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아팠고, 아프고 있을 누군가에게
내가 좋아했던 나의 모습을 떠올린다.
친구들과 친한 사람들에게 개그맨처럼 웃음을 주고 있는 나의 모습.
일하는 팔자를 타고 난 엄마의 집안일을 거두는 막내딸의 모습.
여자들만 있는 집에서 목욕탕은 같이 갈 순 없어도 아빠 당신이 좋아하는 등산이나 경제 얘기에
집중해서 듣는 아들 같은 딸의 모습.
일터에서는 동료와 선후배에게 인정받으며 10년째 즐겁게 일하고 있는 한 매장의 점장.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찾아본다. 무턱대고 배우라는 꿈을 이뤄보고자 1년을 대학로 바닥에서
도시락 심부름, 대본 제본, 조명, 음향 기기 다루기도 하고
연습실 청소하며 무대에 오르는 꿈을 꾸던 20대의 순수했던 S, 꿈을 대신할 꿈을 찾아 사색을 위해
골목을 찾아다니고 여행을 떠났던 S.
감정을 글을 읽고 써가며 해소해 내던 S. 그렇게 나를 만들어준 대상들에게 감사하고,
사랑하고 좋아할 줄 아는 나.
내가 중심에만 있으면 행복했을까.
중심이어서 행복했던 시절이 있듯이, 주변이 돼야 행복할 시절이 있다.
누군가를 가만히 바라봐도 마음이 충만해지고 행복해지는 시기도 있다.
그리고 그런 누군가를 도와줬을 때 나에게도 빛이 함께 쏟아지기도 한다.
어찌 되었건 ‘나의 궤도’ 안에만 있으면 된다.
이런 일을 겪었다고 세상을 다 알게 되었고, 나란 사람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새로운 문제에 당면한 채 머리를 쥐어 싸매고 실수하고, 사과하고, 울고, 웃기를
반복해나가고 있다.
다행인 것은 스스로 파고 들어가 구덩이를 만들지 않고 있다는 것. 일상에서 벌어지는 문제들과
관계의 어긋남 속에서 당당히 정면돌파를 하고 있다는 것.
어제는 내가 힘들고 헤매고 있던 시기에 똑같이 본인의 구덩이를 파고 있는 동생과 아침이 다되도록 얘기를 나눴다.
나는 나의 얘기를 그녀에게 하다가 멈췄다. 그녀 스스로 헤쳐 나가야 될 것이다.
그저 나는 너의 근방에 있는 사람으로서 너를 응원하고 있고, 네가 행복해지길 소망한다는 마음을 비췄다.
나 또한 올해 진급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나와 같은 좌절감을 겪고 있는 친구들도 늘어나고 있다.
주저앉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정말 잘 살고 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그 결과가 외부에서 부정당하더라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족해 가며 더 나은 길을 찾아야 한다.
내 발걸음을 내가 옮길 수 있도록.
오늘도 여전히 중심으로 가려는 나와 벗어나려는 나는 항상 힘겨루기 중이다.
그 힘겨루기로 인해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이렇게 상처를 받고도 단단하게 살아남으려 하고 있다.
나는 나를 좋아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