 아들이 여전히 너무 예뻐 어쩔 줄 모르는 그런 어른들이다. 그러고 보면 시부모님과 나 사이에 필요했던 건 역시 시간 아니었을까.


그리고 시간이 얼추 지났더니 제법 편안한 관계가 됐다. 이제 시어머니와 나는 둘이서만 긴 시간 통화해도 불편하지 않다. 내게 일어나는 소소한 일에도 시어머니가 관심을 두시고, 원가족보다 더 큰 응원을 보태주시기도 한다. 시어머니는 노력하시는 게 눈에 확연히 보이는 분이지만, 시아버지는 여전히 내게 어떤 관심도 허용도 없으신 듯하다. 무슨 말을 해도 귀담아듣지 않으실 때가 대부분이다.


아, 그래도 말이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게 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 이름을 모르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어쩌면 알고 있는데 안 부르는지도 모르니까 한 번 여쭤볼까.

“아버지, 제 이름 모르시죠?”

이랬다간 돌이킬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 같다. 시부모님과 만나는 자리마다 여쭤보고 싶어 목구멍이 간질간질한데 남편이 제발 참으라고 잔소리해서 묻지를 못했다. 그저 속으로만 외친다.

‘아버지 솔직히 제 이름 모르시죠! 제 폰번호도 모르시잖아요!’


낯선 어른을 향한 어려운 감정, 왜곡된 이미지를 대부분 털어버린 시아버지지만 그래도 아직은 서먹한 사이. 여전히 이름을 아시는지, 나를 며느리로 인정은 하시는지 명확한 답은 듣지 못 했지만 최근에는 그래도 ‘호칭’을 시작하셨다.

“ㅅ..새..아가, 요즘 건강은 괜찮니?”

‘새아가’라는 호칭조차 어색해서 모기처럼 작은 목소리로 겨우 꺼내는 시아버지에게 내 이름 아냐고는 평생 물어볼 수 없을 것 같다. 새아가는 시부모가 새 며느리를 정답게 부르는 말이란다. 어원을 상상해보자면 집안에 새로 들어온 아가, 아이라는 뜻 아닐까. 집안에 새로 들어온 자식이란 거다. 9년 만에 겨우 며느리에게 쓴 호칭이 새아가라면 그 호칭에 담긴 의미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싶다.


그렇게 시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과 따습게 살아가고 싶다. 마흔에 이르러 받아들인 시부모님의 다정함을 알기에 내가 쉰이 되고, 예순이 될 때는 지금보다 그분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성글거린다.

그래도 한 번은 물어보면 안 될까.

아버지, 제 이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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