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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뚱이 Aug 15. 2023

오늘조손-밀당에서 시작되는 여행

여행의 첫 번째 관문



여행을 가기 전에 가장 중요한 관문_밀고 당기기

 

할머니와의 여행은 밀당으로부터 시작된다. 밀고 당기기의 줄임말, 밀당. 나와 닭은 당기고, 할머니는 민다. 할머니의 미는 이유는 첫 번째는 걷기 힘들다는 점, 두 번째는 여행 경비다. 가끔은 후자가 더 높아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이거 회사에서 꼭 쓰라고 나왔다며 안 가면 손해라고 약간의 허풍을 더해 회유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입사한 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당첨되어 가게 된 하계휴양소, 4:3의 경쟁률을 뚫고 된 숙소지만, 본인부담금이 꽤 비쌌었다. 게다가 처음으로 2박 3일. 하지만 할머니와 가기 위해선 숙소는 거의 회사에서 지원해 준다는 식으로 착한(?) 거짓말을 하고 설득한 끝에 겨우 다녀왔다. 게장을 먹자는 말도 물론 덧붙였다.


할머니는 대부분의 어르신들과 마찬가지로, 젊었을 적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 여행을 거의 다니지 못하셨다. 종종 동네에서 계를 통해 어디를 놀러 갈 기회가 있어도 키워야 할 손녀들이 있어 할아버지만 보내곤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 사람 결혼식으로 가는 길 버스 안에서 지나치며 본 63 빌딩을 아직도 종종 말씀하신다.


예전에는 시골 마을에선 동네 계모임 외에 가족 여행을 잘 다니지 않는 분위기였다면 여행이 점차 일상화되어 자식들과 손자들과 여행을 다녀오는 분들이 늘었다. 회관에서 수많은 할머니들의 여행담(심지어 자녀들 보러 머나먼 해외까지 다녀오신 할머니도 계신다) 틈바구니 속에 할머니는 여행이라는 옵션을 아예 지웠었다. 그렇게 우리 할머니는 내 것이 아닌 것은 별로 욕심내지 않으신다. 그러다 2021년, 코로나 시절, 우리와 함께 아주 짧지만 소중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 할머니가 조금 더 젊었을 때 우리가 태어났었으면 하고 늘 아쉬워했었다. 소꿉친구도 조부모님과 사셨는데 거의 10년은 더 젊으셨었다. 어린 마음에는 운동회나 학예회 때 조금 더 젊은 조부모님이 오시면 덜 창피해서 부러웠지만,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조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어 보여서, 하고 싶은 것들을 더 여유롭게 할 수 있어서 부러워하게 되었다. 물론 우리가 더 일찍 태어났다면, 그것은 영화 <어바웃타임>에서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아닐 순 있겠지만, 어찌 됐든 할머니가 분명 더 잘 걸어 다녔던 때가 있었는데, 심지어 골목길을 구루마(손수레) 안에 우리를 싣고 오르내리던 때가 있었는데, 우리가 돈을 벌게 되자 할머니는 지팡이 없이 외출이 어렵게 되어버렸다.


할머니와의 여행은 친구와의 여행과 달리 고려할 것도 많고, 계획할 때도 여행하는 도중에도 난관이 따르지만, 지금이 우리 모두 제일 젊을 때, 제일 놀러 다니기 좋은 시절이란 걸 알기에 시간을 꽉 잡으려 한다. 매일 같은 시간은 디스크 조각 모으기처럼 합쳐져서 생략되길 마련이고,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들이 시간을 조금 더 천천히 가게 만들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깨달았기 때문이다. 순탄하진 않아도, 아무리 힘든 여행이라도, 심지어 대판 싸웠어도 다녀오면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한다.


매년 할머니를 설득하기 더 힘들어지긴 하지만, 이제 우리도 노하우가 생겼다. 여행을 더 편하고 즐겁게 다녀올 수 있는 노하우. 회관에서 동네 할머니들께서 여행 자랑을 더욱더 많이 해주셨으면 한다. 할머니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게. 여행을 설득하는 과정에 어느샌가부터 이웃 주민들,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모두가 알게 모르게 동참하고 있다.



#에필로그

이번 밀당도 성공이었습니다. 특별할 거 없지만 맛있는 거 먹고 바다 보고, 사진 왕창 찍어 왔습니다. 돌아올 땐 역시 집이 편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일탈이 있어 더 소중함을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벌써 입추가 지났던데 남은 여름 즐겁고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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