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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뚱이 Sep 14. 2023

오손조손 여행기-할머니의 여수 2

우리의 여수


  자식들이 아직 학생인데 할머니, 할아버지만 따로 나와서 살았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던 여수살이 이야기를 조금만 더 덧붙이며 시작하고 싶다. 나도 믿기지 않아 놀라며 여쭤보니, 지금이랑 시대도 다른 게 지금은 국민학생, 즉 초등학생이면 아직 어리다며, 부모님과 자녀들이 따로 사는 건 상상도 못 하지만, 그때는 그 정도면 그래도 꽤 클 만큼 컸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집이 허전해서 안 된다며 나에겐 증조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만류하셨다고 한다. 끄대는 사실 상상도 못할 정도로 대가족이 한 집에서 살았고, 아마 고모할머니, 작은할아버지도 함께 사셨을 거고, 돌볼 사람은 동네에 많았던 지금과는 많이 다른 시절이었다. 무엇보다 자식들도 여수로 따라오지 않으려 해서 둘만 가게 되었다는 사연. 안 보고 싶었냐고 하니까, 생각보다 자주 왕래하셨다고. 그 당시 좋지 않았던 대중교통에도 불구하고 돈 타러 아빠 형제들은 어린이들끼리 엄마, 아빠를 찾아 여수로 찾아오기도 했었다는 이야기. 여수 여행 첫날 숙소에서 아는 사람이 주인공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뒤늦은 중혼생활이랄까. 오자마자 형제 8명인 대가족에 시집와서 맏며느리로서, 결혼생활이라기보다는 며느리, 시누이, 형수 생활이 우선이었던 할머니에게. 그 시절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이를 다 낳아놓고, 둘이서만 다시 살림살이를 어떻게 꾸려나갔을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분명 사이가 좋지는 않으셨고, 종종 다투셨었다. 사실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도 모두 기억하실 만큼, 우리에겐 좋은 할아버지셨다. 마르고 키가 크신 할아머지는 한 손으로 닭의 손을 잡고, 나는 포대기에 업고 병원에 다니셨다고 한다. 버스비는 아까워하면서도 어린이 영양제 노마골드 만원 짜리, 비쌌던 학습 전과도 척척, 그리고 병원 퇴원하는 날 한창 유행하던 텔레토비 인형을 사주셨던 할아버지였다. 기죽지 말라고 손녀들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늘 은행에서 100원짜리, 500원짜리 새 동전 뭉치를 받아와 하루에 500원씩 용돈을 꼬박꼬박 주시며, 문방구에서 다른 아이들 사 먹는 거 구경만 하지 말라며, 손녀들 학교 갈 때마다 서랍에서 동전을 꺼내 손에 쥐여주셨던 분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마냥 좋은 아버지, 남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부부란 게 뭔지 그렇게 싸웠으면서도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생일 한 번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이가 별로 없어 고기도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던 걸 내내 마음에 걸려 하셨다. 그랬던 두 분은 여수에선 어땠을지 물음표로 남아 있다.


  그때 무슨 일을 했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여수에서 4년 세월의 많은 부분은 생략되었지만, 그때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는 할머니 표정을 보니 그 기억들이 마냥 힘든 기억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많은 것들이 흐릿했지만, 여수에서의 삶의 마침표는 뚜렷했다. 증조할머니께서 부엌에서 넘어지시며 할머니는 다시 원래 살던 집으로 오시게 되었다는 것. 자네가 없으면 집안이 안 돌아간다고 증조할아버지의 부탁으로.


  오션뷰 호텔에서 흐릿한 저 바다 너머 산을 바라본다. 할머니는 오션뷰를 좋아하신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 묵을 때, 아침이면 바다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등이 먼저 눈에 들어오곤 한다. 할머니의 제 2의 고향 같았던 중흥도 바다가 가까운 동네로 배를 타고 이동하는 동네였다고 한다. 그동안 할머니께서 이렇게 아침마다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셨던 것은, 마냥 바다를 자주 보지 못해서, 신기해서뿐만 아니라 그때 그 시절, 바닷가 마을에서 살았던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직 할아버지, 할머니만 아는 이야기. 할아버지에겐 이제 이야기를, 그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므로, 이제 내가 의존할 것은 할머니의 이야기뿐이다.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 때 얼마나 많은 이야기도 같이 사라지는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슬픈 이야기, 기쁜 이야기, 반짝거렸던 이야기. 이야기 없는 사람은 없는데, 누구나 각자 이야기의 주인공인데, 들은 사람 없이, 남길 사람 없이 함께 떠나는 무수히 많을 이야기들.      


대화 끝에 할머니가 마지 못해 이야기를 하신다. 자식들이 안 보고 싶을 리가 있냐고. 그때는 아이들을 너무 예뻐하면 흠이 되기도 했어서, 참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 마음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색하지 않다가 뒤늦게서야 끝내는 진심.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바다를 쳐다보지 않았을까.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동네, 그래도 파도처럼 찾아오는 허전함에 할머니가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은 내 상상으로 채워진다. 모든 걸 알 수는 없겠지만,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이야기를 이렇게 묻고, 듣고 기억에 담으면서, 할머니의 삶과 더 가까워진 여행이 드는 여행의 서두였다. 할머니와의 여행은 새로운 추억을 쌓는 동시에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이야기를 모으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가 콸콸 쏟아지던 날 여수 추억도, 오래오래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에필로그

여행기인데, 여행 이야기는 안 나오고 계속 다른 곳으로 새는 느낌이라 김새셨을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사실 비가 많이 와서 뚜벅이끼리 자주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았고, 이번엔 특히나 정적이었던 여행이어서 사실 여행기라고 할 만한 이야기들은 없지만 이어서 여수 여행에서 생긴 건져 올린 소소한 이야기들 이어나가겠습니다. 기다려주시는 분들과 새로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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