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일에도 마음이 휘청이는 나에게
별일도 아닌데 짜증이 났다.
사소한 말에도 마음이 상하고, 작은 소음조차 참을 수 없던 오늘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예민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아주 작은 자극에도 마음이 덜컥 주저앉거나, 소스라치게 놀랐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겼을 말인데도 오늘은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더니 결국 내 마음을 뒤집어 놓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이렇지?”
“왜 이렇게 날카로워졌지?”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예민하지?”
스스로에게 자꾸 되묻게 되는 오늘 하루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베이고, 아이 울음소리는 나의 귓속을 쿵쿵쿵하고 계속 때린다.
몸도 마음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걸, 나는 오늘에서야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최근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 못했고, 아내에게 조차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채 혼자 감당하며 애쓰고 있었던 것 같다. 피로감과 억눌린 감정이, ‘예민함’이라는 모습으로 올라온 것은 아닐까?
그때의 육아 일기에는 절절함이 깊이 묻어난다. 그날의 상황과 감정들이 생생하게 다시 떠오르는 것 같다. 굳게 닫아 두었던 서랍 속 감정! 예민함으로 가득 찬 내가 문제였을까?
예민함,
그것은 감정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신호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무시한 채,
“왜 이렇게 예민하지?”, “왜 이렇게 까칠하게 굴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또 나 자신을 미안함과 죄책감의 구렁텅이로 몰아세웠다.
지쳐 있는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스스로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다정하고 따듯한 인정이었는데...
사실 그 어떤 감정도 ‘사라진 게 아니라, 서랍 속에 갇혀 눌려져 있던’ 것뿐이다. '기운 내야지, 꾸역꾸역 버텨야지' 난 늘 이런 식으로 내 감정을 덮어두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예민함은 감정의 터짐이 아니라 그저 ‘지쳐 있음의 신호’였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청소도 미뤄두고, 노트북도 켜지 않고, 아이 하원도 20분 늦게 가고, 아이와 둘이 먹는 저녁도 조금 늦게 챙겨 먹기로 다짐했다.
육아 일기 속 나와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애쓰는 나”가 아니라 “잠시 쉬는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하는 말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기로 했다.
“그럴 수 있어. 예민할 만했어.”
“너 지금 지쳐 있었어. 그저 지쳤을 뿐이야! 괜찮아!”
그냥 힘들었을 뿐이라고 내 감정에게 말하면 될 것을 그조차 참으려다 더 크게 아팠던 그 시절의 나!
이젠 참는 대신, 그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내 감정은 언제나 나를 보호하려고 애쓴다. 그 보호의 신호를 억누르기보다, 잠시 멈추고 들어주는 연습을 꾸준히 해내고 싶다.
그것이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다정한 첫걸음이기에 오늘의 예민한 나에게 마지막으로 딱 한 마디만 해주고 싶다.
“지금 내 감정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내가 진짜 필요로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