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이하 <가오갤2>)에는 두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한 아버지는 유전적; 생물학적 아버지 에고(커트 러셀 扮)이고, 다른 아버지는 키운; 함께한; 문화적 아버지 욘두(마이클 루커 扮)입니다. 에고는 수백만 년을 홀로 우주를 떠돌며 분자(molecules)를 통제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래서 그는 분자라는 재료를 이용해 자신이 생각하는 형상으로 실체화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비록 달보다 크기가 작다고는 하지만 지금 그가 살고 있는 행성 또한 자신의 능력으로 분자를 뭉쳐서 만들어낸 장소입니다.
반면 키운 아버지 욘두는 뭉쳐서든 뭐든 만드는 능력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그의 능력이라고 한다면 깨부수고, 제거하고, 해체하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1>(이하 <가오갤1>)에서부터 계약 위반은 일상 다반사입니다. 결국 <가오갤2>에서는 그의 부하들 조차 참지 못하고 들고일어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부하들이 그가 예전에는 두려움(afraid)이 없었는데, 물러 터졌다(soft)라며 변했다고 평가합니다.
에고(ego)는 타자로부터 (대강) "신(celestial)"이라 불립니다. 그런 그는 홀로 있음에서 충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 그 너머로 나갑니다. 자신의 세상 밖, 외부로 나가서 내린 결론은 자기 자신의 확장(expansion)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확장은 자기모순입니다. 나라는 소문자 i로 있음을 만족하지 못해 의미를 찾기 위해 나 너머의 세계로 갔습니다. 그런데 나 너머의 세계를 모두 나로 만들겠다는 것은 소문자 i를 대문자 I로 만들겠다는 것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새로운 의미가 생성된 것은 없습니다. 이미 그가 모순된 목적을 세웠을 때부터 그의 실패는 필연적이었습니다.
물러 터진(soft) 욘두는 계약을 파기하고, 자신이 속한 집에서 축출당하고, 자신이 이끄는 집단을 해체했습니다. 계약, 집단, 부하 모두 사회적(social) 관계의 다른 말들입니다. 욘두가 해체한 것은 사회적으로 부여된 당위들입니다. 그리고 그 사회적 가치/당위/책무 등을 파기하고, 탈퇴하고, 해체한 이유는 그 사회적 관계를 넘어서는(beyond) 관계, 즉 가족(famliy) 관계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욘두(yondu)의 비욘드는 가족인 셈입니다. 우리가 스타로드(크리스 프랫 扮)의 시선에서 욘두를 봐서 그렇지, 욘두의 시각에서는 아버지의 '일관된' 사랑이었음을 <가오갤2>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만들 수 있고,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에고(ego)는 역설적이게도 끊임없이 욕망(desire)하는 캐릭터입니다. 필요충분조건인 에고(ego)가 결핍 상태인 아이러니입니다. 반면 자신의 집단, 자신의 지위, 자신의 부하 모든 것을 잃은 욘두는 모든 의미를 상실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는 의미 상실 혹은 결핍을 느끼지도 않고, 그래서 욕망하지도 않습니다. 이 두 캐릭터의 차이는 자기 자신(ego)을 넘어섰느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욘두는 사랑을 하는 캐릭터입니다. 사랑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행위입니다. 그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가며 스타로드에게 마음을 쏟습니다. 앞서 그가 모든 사회적 관계, 의무, 가치를 해체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에고(ego)는 나르시시스트적 면모를 보여줍니다. 오직 그가 사랑하는 대상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 아닌 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 자신으로 수렴시키려 합니다. 어쩌면 사랑(love)의 말의 대척점으로 확장(expansion)이 사용된다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확장은 필연적으로 파멸에 이릅니다. 앞서 말했듯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가오갤2> 마지막에 욘두를 화장하는 장면은 마치 분자들이 우주에 퍼지는 듯 보입니다. 영화 내내 분자들을 뭉치는 재주가 있는 신적 능력을 지닌 에고에 대응한 욘두를 잘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해체는 마침내 의미를 낳았습니다. 스타로드는 그의 지극한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의 옛 동료들은 "별이 되어 보자"라며 그의 죽음을 기리기 때문입니다.
2. 가족되다
아버지 에고는 머리, 즉 이성을 상징합니다. 에고의 불멸의 원천인 행성의 빛 또한 이성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에게 이성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자신의 감정(emotion)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만나 흔들리고, 한번 더 만나면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스타로드 어머니를 죽인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감정을 소거하는 방식으로 이성만 남긴 상태입니다. 그가 감정을 대하는 태도는 맨티스(폼 클레멘티 에프 扮)를 대하는 딱 그 정도입니다.
맨티스는 에고가 유일하게 데리고 다니는 더듬이 외계인입니다. 그에게는 감정을 느끼고, 상대로 하여금 그 감정 상태에 머물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에고가 애완동물처럼 그녀를 외부에 둔 것은 그가 소거시킨 내부의 감정입니다. 의미를 찾는다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외부에 전시하고, 타자화시킨 셈입니다. 모 보험 광고를 보시면 걱정인형이 나옵니다. 그 인형은 걱정은 자기들이 할 테니 걱정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와같이 맨티스는 에고에게 감정 인형입니다.
에고는 자신이 창조한 행성에서 거주하는 유일한 타자인 맨티스에게 일말의 사적 호기심도 없습니다. 스타로드와 드랙스(데이브 바티스타 扮)가 맨티스에게 "사적인 것을 물어봐도 될까"라고 물으니, "이런 질문 처음이야!"라는 그녀의 반응이 이를 증명합니다. 에고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 = 우주 = 나]가 되어야 하기에, 자기 외부의 모든 것은 이 목적을 위한 수단, 즉 도구에 불과합니다. 스타로드 또한 자신과 의견을 달리 한 순간 그 존재를 배터리로 전용하려는 것도 자식 또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일관된 그의 태도입니다.
