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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Nov 15. 2023

엄마들의 속사정

마흔을 통과한 두 여성의 이야기

내 친구들은 모두 이제 막 마흔이거나 마흔 언저리가 됐고, 지인들도 대부분 또래다. 그리고 마흔을 통과해 그 시기를 멀찌감치서 이야기할 수 있는 두 여성이 나의 가까이에 존재한다. 나의 엄마와 시어머니다. 이 두 분은 나이가 비슷하고, 마흔을 가열차게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양가의 어머니에게 들었던 마흔 무렵에 벌어진 일들을 당시 그분들의 시선으로 적어 내려 본다.     

59년생 강**, 세 딸의 엄마

그래, 나 결혼 빨리 했다. 이미 지나온 일 후회는 없지만 그렇다고 자랑도 아니다. 열일곱에 애들 아빠를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열여덟에 결혼했고, 1년이 지나 첫째를 낳았다. 그랬더니 그 첫째가 이미 성인이다. 둘째는 고등학교 졸업반이다.


지금도 가끔 첫째는 서운한 티를 내비친다.

“내가 엄마 버스 내리는 데 마중 갔잖아. 엄마 버스에서 내릴 때 엄마! 하고 불렀는데 옆으로 슬금슬금 도망가던 거 내가 다 봤어. 엄마는 나한테 밖에선 이모라고 부르라고 한 적도 있잖아!”


그래, 인정한다 인정해. 괜히 부끄러워서 그랬다. 첫째 발육이 남달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키가 170이 다 되었다. 운동을 해서 덩치가 다부진데 키까지 큰 아이가 내게 엄마, 하고 부르면 주변에서 힐끔거렸다. 뭐, 이모라고 부르라고 한 건 실수였어, 나도 인정해.


한편으로는 너무 일찍 결혼한 내가 아이들에게 흠이 될 것 같아서 숨기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일찍 결혼한 것, 일찍 아이를 낳은 것, 너무 젊은 엄마라는 것. 이건 가방끈이 짧다는 증명이라는 걸 다들 알지 않나. 집안 형편은 찢어지게 가난한데 동생이 넷이나 있었다. 나 좋자고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없어 중학교도 겨우 다녔다. 그러고 집에서 살림하고 동생들 키우다 동네에서 남편을 만났다. 그러다 결혼했으니 짧은 가방끈은 첫째 아이의 출생과 맞물린 나만의 낙인이기도 하다.


그래도 첫째는 철이 빨리 들어서 내 말을 곧잘 알아들었다. 둘째는 워낙 둔해서 틀리거나 이상한 걸 따질 줄도 모른다. 문제는 셋째(작가 본인)다. 집에서 제일 쪼끄만 게 뭐 하나 시원하게 풀리지 않으면 꼬치꼬치 따지고,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떼를 쓴다.


내가 가방끈 짧은 게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봐 둘째 아이부터는 실제 내 출생연도인 59년을 55년이라고 거짓말했다. 둘째는 듣고 기억도 못 하는 듯했다. 셋째는 철석같이 믿었다. 주변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우리 엄마는 몇 살, 아빠는 몇 살 하면서 내가 거짓말한 나이를 그대로 말하는 걸 들었다. 그냥 이렇게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넘어가길 바랐다. 어차피 주민등록증 발급받을 무렵엔 다 알게 될 테니 그때 천천히 설명하고 싶었다.


셋째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이었다. 내 생일이라고 오랜만에 친정 식구들과 모였다. 평소엔 사치스럽다며 잘 사지 않던 커다란 생일케이크도 준비됐고, 내 나이만큼 초가 꽂혔다. 그것을 바라보는 첫째와 둘째는 잠자코 있는데 셋째가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훠이훠이 하며 가족들의 생일노래를 저지했다.

“아니에요. 초가 틀렸어요. 우리 엄마 34살인데 초가 세 개밖에 없어요.”

영문을 모르는 가족들은 누구야, 엄마는 올해 서른 살이잖아 하는데 셋째가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니라구요. 엄마 55년생이고 올해 34살인데 왜 거짓말해요. 나 이런 거 싫어!”


예의 그 ‘똥고집’이 터져 나오고 급기야 셋째는 케이크에서 초를 뽑더니 다시 엄마 나이에 맞게 꽂아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6살밖에 안 된 녀석이 고집이 어찌나 세던지…. 그제야 가족들은 셋째 장단에 맞춰가며 대강의 분위기를 눈치챘다.


그날부터 시작됐다. 셋째의 심도 있는 나이 추궁.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나를 취조하려들고, 걸핏하면 나이 이야기를 꺼냈다. 거짓말했다고 솔직히 말할까 하다가 아이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것 같아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친정에 갈 때면 셋째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붙잡고 내 나이 이야기를 캐냈다. 그럴 때면 곁에 있는 내 얼굴이 활활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셋째의 나이 조사는 흥이 바짝 올랐다가 서서히 꺼져 드는 듯했다. 그 고집스러운 꼬마가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됐고, 내년에 고등학교를 간단다. 책상에 앉아 골똘히 뭘 하는 셋째 등 뒤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예전 나이 조사가 생각나 슬쩍 말을 꺼내봤다.

