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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뚱이 Oct 16. 2023

오손조손 여행기 - 여수 2, 환대의 기억

환대에는 환대를



여수에서 둘째 날은 조식 뷔페로 시작되었다. 조식 뷔페는 원래 아침을 잘 먹지 않는 편이라 숙박비에 포함이 되어 있지 않다면 비용을 굳이 추가해서 먹진 않는 편인데, 이번엔 할머니와 함께하기도 했고, 2인 조식권 무료 증정이라 조식 1인 추가해서 가족 함께 오랜만에 뷔페를 먹었다. 닭과 내가 조식 어쩌고 이야기하는데, 할머니가 ‘주식’으로 알아듣고 대노한 것은 안 비밀이다.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가 많아 주식에 민감하신 편이다). 할머니는 이렇게 종종 사오정 같으실 때가 있다. (아주 살짝 닮기도 했다.)

여수 호텔 뷔페라 나름 기대했는데, 오랜만에 하는 아침 식사라 잘 들어가지도 않았다. 종류가 간소했지만, 천천히 오래 먹었다. 라테까지 만들어 먹으면서. 시간을 꽉 채우며 즐기는 동안 할머니가 좋아하실 법한 음식을 부지런히 날랐다. 할머니와 뷔페는 보리밥 뷔페, 호텔뷔페 2번 이렇게 가보았는데, 뷔페에 가면 일단 잡채, 생선 요리처럼 할머니가 좋아하실 법한 음식을 맛보기처럼 조금씩 골라 담아 나른 후, 잘 드시는 걸로 추가 보충을 한다. 이번엔 닭과 오랜만에 협동해 음식을 골고루 담아 왔다. 음식은 그렇게 특별하진 않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색칠 놀이 세트가 있었던 게 인상 깊었다. 언제나 심심한 어린이들과 정신없을 부모님을 위한 호텔의 센스와 배려가 인상 깊었다. 몇몇 어린이들을 보면서 어린이들이 지금을 나중에 추억하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할머니도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셔서 아이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셨다.


밥 먹고 또 늘어져 있는 휴가의 즐거움을 맘껏 누리다가 그래도 여수에 왔는데 관광지 한 군데는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동도로 향했다. 숙소에서 거리는 있었지만 갈만한 거리였다. 오동도는 정말 어렸을 때 가봐서 기억이 흐릿했는데, 오동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숲은 꽤 걸어야 해서 못 가고, 열차 왕복으로 허무하게 관광이 끝났다. 곧바로  할머니랑 저녁 먹을 식당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갔다.

우리 할머니는 가끔 벌컥 화를 내시기도 하지만, 스스로 일컫는 것처럼 양심가(할머니어)이자 착한 사람이다. 밖으로 함께 외출하면 알 수 있다. 식당에서 밥 드시고 나면 서빙하시는 분들 힘들까 봐 그릇을 최대한 정리하시고, 호텔에서도 마찬가지로 정리하느라 바쁘시다. 꽤나 넓었던 카페엔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는데도, 너무 오래 있으면 민폐라고 엉덩이를 들썩이셨다. 정말 동네 카페 같은 분위기에 10년 전에 유행했던 추억의(?) 책들을 보기도 하고 새로운 책들을 발견해 읽기도 하고, 편히 쉬다가 저녁으로 할머니가 좋아하시지만 자주는 못 먹는 장어구이를 먹고, 닭은 장어를 못 먹어서 혼자서 햄버거 사 먹고, 그렇게 둘째 날이 지나갔다. 이제 비가 거의 그쳐서 그런지 밤에도 빛나는 배들을 보면서 마무리했던 하루.


다음날 느긋하게 체크아웃하고, 택시 타고 터미널로, 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우리 고장으로 향했다. 뚜벅이의 여행은 끝이 없어 집으로 가는 택시 타기 전 식당에서 비빔밥과 들깨수제비를 먹고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해 짧고도 긴 여정이 끝이 났다. 특별할 게 없는, 맛집은 딱 한 번 가고, 관광지도 겉핥기로 다녀온, 사실 집에 있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여행이었지만, 할머니와의 여행은 딱 이 정도의 속도가 맞다는 것을, 그동안의 쌓인 여행으로 체득하고 있는 딱 알맞은 여행이었다.


 약간의 시행착오와 장마가 있었지만, 나름대로의 기억 남는 장면들이 있는 여행이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 속에는 사람들이 있다. 여수에서 만난 사람들. 특히 택시 기사님들과 식당 직원분들. 첫 번째 갔던 식당. 할머니와 함께 갈 때 아이러니하게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간접적으로도 이해하게 된다. 할머니는 어딜 가든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만 노인이라고 주눅 들어하시는데, 그렇게 눈치를 보고 있는 할머니께 친절하신 분을 볼 때면 무한 감사한 마음이다. 본인 아이에게 잘해주는 사람들을 보며 감사함을 느끼는 부모님의 마음을 할머니에게 잘해주시는 분들을 보며 짐작한다.

특히 그런 방면에 있어 택시 기사님들의 입담이 강력한 편인데, 택시 기사님들은 투머치톡은 가끔은 피로하기도 하지만, 손녀들과 여행 다니는 할머니를 높이 치켜세워주시고, 여행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셔서 또 본인의 부모님 이야기도 해주셔서 여행 밀당에 힘을 은연중에 보태주고 계신다.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할 존재라는 인식도 할머니가 여행을 주저하시게 되는 요소 중 하나인데,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할머니와 손녀들의 여행을 신기해하다가 낯선 여행지에 온 할머니를 적극적으로 환영해 주시고, 지지해 주시는 분들로 인해서 할머니의 기분이 한결 가벼워지는 걸 느낀다.


그렇게 할머니를 배려해 주시는 분들을 보면 내가 배려받는 것보다 훨씬 기쁜 마음이 든다. 그건 어떤 마음이라 설명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런 훈훈한 장면들을 직접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간질거려지며 굳게 다짐한다. 나도 누군가를 환영함으로써, 이런 환대에 다시 보답하자고. 여행을 하며 제일 느끼는 감정은 다름 아닌 감사다. 느리고, 배려받아야 하는 존재들은 눈총 받기가 쉽고, 동행하는 사람들은 민폐를 끼치게 될까 봐 땀을 뻘뻘 흘리지만, 웃으며 다정히 건네는 배려를 받을 땐 사회란 것은 뉴스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차갑거나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런 경험과 깨달음만으로도 여행이 충분히 값졌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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