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진한 나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뭐야 잠깐 눈감았는데, 벌써 아침이야?"
성장통(?)인지 새벽까지 보채는 아이를 달래주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아이의 울음소리에 눈을 떴을 뿐인데 햇빛이 내리쬐는 아침이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나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을 뿐 몸과 마음은 천근만근 무겁게만 느껴졌다.
자동반사처럼 아이 이름을 부르며 일어났던 어젯밤과 새벽의 내 모습은 어디 갔을까?
우는 아이 달래주기, 기저귀 갈기, 이유식 준비하기, 장난감 치우기, 세탁기 돌리기, 청소...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지만 내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나에게
나 왜 이러냐, 정말…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스스로를 자책했다.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일까? 움직이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의 무의식이 스스로 정지 버튼을 눌러버린 것일까?
사실 그 순간 일어나기 싫거나, 귀찮거나, 쉬고 싶은 마음보다는 그냥 잠시만이라도 '멈추고 싶었던 상태’였던 것 같다.
오늘은 정말 지쳐서 마음이
더 쪼그라드는 하루였다.
그날의 육아일기에는 '지친다’라는 표현이 다섯 번이나 적혀 있었다.
누구도 나를 챙기지 않는 것 같은 외로움,
내일도 똑같은 하루를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답답함 그리고 그 하루 속에서 나조차 나를 잊어버린 듯한 무감각과 무기력...
무기력이라는 감정의 토네이도가 어김없이
찾아와 나를 짚어 삼켜버렸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말은 변명이 아니라 마음과 몸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무의식 속 외침이었다.
하지만 나는 또 어김없이 그 외침을 외면한 채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었다.
“정신 차려야지.”
“아빠잖아"
“애가 울고 있잖아.”
"움직여야지! 일어나!"
마음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6년 전 육아 읽기를 오늘 다시 꺼내어 읽으며 알아차린 사실 한 가지가 있다.
아직도 나에게는 어색한 표현이지만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게 “해야 할 일 좀 미뤄도 괜찮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라도 충분해.”라고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그리고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 있었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몇 분 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숨만 쉬는 시간을 보냈다.
그 순간, 마음 한구석에 아주 작지만 “이게 회복이구나.”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오늘도 똑같은 하루였지만 그 안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고, 그 멈춤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을 또 깨달았다.
무기력도 감정이며 감정에는 반드시 이유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볼수록 감정과 더 가까워짐을 느끼게 된다.
“지금 내 몸과 마음이
진짜로 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