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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5.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 탈진한 나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by 위드유코치


"뭐야 잠깐 눈감았는데, 벌써 아침이야?"


성장통(?)인지 새벽까지 보채는 아이를 달래주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아이의 울음소리에 눈을 떴을 뿐인데 햇빛이 내리쬐는 아침이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나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을 뿐 몸과 마음은 천근만근 무겁게만 느껴졌다.


자동반사처럼 아이 이름을 부르며 일어났던 어젯밤과 새벽의 내 모습은 어디 갔을까?


우는 아이 달래주기, 기저귀 갈기, 이유식 준비하기, 장난감 치우기, 세탁기 돌리기, 청소...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지만 내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나에게

나 왜 이러냐, 정말…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스스로를 자책했다.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일까? 움직이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의 무의식이 스스로 정지 버튼을 눌러버린 것일까?


사실 그 순간 일어나기 싫거나, 귀찮거나, 쉬고 싶은 마음보다는 그냥 잠시만이라도 '멈추고 싶었던 상태’였던 것 같다.


오늘은 정말 지쳐서 마음이
더 쪼그라드는 하루였다.



그날의 육아일기에는 '지친다’라는 표현이 다섯 번이나 적혀 있었다.


누구도 나를 챙기지 않는 것 같은 외로움,

내일도 똑같은 하루를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답답함 그리고 그 하루 속에서 나조차 나를 잊어버린 듯한 무감각과 무기력...


무기력이라는 감정의 토네이도가 어김없이
찾아와 나를 짚어 삼켜버렸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말은 변명이 아니라 마음과 몸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무의식 속 외침이었다.


하지만 나는 또 어김없이 그 외침을 외면한 채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었다.


“정신 차려야지.”
“아빠잖아"
“애가 울고 있잖아.”
"움직여야지! 일어나!"


마음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6년 전 육아 읽기를 오늘 다시 꺼내어 읽으며 알아차린 사실 한 가지가 있다.


무기력이 찾아올 때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억지로 하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라는 것을...


아직도 나에게는 어색한 표현이지만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게 “해야 할 일 좀 미뤄도 괜찮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라도 충분해.”라고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그리고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 있었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몇 분 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숨만 쉬는 시간을 보냈다.


그 순간, 마음 한구석에 아주 작지만 “이게 회복이구나.”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오늘도 똑같은 하루였지만 그 안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고, 그 멈춤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을 또 깨달았다.


무기력도 감정이며 감정에는 반드시 이유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볼수록 감정과 더 가까워짐을 느끼게 된다.


“지금 내 몸과 마음이
진짜로 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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