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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변수가 찾아오면

뜻하지 않은 변수는 어른으로서의 첫 방학이 되었다.

by 귀리밥

마흔두 번째 생일, 속초에 갔다. 거의 10년 만에 방문하는 지역이라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절반도 하지 못했다. 속초에서 팔이 부러져 응급실로 향했기 때문이다.


그 일은 여행 둘째 날 아침에 해변 산책을 하러 나가는 길목에서 벌어졌다. 평지로 보였던 바닥의 옆면에는 계단이 있었고, 어느 각도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서 꽈당, 넘어졌는데 어찌나 충격이 컸는지 잠시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오른쪽 팔이 이상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물론 숨 쉴 때 호흡에 맞춰 통증이 번졌다.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들었다.

KakaoTalk_20250512_093151602.jpg 넘어지기 전, 행복했던 시간

해변 산책은 시도할 수 없었고 즉시 짐을 챙겨 차에 올랐다. 함께 있던 반려견도 놀랐는지 징징대지 않고 고분고분 내 곁을 지켰다. 남편은 급히 응급실을 찾았다. 하필 전공의 파업으로 전국에 의사가 부족한 시기라 응급실에 도착해서도 한참 기다려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응급의는 뼈가 부러진 것만 아니길 바란다며 진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니길 바란다던 뼈가 부러졌다는 결론을 들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팔꿈치 뼈가 산산조각 나 있었다. 살면서 한 번도 골절이나 외과 수술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상황이 꿈만 같았다. 의사로부터 연고지에서 수술받으라는 소견을 듣고 즉시 동네로 향했다.


문제는 전공의 파업으로 즉시 진료를 봐줄 병원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점이다. 시내 병원을 돌고 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병원의 응급 병동에서 겨우 입원을 받아줬고, 그나마도 의사가 부족해 이틀을 꼬박 진통제로 버틴 후 수술을 받았다. 통증으로 뒤덮인 입원 생활을 일주일 정도 견디고 몸 안에 금속판을 박은 사이보그로서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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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너무 부어서 터지는 줄 알았어요..

이렇게 간단히 몇 줄로 설명이 되는 이 일들은 생일여행에서 시작됐다. 기분 좋게 생일을 보내러 떠났던 동쪽 바다 앞에서 넘어지고, 뼈가 부서지고, 혼미한 정신으로 돌아와 병원을 돌고, 생전 처음 겪어본 거대한 통증에 진통제로 버티다 겨우 수술을 받고, 팔에는 굵고 흉한 수술 자국이 남았다. 일생에 손에 꼽히는 재난이었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내 입원 기간을 몹시 걱정했다. 안 그래도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갑자기 입원까지 해서 우울증이 심해질까 불안해했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들이 있는 4인실로 잡았고, 면회시간에 맞춰 매일 찾아왔다.


그렇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아주 무탈했다. 무탈하고 편안한 입원 생활을 보냈다. 의료진은 친절했고, 수술은 잘 됐다. 통증이 덮쳐오면 진통제를 요청했고, 통합병동에 들어가 보조인력이 불편하지 않도록 옷을 갈아입혀주고 머리도 감겨줬다. 깔끔함을 유지하며 입원생활을 할 수 있었다.


물론 평소의 나라면 이런 생각을 분명했을 터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왜 수많은 날 중에 생일에 이렇게 다친 걸까. 나는 운이 없는 사람인가.’

‘만약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난 괜찮았을까.’

‘그럼 앞으로 생일에 여행을 가지 말까.’


악재가 닥쳐오면 단골로 찾아오는 ‘만약’의 무한굴레에 빠져 시간을 돌리고 싶어 했을 게 분명하다. 평소 악운에 대처하는 패턴은 그러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전공의 파업 때문에 의사가 부족한데도 늦지 않게 수술받을 수 있어 다행이야.’

‘간호사분들이 너무 친절하셔서 마음이 편하다. 좋은 병원을 만난 것 같아 행운이야.’


그리고 수술 후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시간을 앞두고 이 시기를 ‘첫 방학’으로 명명했다. 생각해 보면 성인이 된 이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20년 넘게 쉬지 않고 돈을 벌었다. 회사에 다니며 재수를 하고, 대학교 시절에는 항상 아르바이트를 3개 이상 했고, 졸업 후 취직을 한 다음에는 이직을 하더라도 쉬는 기간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다치고 치유해야 할 시기를 마주했다. 이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면 조금은 즐겁고 뻔뻔하게 어른의 첫 방학으로 삼기로 했다. 물론 이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정신과 의원과 심리상담소를 다니며 내면이 잘 치료되고 있어서 가능한 부분이었다.


심리상담소에서 배운 것처럼 이 어려운 시기를 잠시 죽은 척하는 시절이라 여기며 다시 도약할 때를 기다리면 된다. 정신과를 다니며 약물치료와 상담을 하고 전두엽이 처음보다 튼튼해졌기에 팔이 부러지는 악재에도 나는 눈물 한 번 흘리지 않았다. 그리고 병원을 찾고 수술을 받았던 과정을 오히려 행운처럼 받아들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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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변수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고, 미리 예방할 수 없는 일은 도처에 널려있다. 평지처럼 보였지만 계단이었던 곳을 무슨 수로 예방할 수 있겠나. 우울증 환자에게 예기치 못했던 사고는 더 깊은 늪으로 잡아당기는 계기가 된다. 난 얼마든지 더 어두워질 수 있었다. 충분히 눈물 흘리고 절망에 빠질 만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치료를 받아온 덕분에 변수를 가볍게 짚고 넘어갈 수 있었다. 정신과 치료와 심리상담은 수치나 눈에 보이는 결과를 확인하기 어려운 분야지만, 이렇게 변수를 만날 때면 그 효과에 감탄하게 된다. 나의 외피와 연결된 내면이 얼마나 견고해졌는지 이 시기에 확연히 느꼈다.


그렇게 성인기 이후 첫 방학을 맞이한 지 한 달 정도 흘렀다. 새로 태어난 팔꿈치는 아직 제 역할을 못 하는 단계라 치료 중이고, 집에서도 틈틈이 재활을 시도한다. 할 수 있는 활동에 제약이 있어 평소 좋아하는 그림을 못 그리고 요리도 서투르지만 대신 독서에 폭 전념하고 미뤄둔 콘텐츠도 실컷 보고 있다. 정신과 진료가 계속되고 있어서인지 우울한 기분은 없고 건강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 방학의 미션은 내 몸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재활에 성공하는 것이다. 나는 우울증의 최대 고비인 변수에서 꿋꿋하게 일어난 성공한 환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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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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