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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Nov 08. 2023

당신은 혹시 음악꼰대?

스스로 커밍아웃한 음악 연령은 확실한 40대였다.

그다지 저렴하지도 않은 음악 구독 서비스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저장해 둔 플레이리스트가 너무 소중해서다. 어릴 적엔 세상에 듣기 싫은 게 너무 많아서 집착하듯 음악을 들었다면, 이제는 건조하고 허전한 시간을 촉촉하게 적시느라 음악을 듣는다. 음악은 일상의 가습기와 같다. 창밖에 제초기 소리, 버스에 타면 반드시 들리는 소음, 전철에서 외면하고 싶은 타인의 육성들. 그럴 땐 이어폰을 꽂고 익숙한 음악들을 꺼내 듣는다.


플레이리스트에 좋아하는 음악을 축적하다 보니 오랫동안 좋아한 음악도 있고, 새롭게 알게 된 음악도 있다. 일할 때는 주로 클래식을 듣고 술을 마시거나 요리를 할 때는 재즈나 팝을 듣는다. 연말에 줄곧 틀어놓는 크리스마스 리스트도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많이 듣는 건 <취향집>이다. 취향집은 내 취향의 음악을 모아둔 리스트인데 장르나 국적의 구분이 없다. 그냥 들었을 때 좋다고 느껴지는 곡을 하나씩 모아둔 플레이리스트다. 듣다가 질리는 곡은 삭제하고 새로운 곡은 넣기 때문에 대략 곡 수는 유지된다. 잔잔한 일본 노래가 있고 오래된 어쿠스틱도 많다. 활기찬 밴드의 음악도 있고 예능프로그램에서 유명해진 리메이크곡도 많다. 자주 듣다 보니 따라 부를 수 있는 곡도 대부분 취향집에 담겨있다.


얼마 전 집에서 그림을 그리느라 스피커로 취향집을 틀었다. 그때 재생을 누르며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나 요새 왜 이렇게 옛날 노래를 많이 듣지?’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풋, 하고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뭐야, 나 왜 이렇게 옛날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내 음악 취향이, 눈앞에 곡 목록이 나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평소에 썩 좋아하던 곡도 아닌데 우연히 어딘가에 꽂혀 요즘 귀가 닳도록 들었던 건 신해철의 노래였다. 넥스트 시절 발표했던 <날아라 병아리>와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리스트 상단에 담겨 귓가에서 반복재생되고 있었다. 중요한 건 신해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거다. 좋아하지도 않던 뮤지션의 노래를 왜 이렇게 열심히 듣고 있는 걸까. 


그 아래로 이어지는 목록은 또 어떠한가. 델리스파이스의 <고백>과 <차우차우>가 나오고 김윤아의 옛 노래들이 쭉 나오더니 공일오비와 장필순의 노래까지 이어진다. 발매일을 살펴봤다. 맙소사, 20년도 훨씬 넘은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갑작스레 스스로 커밍아웃한 음악 연령은 확실한 40대였다. 음악 취향은 대강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집중돼 있었다. 나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할 옛날 사람이었다. 그러다 벼락처럼 내 머리를 스치고 가는 생각이 있었다. 나 혹시 ‘음악 꼰대’는 아니었을까?


쥐고 있던 연필을 내려놓고 옛날 노래에 심취해 있던 내게서 혹시 음악 꼰대의 모습은 없었는지 되새겨봤다. 살면서 수많은 음악 꼰대들을 봐왔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음악 취향이 제일이라 여겼다. 어린 사람이 트는 음악은 가볍고 음악 같지도 않다고 핀잔을 주며 자신의 음악 취향을 과시했다. 그들의 단골 멘트는 “요즘 애들 노래는 정신 산만해.”, “요즘 노래는 음악 같지도 않아.”와 같은 망언이 있다. 그런 어른들은 정말 재미없었다. 불호였다. 


나는 그런 어른들을 자주 상대해 봐서 안다. 두 가지 대응방법이 있고 결과도 두 가지로 나온다. 

첫 번째 대응방법은 그들이 자신의 음악 취향을 소개할 때 “저는 그냥 그런데요.”, “좀 지루한데요.”와 같은 솔직한 감상을 말하는 거다. 그러면 대번에 불호령이 떨어진다.

“음악 들을 줄 모르는구먼!”

“요즘 것들은 음악 같지도 않은 것만 들어서 진짜를 몰라.”

“올드팝이 최고지.”

한결같이 이런 식의 답변이 나온다. 


두 번째 대응방법은 진심과 다른 호응을 해주는 거다. “오, 옛날 음악도 들어보니 좋네요!”, “이 곡 정말 좋네요. 또 좋은 음악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이런 식으로 비위에 맞는 답을 하는 건데, 이 역시 결과는 피곤하다. 듣기 싫은 음악을 주구장창 듣거나 그들만의 음악평론을 총망라하는 기나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 방법도 몇 번 써봤는데 굉장히 집에 가고 싶었다. 음악은 그냥 각자 알아서 즐기면 될 것이었다. 

그런데 혹시 나도 그런 적이 있으면 어쩌지, 집중해서 기억을 더듬어봤다. 우연히 들여다본 플레이리스트에 충격을 받아 나도 모르는 새 누군가에게 음악 꼰대였으면 어쩌나 이가 딱딱 부딪히게 소름이 끼쳤다. 어디선가 흥에 겨운 나머지 남들한테 “자우림이 최고지!”, “니들이 마왕을 알아?”, “나 때는 말이야, 누구 밴드가 이랬는데 말이야….” 이런 소리를 한 적은 없나 양발을 달달 떨어가며 되짚어봤다. 정말 열심히 등줄기에 땀이 나도록 생각해 봤다. 


다행히 누군가에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제일이라고 우긴 적은 없는 것 같다. 천운이 도와 고집쟁이 음악 꼰대는 안 됐나 보다. 남편이 같이 듣자고 한 음악을 거절한 적은 있지만, 그건 너무 싫은 종류였으니 예외로 치자(여보, 나 엠씨몽 듣기 싫어).


이런 생각을 하며 20년 전 음악 리스트를 헤치고 헤쳐 내려가니 최근까지 들었던 신곡들도 있긴 하다. 그쯤에서 스크롤을 멈추고 재생을 눌렀다. 순식간에 누가 내 앞에 레몬 띄운 탄산수 한 잔 내준 듯 산뜻하다. 


그래, 나는 이렇게 신선한 요즘 노래를 낭창낭창한 기분으로 즐기다 녹진한 옛 노래에 푹 잠기며 양쪽의 다른 질감을 즐기고 있던 거다. 알쏭달쏭한 암호 같은 요즘 노래를 가볍게 나부끼다가 진지한 옛 노래를 듣다 깨어나면 몸 안에 평소와 다른 에너지가 남아있곤 했다. 내 지난날들은 눈 뜨면 잊는 꿈이라며 지금의 네가 제일 재미있다는 상큼한 노래를 듣다가 이제 그만 일어나라며 어른이 될 시간이라는 옛 노래를 들으면 정신 차리고 책상에 앉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옛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남편은 가사가 중2병 같다고 핀잔을 줬다. 그 노래를 듣던 당시의 내가 대략 중2였으니 마흔의 내가 잠시 중2 시절에 다녀오는 타임슬립을 시도하는지도 모르겠다. 38살이 넘으면 더 이상 음악 취향이 안 바뀐다는 가설도 있던데, 앞으로도 나는 음악의 과거와 현재를 오르내리며 나만의 즐거운 타임슬립을 즐기며 살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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