亡(망할 망)에서 望(바랄 망)으로
나는 항상 인생의 주인공이길 바랐다. 그리고 모든 표가 나길 바랐다.
일에는 결과물이, 사람들에게는 감정표현이 보이길 바랐다. 이는 모두 타인에게 받는 인정이었고, 이것이 행복의 전부인 줄 알았다.
“이건 소영이가 했대.”, “벨라는 다 알고 있어.”와 같은.
내가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에서 내가 모르는 일은 없었고, 내가 개입되지 않은 일은 없었다.
하지만 몇 번의 수술을 반복하며 임시직 소속으로 변경되었을 때는 얘기가 달라졌다.
사내 게시판을 보면서 함께 성장했던 파트너들이 승진하고 다른 업무로 보직이 변경되는 모습을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의 상황이 괴로웠다.
관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찾아와 주지 않는 이상 나는 찾아갈 수 없는 상태였기에, 관계에서 나는 자주 빠지거나 아예 아웃이 돼버리기도 했다.
열심히 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니 자존감이 바닥을 쳤고, 마음은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세 번째 수술 이후 안정가료에 집중하기로 한 때부터는 마음가짐을 다르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관계의 중심이 되려고 하는 마음 버리기. 이기심을 버리고 타인의 삶을 보는 연습을 하기.
해보니 내 인간관계가 좋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나는 남에게 인정받고만 싶어 했지, 남을 인정하지 않았다. 듣는 척, 인정하는 척하며 내 얘기할 타이밍을 찾느라 급했었다.
이런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매끄러워 보였을지언정 속은 텅 빈 강정 같은 관계가 대부분이었다.
타인의 삶을 보니, 존경하고 배울 모습들이 많았다. 그리고 척을 하지 않아도 됐다. 알아서 그들의 가치관이 이해가 되었고, 그들의 삶이 보였다.
조급함과 불안한 마음은 결코 좋은 결과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한걸음 뒤에서 보니 내가 부러워하던 사람들의 그만큼의 노력과 열정이 보였고,
나보다 더 힘든 상황과 결과에 있는 사람들의 처지도 보였다.
그리고 나 스스로를 타인처럼 바라보았다.
나란 사람은 열정적이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론 감정적이라 불같이 발끈하다가도 스스로를 혼내는 사람이었다.
울기도 잘 울었다. 남의 힘든 상황에 같이 울고 도와줄 방법을 찾는 사람이었다. 현재의 나는 모든 관계를 다 아름답게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도 있었다. 할 수 있을 만큼만 하자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 노력은 일에 대해서도 보였다. 쉬는 기간 동안 업무적으로 부족했던 부분을 찾아보았다. 나는 문서작성 시간이 오래 걸렸다. 프로그램을 다루는 능력이 미숙했기 때문이다.
쉬는 동안 컴퓨터 자격증을 공부했다. 어릴 때 컴활이라는 교과목이 있었는데. 이때 좀 더 열심히 해둘걸, 자책하며 자격증을 땄다.
몇 가지 자격증을 따고 나니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나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예술하는 사람은 배고프다, 불안정하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안정적인 일 하나를 하자.’라는 마음으로 커피일을 시작했다.
커피일은 하루하루가 변화무쌍해서 즐거웠다. 그리고 사람이나 풍경을 관찰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퇴근하고 커피 향을 맡으며 공부를 할 수도 있어서 좋았다.
하다 보니 일이 적성에 맞았고 인정을 받았다. 평소 사람을 잘 관찰하다 보니 항상 같은 음료를 마시는 고객과 바뀐 헤어스타일이 눈에 들어왔고, 기운 없어 보이는 모습도 알아챌 수 있었다.
그걸 알아보면 고객 열 분 중 여덟 분은 기분 좋아했고, 커피로 충전받으러 왔는데 따듯한 관심에 기분이 좋아졌다는 칭찬을 해줬다. 그런 작은 칭찬은 이 일에 대한 영감을 줬다.
하루하루를 의미를 가지고 열심히 하다 보니 한 업계에서 8년째 관리자로 일을 계속하게 되었고, 점점 칭찬을 받을 일보다 관리하고 운영에 머리를 싸매는 일이 많아졌다.
어느새 의미 있다고 생각한 일엔 고개 숙이고, 목표에 목메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몰아치듯 살았던 삶에서 발견하지 못하던 것들 보게 되면서,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제일 큰 가치는 의미를 찾아가는 길이다. 찾는 길이 항상 다 맞는 길은 아니었다. 돌아가기에,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꽃은 항상 봄에만 피는 줄 알았는데,
백일홍처럼 7월에서 10월 뜨거운 여름과 가을 사이에 피는 꽃도 있고, 내 새벽 출근시간에 맞춰서 옆집 강아지의 산책도 시작되는 것, 동네 마트에 할머니만 나와 계셨는데
어느 순간부터 할아버지가 같이 나와 앉아계시는 모습도 알아채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잠시 가게를 접었다가 다시 오픈하는 사장님의 설레는 표정과 걱정하는 사장님 아내분의 표정까지도.
내가 나를 사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산책을 좋아했다. 걸어 다니기만 해도 주변을 느끼며 설레어하던 20대 밝고 꿈 많던 청춘이 있었다.
그때의 그 청춘은 무엇도 의식하지 않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출근길의 공기가 상쾌하고, 퇴근길의 달을 보며 나 스스로에게 고생했다고 격려하는 나.
지금까지 관계가 유지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시절 만난 인연들이었다. 그렇다, 내 인간관계가 마냥 형편없지만은 않았다. 난 꽤 잘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존재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과 이념으로 존재하고 거기에서의 나는 굳이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어디서든 나 스스로에겐 중심에 서있다. 너무 나 스스로에게나 누군가에게 쏠려있지 않으면 된다.
인생은 항상 시소처럼, 엉덩방아 안 찧게 양쪽에서 잘 놀기.
나의 삶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따뜻하게 변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