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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작 Dec 24. 2021

제목으로 본 <그래비티>(Gravity, 2013)

'푸른 눈'과 '갈색 눈'의 비밀

1. Gravity(중력)1; 물리적 삶의 조건

영화 <그래비티>는 영화와 관객 사이에 소리를 전달할 매개가 없다는 듯 침묵으로 시작합니다. 관객을 영화로 끌어당기기 위해 화려한 음악과 영상으로 시작하는 여느 영화와 다른 도입이죠. 물론 침묵 덕분에 다른 관객의 음료와 팝콘 섭취 소리로 영화에 몰입하지 못할 수 있지만, 고요함 속에서 제시되는 '푸른 지구'의 풍경은 그것을 뛰어넘어 몰입할 만큼 매력적입니다.


    중력이란 쉽게 말해 '끌어당기는 힘'입니다. 지구 상의 수많은 생명체가 '삶'을 지속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그 근본적인 힘이 없는 공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도입부에 이 공간, 즉 우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소리를 전달하는 매개체도 없고, 기압도 없고, 산소도 없다, Life in space is impossible"이라고요. 삶(life)을 유지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생명체/삶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죠. 그렇게 이 영화는 삶을 유지할 수 없는 공간에서, 역설적이게도 삶을 이야기합니다.


    우주-중력이 없는 이 공간-에서 주인공을 살게 하는 것은 여전히 '끌어당기는 힘'입니다. 우주 밖으로 이탈한 산드라 블록(스톤 박사 역)은 조지 클루니(매트 역)가 끌어당긴 덕분에 다시 우주선으로 복귀합니다. 영화는 중력이 없는 공간에서 적극적으로 잡거나 당기지 않으면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연속된 사건을 통해 보여줍니다. 반대로 살려면 '끌어당기는 힘'이 필요하다고 계속해 강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중력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없으니 영화에서는 끌어당기는 행위를 '줄'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도 사실 수많은 줄들로 엮여 당기고 당겨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영화는 도대체 왜 '중력', '끌어당김'을 강조할까요.


2. Gravity(중대성); 의미란 삶의 조건

    삶의 조건이 상실된 역설적 공간에서, 조지 클루니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지구의 삶'을 묻습니다. 이에 그녀는 "그냥 드라이브해요"라고 간단히 답합니다. 어쩌면 그녀의 삶은 딸을 사고로 잃던 그 순간에 멈췄는지 모릅니다.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그냥 드라이브하는 이유 역시 그 시간 안에 멈춰있기 때문이죠. 담소 나누는 바로 이 장면이, 이 영화가 사건으로 보여주는 중력의 상실을 '의미'의 상실로 연결시켜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물리적 중력을 통해 우리 삶이 온전히 작동할 수 있는 의미라는 중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네 삶에서 중력, 즉 끌어당김이란 '의미(meaning)'를 말합니다. 질량을 갖고 있는 모든 것에 끌어당기는 힘(중력)이 있듯, 이성을 갖고 있는 모든 이에게도 끌어당기는 힘(의미)이 있습니다. 전자는 육체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면, 후자는 정신의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산드라 블록의 드라이빙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표상입니다. 이 영화 전체에서 보여준 일련의 사건들은 산드라 블록이 다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거대한 원운동이기도 합니다. 삶의 조건을 잃은 사람이 삶의 조건이 부재한 공간에서 다시 삶의 조건을 찾아 돌아가며 이렇게 말합니다.


살던가 죽던가 둘 중에 하나야
그런데 무엇이 됐건 엄청난 모험이야!
- <그래비티>(Gravity 2013)


3. Gravity(엄숙함); 삶의 방식

    "살던가 죽던가... 엄청난 모험이야!"라는 대사는 추락하는 우주선 안에서 그녀가 했던 말입니다. 다행히 유언은 아닙니다. 그녀의 말 그대로 삶은 모험입니다. 삶은 어떤 단어, 명사로 가둬둘 수 없습니다. 삶은 그릇으로 담을 수 없는 계속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의미.' 이렇게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미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인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입에서 '엄청난 모험'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 모험의 운동 방식은 거대한 원운동입니다. 앞서 그녀의 '지구-> 우주 -> 다시 지구'로의 귀한, 즉 원운동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여나 이 부분을 관객들이 놓칠까 봐 감독은 보다 더 직접적으로 대사를 통해 표현합니다. 혹시 조지 클루니가 죽음을 앞두고도 포기하지 못한 그 드립을 기억하시나요?


내 푸른 눈을 보고 반하지 않은 여자가 없지...
(구라야) 내 눈은 갈색이야
- <그래비티>(Gravity 2013)


    영화 초반에 산드라 블록을 향해 날린 드립과 똑같은 드립을 반복하며, 죽기 전에 그녀를 '낚는데' 성공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드립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했을까요? 다시 영화 첫 장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영화는 아무 소리 없이 삶의 조건이 부재한 공간에서 삶의 조건 자체인 '푸른 지구'를 보여줍니다. 멀리 우주에서 본 지구는 푸른색입니다. 이 색은 거리를 유지할 때 볼 수 있는 색입니다. 산드라 블록이 조지 클루니에게 갖는 거리감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든 사람이든 정작 가까이 다가가서 본 색은 푸른색이 아닌 갈색입니다. 이 영화는 푸른 지구로 시작해 물가에 젖은 갈색 흙을 얼굴과 가슴에 묻힌 산드라 블록이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끝납니다.


    다시 정리해 보자면, 삶이란 모험은 거대한 원운동을 합니다. 이 원운동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당사자의 입장 그리고 다시 제삼자의 입장으로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이를 영화에서는 '지구-우주-지구'로의 귀환으로 보여주고, 대사로는 '푸른색-갈색'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영화 첫 장면과 마지막 부분의 배치를 푸른 지구와 갈색 땅으로 보여줘 정지된 이미지로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삶의 조건이 불가능한 공간에서 영화 대사, 구성, 이미지 모두 충실하게 삶이 모험이다; 삶은 끊임없는 원운동이다를 감독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있습니다. 멀리서 본 지구는 푸르고, 가까이서 살아야 하는 지구는 갈색이듯 말입니다. 그래서 삶의 조건으로서 그래비티(Gravity)의 마지막 뜻이 엄숙함이 바로 이런 의미의 연장선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 이 글은 2013년 03월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을 2021년 2월 클리앙에 게시 후 다시 다듬어 올립니다. 이 공간에서 차차 클리앙에 올린 글을 다듬어 올리는 동시에 여러 감상문을 간헐적으로 올릴 예정입니다.

** 여러분의 라이킷은 다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됩니다. 라이킷을 먹고 자라는 호덕 올림.


1. Gravitiy의 사전적 의미는 "1. (지구) 중력 2. 심각성, 중대성 3. 엄숙함"이다(출처: 네이버 영어사전). 이 글에서는 사전의 세 가지 의미에 따라 순차적으로 영화 <그래비티>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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