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조금 넘게 화실에 다니며 그림을 배운 적 있다. 글이 잘 안 써질 때 뭐라도 표현하는 능력을 키워보고자 시작한 게 계기였다. 덕분에 처음 데생을 배우고 색연필과 수채화를 경험하고, 아크릴과 유화가 종착지였다.
선생님들은 다정하고 실력이 좋았다.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며 화실을 나온 건 지금도 많이 아쉽게 생각한다.
이후 자격증 공부로 그림을 그릴 틈이 없었다. 그림이 웬 말인가. 강아지 산책하느라 나가는 외출 외에는 공부와 일상으로만 채워졌던 촉박한 시절에 그림은 사치였다. 다시 한가해지면 고를 수 있는 선택지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우울증을 치료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게 그림이란 건 이제 구원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전 글에도 언급했듯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활동으로 정기적인 운동, 취미활동, 여행 등이 있다. 공황장애로 인해 여행에는 다소 제약이 있었다만 취미활동으로써 그림은 제약이 없었다. 물론 화실에 몇 시간 앉아있는 건 버거워 돌아가기 어려웠고, 집에서 쉬엄쉬엄 그리는 건 괜찮을 것 같았다.
작은 문제가 있었다면 공황장애 때문에 서재에 들어가 앉아있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나는 서재에 책상 두 개를 놓고 한쪽은 업무와 pc 사용할 때 쓰고, 한쪽은 미술도구와 이젤을 설치해 그림 그릴 때 사용했다. 공황장애가 생기면서 서재에 들어가는 게 두려워졌으니 그림 그리러 들어가는 발길도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서재에서 미술도구를 모두 꺼내 거실 테이블로 나왔다. 거실 테이블이 요란해졌지만 별수 없었다. 그리고 늘어놓은 미술도구를 한참 들여다보는데 다시 한번 막막해졌다. 붓을 놓은 지 1년 가까이 되면서 내 안의 욕망과 호기심이 모두 휘발된 것 같았다. 실력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리고 싶은 게 없는 데서 오는 막막함이었다. 내 우울증 증상의 핵심은 ‘싶다’가 사라진 거였는데 그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병원 치료를 시작할 무렵 내겐 ‘싶다’가 없었다. 먹고 싶다, 가고 싶다, 하고 싶다, 갖고 싶다 등등 ‘싶다’가 없이 모든 행동에 욕망이 사라졌다. 무기력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무기력은 무언가를 해야겠는데 그것을 하기 위한 힘이 없는 것이고, 나는 무언가를 해야겠다거나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없다는 문제였다. 일단 미술도구를 다 꺼내 우울증을 해소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자고 다짐했지만 그리고 싶은 게 없었다. 갖고 싶은 미술도구도 없었다. 멀뚱하니 앉아 미술도구만 바라보다가 해 질 녘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예전에 찍어둔 사진을 넘기며 꾸역꾸역 그리고 싶은 사진을 골랐다. 내 손에 제일 편한 재료인 색연필을 꺼냈다. 그날 그린 그림은 피크닉을 나가서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순간이다.
다시 그림을 그린 날, 퇴근한 남편에게 그림을 보여줬다. 남편은 이미 내가 우울증을 모두 완치한 마냥 기뻐했다.
“여보, 그림 많이 그리자. 재료도 필요하면 다 사.”
“아, 그런데 그리고 싶은 게 없어서 시작이 좀 어려워.”
남편은 함께 갔던 여행지, 함께 먹은 메뉴 등을 말하며 그리고 싶은 게 없는 나를 부추겼다.
그러다 SNS에서 드로잉로그라는 활동을 발견했다. 미술재료 쇼핑몰에서 운영하는 커뮤니티인데 매주 그림 주제를 내주고 사람들은 주제에 맞춰 그림을 그려 커뮤니티에 올린다. 정해진 기간 동안 빠지지 않고 미션을 완료하면 현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주는 방식이다. ‘싶다’가 없는 내게 주제를 정해준다면 좀 더 열의 있게 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활동에 참여했다. 그렇게 처음 드로잉로그에 참여하며 받은 주제는 ‘가을’이었고 아래와 같은 그림을 그렸다. 함께 드로잉로그에 참여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그림을 감상하고 칭찬하는 댓글도 작은 힘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그림도 자주 구경했다. 타인이 취미 삼아 그리는 그림을 이토록 마음 편하고 다양하게 감상할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그러다 보니 새로운 재료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그림 모임이 있다면 나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싶다’였다. 휴대하기 좋은 고채물감과 오일파스텔, 유성 색연필을 샀다. 처음 접해보는 마카도 샀다. 유튜브에서 재료 이름을 검색한 뒤 짧은 수업을 들으며 새로운 재료로 그림을 그렸다. 오랜만에 행복해졌다.
집이 갑갑하면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들고 카페로 나가 그림을 그렸다. 연말에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그려 액자에 넣어 주변에 선물했다. 아래 그림은 인터넷에서 본 트리 그림의 모작이다. 받은 이들이 어찌나 기뻐하는지 내 마음까지 풍족해졌다.
이렇게 그리고 싶은 게 없어 서성이기만 하던 시기를 지나오는 동안 나는 어느 때보다 자주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 몰입하다 보면 우울과 공황을 깜빡 잊을 정도였다. 물론 자주 그린다고 해서 굉장한 실력자가 된 건 아니지만 만족감과 성취감은 확실히 채워졌다. 작고 힘없이 느껴지던 40대의 내가 백지의 면면을 채울 수 있음에 잃어버린 존재감을 찾았다. 그러니 그림이 내겐 구원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요즘도 일주일에 두어 번 그림을 그린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면 성취감이 마치 김장하듯 내 안의 감정 창고가 꼬박꼬박 채워진다. 왜 우울증에 취미활동과 운동을 제안하는지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 내면의 감정과 표현욕구를 쏟아내는 활동이 얼마나 나를 튼튼하게 해 주는지 몸소 체험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인정하고 찬양한다. 그림의 힘을. 오랜 세월 세상에서 예술이 살아있는 그 이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