아버지 욘두는 마음을 상징합니다. 욘두만이 아니라 가족이라 일컫는 영화 내 모든 인물들이 마음에 대해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가오갤2>는 영화 도입을 에너지 먹는 괴물과의 전투로 시작합니다. 이 전투 장면을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전투는 뒷전이고 그루트의 앙증맞은 댄스가 핵심입니다. 전투는 아이의 시선에서 강건너 불구경으로 제시할 뿐입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요? 이 도입에서 계속 반복해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목숨이 일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그루트를 중간중간 팀원이 챙기는 장면입니다. 여기에 대칭되는 장면이 영화 후반에 가족이 부재한 그루트가 밖에서 두들겨 맞고 풀이 죽어 걷는 부분입니다. 가족이 있고, 없고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을 함께하는 존재의 유무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빛, 이성으로 수렴하려는 에고와 싸우는 나머지 모두는 가족이라는 연대감을 공유하는 자들입니다. 가족은 유전적 조합에 의해 나온 결괏값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구성원1+구성원2+구성원3= 가족이라고 딱 떨어지는 개념도 아닙니다. 함께 많은 것을 겪고, 상대를 염려하고, 여러 감정을 공유하는 그래서 [같은 마음의 상태에 이른 집단]이 가족입니다. 그래서 가족이 모이면 시끄럽습니다. 서로 다른 존재가 같은 마음의 상태에 이르려면 쓸데없는 말을 하고, 또 하고, 또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오갤2>에서 "쓸데없는 소리 하고, 소리만 지르고... 그래도 가족이었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연락 안 되는 로켓을 걱정하는 가모라(조 샐다나 扮), 언니를 원했을 뿐인 네뷸라(카렌 길런 扮), 포유류는 한 번에 50번 점프를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700번의 점프를 하는 데 망설임 없는 너구리 로켓(브래들리 쿠퍼 목소리), 가족은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아라는 드랙스, 너를 아들로 두다니 운이 좋다는 욘두 이 모두가 마음을 함께하는 가족입니다. 그래서 <가오갤2>는 태어나며부터 가족, 가족이다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된 [가족되다]가 곧 가족임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힘을 통제하는 건 머리를 쓰는 게 아니야... 마음이지. (You think when I make this arrow fly... I use my head?) -<가오갤2>, 욘두의 대사를 찰떡같이 해석한 말
3. 가족 너머 공동체
가오갤 멤버들은 똑같이 생겨먹은 구성원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모이면 시끄럽습니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입은 멈추지 않습니다. <가오갤2>에 등장하는 소버린들은 여럿이지만 하나인 듯 보입니다. 소버린은 유전자 선별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많은 구성원이 있어도, 조용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소수이거나 하나입니다. 가오갤의 분위기와 대비됩니다.
가오갤은 민주정체를 상징합니다. 그들의 의사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설득이고, 설령 그렇지 못했어도 같은 마음의 상태를 위해 대화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선택에도 그 대전제는 '가족'이란 공동체가 있습니다. 반면 소버린(soverin)은 말 그대로 군주제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여럿이지만 하나로 보입니다. 대사제(엘리자베스 데비키 扮)의 입을 통해서 자신들은 금색에, 가치 있고, 각각의 구성원이 맡은 역할이 있다고 말하며 자부심을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모두가 아니라 소수입니다. 유전자를 재생산하는 방식이 개개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수가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스타로드가 자신의 아버지를 찾은 기쁨에 도취되어 있을 때, 가모라는 연락이 안 되는 로켓을 걱정하며 스타로드와 싸웁니다. 아버지라는 말을 '원인'이라는 말로 바꿔 생각해 봅시다. 스타로드는 자신의 유전적 원인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드디어 자신의 본질을 찾게 된 것일까요. 본래 사태나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 혹은 출발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건 '본래', '원래'가 있어야 성립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는 어쩌면 혈통, 가문, 지역, 학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취향, 선택, 행동, 의지입니다. 즉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입니다.
따라서 스타로드와 가모라가 로켓의 안위를 두고 충돌하는 장면은 민주정체에서 중요한 것이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라고 확장해 볼 수 있습니다. 누구를 아버지로 두고, 어디에 살고,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그런 건 왕정이나 귀족정, 과두정 혹은 참주정에서 통해야 합니다. 적어도 민주정이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위 요소가 판단 근거로 작동해서는 안됩니다.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건 민주주의의 숙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지속되는 것은 그 목소리를 내는 각각의 주인들의 대전제인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전제가 있어야만 합니다. 마치 노래를 끊어 놓고 보면 아무 의미 없는 낱낱의 분자, 숫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를 연결하면 울림이 생깁니다. 이 연결은 에고가 뭉쳐서 만드는 것과 전연 다릅니다. 연결은 곧 관계입니다. <가오갤> 시리즈에서 음악이 중요한 기재로 작동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캐릭터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화로움을, 가족임을 음악을 매개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끝으로 스타로드는 음악 300곡을 다시 받습니다. 욘두가 남긴 마음이자 유품입니다. <가오갤1>에서 욘두가 흥얼거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스타로드에게 스며든 그를 드러내는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사랑은 그렇게 감출 수 없고,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행위이며, 자기 너머 존재를 궁금해합니다. 아마도 민주주의 시민의 일이란 바로 그런 개인의 사랑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가오갤>의 음악이 멈추지 않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 여러분의 라이킷은 다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됩니다. 라이킷을 먹고 자라는 호덕 올림.
** 2022년 01월 03일 23시 09분에 윤문을 한 번 했습니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앞서 올린 조악한 글을 읽어주시고 라이킷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