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고 나서 든 생각은 아무래도 책에 등장한 모든 사람이 곤란한 사람들이란 거다. 평탄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다들 곤란하다. 직업이 변변치 않고, 가족들과 편안하지 않고, 이혼당한 뒤 여러 모로 피곤한 사람이 있고, 암에 걸리고, 오랜 연인과는 삐걱거리고. 야마모투 후미오의 <플라나리아>는 곤란한 사람들 모음집이다.
목표지향적인 내 성향상 이런 사람들이 곱게 보일리 없다. 읽을수록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를 여러 번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밖에 안 되는 걸까, 아 너무 답답한데. 그래도 조금 느슨하게 보자면 이 곤란한 이야기들이 현실과 아주 닮았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만약 저자가 절망스럽고 불운한 사람들의 현실, 의도치 않게 실패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라면 완전 성공이다. 다만 내가 그런 의도에 공감하지 못했을 뿐이다. 영원한 낙오는 없다. 영원한 절망도 아픔도 없다. 사람은 플라나리아가 아니기 때문에 수천수억의 감정과 경험을 가질 수밖에 없고, 낙오와 실패와 불운이 우릴 얼마나 숱하게 스쳐가는가. 그럴 때마다 매번 주저하지 않고 일어나는 사람들에게 지독하게 현실적인 이 작품은 오히려 기운을 조금 빼앗을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이 나오키상을 받았다고 한다. 나오키상 수상작은 대체로 재미있다. 게다가 내가 읽은 나오키상 수상작은 주로 추리물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어떤 긴장감과 긴박함을 기대했는데 막상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지금껏 읽은 나오키상 수상작 중 가장 맥없이 읽은 것 같다. 책 소개글을 보니 치열하게 경쟁하는 삶, 성공한 삶에 커다란 물음표를 던진다고 쓰여있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나는 치열함이 아름답다. 부딪히는 땀방울을 좋아하고 선명한 경쟁을 좋아하고 내 기준 안에서의 성공을 염원한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삶은 결코 천박하지 않다. 손에 잡히는 명징한 가치다. 그래서 다 읽고도 단 한 줄도 공감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