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잘 들을 수 있다.
평소 긴장을 잘하지 않는 편이지만, 매번 긴장하는 순간이 있다면 이비인후과 정기검진이다. 지난번 청력검사와 그날의 청력검사 결과를 비교하고 의사의 망설이는 표정을 보며 ‘아, 이번에도 나아진 게 없구나.’하고 단념하기까지 1분여의 시간마다 늘 긴장한다. 어차피 크게 좋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이나마 다른 소식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어떤 날엔 조바심이 나서 내가 먼저 “좀 좋아졌나요?”라고 묻거나 “요즘 좀 좋아진 것 같아요.” 따위의 말을 했는데, 그때마다 의사는 “유의미한 결과는 없어요.”라며 안쓰러워했다.
그렇게 1년간 치료를 받았다. 1년이 채워지고 나니 의사가 좀 오래 망설이다 입을 뗐다.
“보청기 할 생각 없으세요?”
정수리에 충격이 꽂혔다. 얼얼했다. 이게 나한테 한 말이 맞는 걸까?
“저요? 선생님, 저 마흔둘밖에 안 됐는데요?”
“청력이 나아지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반대편 청력도 나빠지기 시작해서…. 보청기 하는 거 추천드려요”
“보청기는 보통 60대 이상 어르신들이 쓰는 거잖아요.”
“아니에요. 청력이 안 좋으면 나이랑 상관없이 많이들 합니다. 많이 힘드시면 보청기 클리닉에서 상담받아보고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1년 넘게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나아지지 않네요.”
그렇게 간호사를 따라 보청기 클리닉으로 갔다. 조금 날카로운 인상의 청각사를 만났다. 그는 친절하면서도 냉정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어찌나 비현실적인지 그 자리가 내 자리 같지 않았다. 청각사는 지금 내게 보청기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는 있었다. 처음 이명이 생겼을 때 병원에서도 그랬다. 나중에 보청기를 하게 될 거라고.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청력검사 결과를 두고 상담한 뒤 내 상태에 맞는 보청기를 주문했다. 멀리 덴마크에서 은색 보청기가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덴마크에선 유제품이나 사다 먹는 줄 알았는데 보청기도 사 오는 모양이었다. 다시 방문일을 정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매일 생각했다.
나는 곧 보청기를 한다. 나는 곧 보청기를 한다. 나는 곧….
그날부터 매일 두리번거렸다.
주변에 보청기를 한 사람이 있는지, 내 나이에 보청기를 하는 사람이 많은지, 두리번두리번, 거리에서, 병원에서, 카페에서, 지하철에서, 마트에서….
청각사는 말했다.
“보청기는 안경과 같은 거예요. 시력이 나쁘면 안경을 쓰듯이 청력이 나쁘면 보청기를 쓸 뿐이에요. 우리나라는 유독 보청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서 90대 어르신들도 거부할 정도지만, 해외만 나가도 그렇지 않아요. 요샌 이어폰 사용이 많아서 10대 학생들도 보청기를 많이 쓸 정도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쓰고 있어요.”
그래요, 나도 알아요. 보청기는 듣는 걸 보조해 주는 기계일 뿐이라는 걸.
처음 본 청각사 앞에서 울고 말았다. 아직은 내 몸의 기관들이 버텨주길 바라는 40대에 보청기를 받아들이는 건 너무나도 어려웠다. 밤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보청기를 받으러 가기로 한 전날엔 유독 소화가 더뎠다. 괜스레 짜증도 났다. 그때마다 청각사의 말을 되새겼다. 보청기는 안경 같은 것, 보청기는 안경이야.
나약해지는 자신을 보며 가식을 발견하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보청기를 하게 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명으로 힘겨울 때마다 자신을 다독이며 칭찬했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긴 훈련도 잘 받았다고. 그런데 어쩌면 그 칭찬은 거짓이 아니었을까. 보청기를 앞에서 울고 잠 못 들고 슬퍼할 거였다면 그동안 나는 자신을 속여왔던 걸까? 안 괜찮으면서 괜찮다고 속삭이던 나날들.
보청기를 받으러 가는 길 버스에서 아직 보청기를 하지 않는 나의 마지막을 감상했다. 보청기 클리닉으로 들어가 내 몫의 보청기를 만났다. 반듯한 상자에 들어있는 엄지손톱만 한 녀석. 청각사는 보청기의 등과 배를 짚어가며 설명했다. 전원을 켰다. 귀에 꽂지 않고 손에 가볍게 쥐자 보청기가 ‘으앙-’하고 소릴 질렀다. 전원이 켜졌는지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초기 세팅을 하고 올바르게 착용하는 법을 배우고 청소법도 배웠다. 세팅은 3개월간 진행된다.
파들파들 떨며 왼쪽 귀에 보청기를 꽂았다. 보청기의 몸을 귀 뒤로 넘기고 투명한 마이크선을 내려 귀 끝에 고무패킹을 꽂았다. 기술이 어찌나 좋아졌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청각사가 펜을 책상에 떨어뜨렸다.
“아, 깜짝이야!”
“이 소리가 크세요? 이 정도는 저도 커요. 그런데 예전하고 비교하면 조금 더 들리지 않나요?”
청력이 나빠지는 동안 “아, 깜짝이야!”보다는 “뭐라고?”를 더 많이 했던 나로서는 갑자기 달라진 귓가가 낯설다. 잘 들린다. 감도를 많이 낮춰놨는데도 이전보다 잘 들린다. 덴마크 출신 엄지손톱이 일하는 티를 냈다. 나는 이제 잘 들을 수 있다.
보청기 사용과 관리방법을 배우고 연습도 했다. 그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고 1시간 조금 안 되게 걸렸다. 상담하던 날처럼 울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마음은 물과 기름처럼 분리됐다. 잘 들리게 돼 기쁜 마음은 기름처럼 뜨고, 마흔둘에 보청기를 끼게 된 슬픔은 물처럼 가라앉았다.
이렇게 작고 가볍고 슬픈 기계가 세상에 또 있을까. 일생에 잊지 못할 커다란 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