“엄마 59년생 맞아. 큰언니는 열아홉 초에 낳고, 너는 스물넷에 낳았어.”

셋째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한다.

“알아. 엄마 그거 나한테 숨기려다가 다 들켰잖아.”

대수롭지 않게 피식거리는 셋째를 보니 그동안 혼자 안달한 시간들이 우스워진다. 셋째가 말을 덧붙인다.

“결혼 일찍 한 게 어때서 그걸 숨겨. 애기 일찍 낳아서 엄마 지금도 젊은 거잖아.”


그러고 보니 셋째가 벌써 내가 남편을 만났을 정도의 나이가 됐구나. 깐깐하고 까탈 부리던 그 꼬마가 언제 이렇게 다 컸지? 나도 모르게 철이 들어버린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새삼 내가 중년의 초입에 들어왔음을 느낀다. 이렇게 나의 마흔이 찾아왔음을.     

61년생 박**, 두 아들의 엄마

내가 미친다 미쳐. 오늘 큰아들(작가의 남편) 학교에 불려 갔다 왔다. 친구들하고 빗자루 가지고 놀다가 교실 유리창을 다 깨부쉈단다. 가서 고개를 조아리고, 변상도 하고, 아이를 야단도 쳤다. 정작 아이는 크게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스물여섯에 낳아 올해 중학교 1학년인 큰아들은 아무래도 사춘기인 듯싶다. 양가에 장손이라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자라서인지 아이가 대차고 뭐든 자기 뜻대로 해내야 하는 성미인데 사춘기까지 와버리니 통제가 안 된다. 맨날 학원 땡땡이치고 게임방에 가 있거나, 친구들이랑 어울려 엉뚱한 짓을 하지를 않나, 얼마 전엔 키우는 강아지를 가방에 넣고 학원에 갔다. 강아지를 안고 수업을 들었단다. 하루하루 바람 잘 날이 없다.


며칠 전에는 밤새 어느 집에선가 개가 짖었다. 밤부터 새벽까지 짖는 소리가 아파트 단지에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인가 싶긴 했지만 어느 집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런데 새벽 무렵 참을 수 없었는지 큰아들이 검도 배울 때 쓰는 죽도를 들고 뛰쳐나갔다. 사춘기인 아들에게 운동으로 에너지 발산하게 하려고 검도를 가르치고 있었다. 나도 놀라 아이를 뒤따라 나갔다. 아이는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개주인 나와! 개주인 나오라고!”

그러면서 씩씩대는데 미치고 팔짝 뛰는 줄 알았다. 가서 등짝을 후려쳤다.

“야! 니가 더 시끄럽다! 빨리 들어가!”

“아, 잠을 못 자겠잖아!”


단지에 나와 소리 지른 다음엔 분이 삭혔는지 또 고분고분 집으로 들어가긴 한다. 이러다 어디서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매일 두근거린다. 그나마 첫째보다 두 살 어린 둘째는 차분하고 말을 잘 듣는다. 한편으로는 말 잘 듣는 둘째까지 사춘기가 오면 난 어쩌나 싶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다가온 주말 아침, 네 가족이 아침 밥상에 둘러앉았다. 남편도 적당히 넘어가면 좋겠는데, 주말 아침마다 어김없이 남편의 잔소리 타임이 시작된다.

“너 요새 공부는 잘하고 있어? 아빠 때는 이러이러해도 1등만 했는데 너 성적이 그거밖에 안돼? 너 왜 김치 안 먹어. 김치가 얼마나 몸에 좋은데! 부모가 돈 벌어다 밥 차려줬는데 왜 이렇게 깨작대. 그리고 말이야, 부모한테 좀 깍듯해야지 너는….”

“아, 나 밥 안 먹어!”

첫째가 밥상에 젓가락 집어던지고 일어나더니 그대로 슬리퍼 신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남편이 화가 나서 한 대 칠 듯이 일어났지만, 남편보다 첫째가 더 빨랐다. 남편은 허공에 헛손질만 하다가 다시 식탁에 앉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사춘기 자식과 보수적인 남편의 콜라보는 대환장파티다. 남편은 씩씩거리면서도 굽히지 않는다. 첫째도 저렇게 나가버렸지만 몇 분 지나서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들어올 게 뻔하다. 아, 사춘기 자식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 걸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은 거지?


두고 보자, 첫째 너 이 자식. 너 다 커서 장가가고 그러면 나 며느리한테 너가 진상부린 거 다 말할 거다. 창피 좀 당해봐야 해. 아휴, 내 나이 마흔이 이렇게 피곤할 줄이야. 중년이 되면 편안해질 줄 알았는데 사춘기에 저당 잡힌 마흔이 시작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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