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내가 몹시도 좋아했던 그 장소의 모습
모처럼 남편이 평일에 휴가를 냈다. 이럴 땐 주말에 가기엔 조금 꺼려지는 장소로 향한다. 웨이팅이 길어 발길을 돌려야 했던 곳도 평일이라면 기대를 품어볼 만하다. 우리는 헤이리마을에 위치한 청음실로 향했다.
그곳은 내가 파주로 이사와 새로 사귄 친구들 덕분에 알게 된 보석 같은 장소였다.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남편 덕분에 좋은 음악감상실을 많이 알고 있던 친구가 소개해준 곳인데 가정에서 흔히 쓰는 음향장치와는 차원이 다른 스피커를 통해 멋진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었다.
대신 이곳은 보통의 카페가 아닌 청음실이기 때문에 대화는 자제해야 했다. 친구들과 나는 그곳에 가면 대화를 줄이고 필요한 용건은 핸드폰 메모장에 써서 옆으로 넘기며 소통했다. 편안한 의자에 앉으면 앞에는 듬직한 테이블이 있었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기에 아주 편했다. 게다가 화룡점정은 무제한으로 나오는 머핀이었다! 머핀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이곳에 가면 한 조각 정도는 꼭 먹곤 했다. 입장료의 몇 배쯤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중한 보석이었다.
이곳을 알게 된 후 나는 다시 남편에게 소개하고, 이따금 생각이 나는 주말이면 종종 들러 음악을 들었다. 평일에는 한산했고 주말에는 사람이 꽤 있는 편이었지만 빈자리가 없어 동동거릴 일은 없었다. 그 장소의 사계절을 모두 만끽했다. 그러니 친구들과 추억을 공유한 장소이자 나와 남편의 추억도 다분히 새겨진 곳이었다.
파주에서 이사를 나오기 전 일부러 방문한 장소도 그 청음실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입장할 수 없었다. 토요일 늦은 오후였는데 어쩐 일인지 청음실 입구 앞에 꽤나 긴 줄이 서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에 나와 남편은 영문을 몰라 머뭇거렸다.
“여기가 이렇게 인기가 많은 곳이었나?”
“어디 방송에라도 나온 게 아닐까?”
덜 알려진 좋은 장소가 방송에 나오기라도 하면 잠시 유명세에 들썩거리는 건 수없이 봐왔다. 그럴 땐 잠시 발길에 숨죽였다가 조금 잊힐 때쯤 다시 오면 그만이었다. 그날 우리는 줄을 서는 대신 발길을 돌렸다. 지나가는 바람인가 싶었다.
그리고 이번 휴가에 남편과 다시 방문했을 때 그날의 바람이 지나가지 않고 여전히 머무르고 있다는 걸, 어쩌면 그 장소에 붙박이로 불어오는 바람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청음실 앞 주차장이었던 자리에는 열을 맞춰 수십 개의 의자가 놓여있었다.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의자였다.
‘이제 줄을 서서 들어가는 게 고착됐구나.’
그래도 평일이라 그런지 대기팀은 3팀 정도였다. 땀이 졸졸 흐를 만큼 더웠다. 그래도 두 번이나 발길을 돌리기엔 아쉬워 남편과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덜 알려졌을 땐 편안하게 동네 뒷산처럼 들렀지만, 이제는 그렇게 설렁설렁 올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이다.
얼마쯤 기다려 직원의 안내를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계산을 하고 자리를 안내받았는데 깜짝 놀랐다. 내가 알던 청음실의 구조와 분위기가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편안한 의자와 책과 소지품을 올려놓고 쉬기 좋았던 원목 테이블은 모두 사라졌다. 앉으면 옴짝달싹 못 하게 생긴 의자 두 개 사이에 음료 정도 겨우 놓을 수 있는 작고 얕은 철제테이블만 달랑 앉아있었다. 가방을 무릎에 품고 있어야 하나 싶었는데 의자 밑에 바구니가 있었다. 테이블을 없앤 대신 아주 작은 철제 티테이블과 바구니를 내민 셈이다.
장소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한결같길 바라는 건 방문자의 마음이지, 시시때때로 모습을 바꾸고 변화하는 건 주인 마음이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하면서도 내심 서운한 건 왜일까. 든든했던 테이블은 몽땅 어디로 보내버리고 야박한 바구니와 털털거리는 간이 테이블만 놔준 걸까.
음료를 주문하고 남편과 나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뭔가 없어졌다 싶은 게 있었다. 바로 머핀이었다! 커피에 머핀 한 조각을 꼭 먹었는데 머핀이 사라졌다. 그것 역시 어떤 이유로 없앴겠지만, 또 우리가 머핀을 미친 듯이 좋아하는 편도 아니지만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와 남편은 이곳에 오면 각각 커피 한 잔에 머핀 1조각 정도를 먹었는데, 적당한 달콤함과 포만감을 함께 누리곤 했던 것이다.
이제는 주문한 음료 한 잔을 마시며 기대 쉴 테이블 없이 의자에 앉아 정면만을 바라보며 음악에 집중해야 했다. 가져온 책을 꺼냈는데 기댈 곳 없이 양손에 들고 읽었더니 어깨가 아파왔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데, 나의 몇 안 되는 소중한 장소에 불변을 기대하는 건 욕심인 걸까? 한 시간 정도 앉아있다가 허한 마음을 접어 넣고 청음실을 빠져나왔다.
이곳 외에도 살면서 조금씩 축적해 둔 나만의 장소들이 있다. 마음속 ‘핫플’이라 할 수 있는 장소들이다. 파주 주택가 속 생크림 케이크가 맛있는 제과점, 인천의 계란말이 김밥집, 인근 주민이 아니면 잘 모르는 광명의 고택, 외관으로는 속내를 알 수 없지만 막상 들어가면 재미있는 게 가득한 헌책방거리의 숨은 장소들 등등. 셀 수 없이 드나들며 좋아하고 열광했던 장소들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장소들이 변하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순서가 찾아온다. 그곳에 드나들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많이 흘렀고, 변화하는 건 당연하고, 그 시간을 증명하는 게 내 나이이기에 턱 밑에 찾아든 제약은 어쩔 수 없음이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고 변하는 장소들을 바라보는 건 언제까지고 과거에 머무를 수 없다는 내 인생의 사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괜한 마음에 ‘이곳만큼은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하고 생각하지만, 내게 좋은 곳은 남에게도 좋을 수밖에 없고 또 어느 정도의 수지가 맞아야 장소가 오래도록 유지되기에 나는 그저 하릴없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아마 나는 그 청음실에 다신 가지 않겠지. 그곳에서 좋은 음악을 많이 만났고, 주변을 둘러싼 계절도 충분히 만끽했다. 시대와 세대가 요구하는 메시지에 맞춰 변화하는 그 장소를 어떻게 원망할 수 있을까. 한때 내가 몹시도 좋아했던 그 장소의 모습을 간직하는 것을 끝으로 청음실과의 인연을 이렇게 마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