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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렌체장탁 Mar 19. 2024

환승연애_25살, 캘거리

오늘의 주인공은 J가 아닌 Y입니다.

 

밴쿠버에 찾아간 나는 J의 홈스테이 집에서 3일을 보냈다.

그는 여전히 장난스럽고 친절하게 나를 대했지만 이상하게도 이별을 물리려 하진 않았다. 나를 보는 눈빛, 다정한 목소리,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 모든 게 그대로인 것 같은데 우리는 헤어지는 중이라고 했다.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냥 헤어지고 싶다고.


 "네가 이별여행이라고 해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즐겁게 보내자는 거지. 별 뜻 없어."


'아씨.. 그게 말이냐, 방귀냐......!!!!!!!!!!!'


"아니, 근데 손은 왜 잡는 건데?"

"어.. 습관?"

"뽀뽀는 왜 하는 거고?"

"그냥 마지막이니까..?"


 이런 미친놈을 사랑했나 싶었으나 그때까지도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랑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르면 장난이었다면서 다시 나에게 돌아와 줄 것만 같았다. 다정하게 안아주면서 미안하다고 말해줄 것 같았다. 그러나 다른 친구가 있는 '빅토리아'라는 도시로 떠나는 날 까지도 그는 우리가 헤어졌음을 분명히 했다. 버스터미널까지 바래다주면서 나를 꼭 안아주었다. 버스 창 밖으로 본 그의 눈은 텅 비어있었거나 차가웠거나 그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또 한 번 울음이 터져 나왔다. 버스 안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며 다가왔지만 그저 괜찮다고 겨우 한 마디를 하고서는 또다시 입을 틀어막았다. '백아연'의 '이럴거면 그러지 말지'라는 노래가 그때 나왔었더라면 아마 난 1.000번은 들었을 것이다.



이럴 거면 바래다주었던 그날 밤 넌 나를 안아주지 말았어야지. 설렘에 밤잠 설치게 했던 그 말 그 말도 하지 말았어야지. 이럴 줄은 몰랐어. 비겁하게 숨어버린 너를 돌아올 거라고 믿은 내가 바보야. 이렇게 돼 버린 이상 그냥 얘기할게 이미 떠나버린 네 맘 돌린 순 없으니...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 가사 중
-백아연-


 그렇게 2009년의 새해는 시린 이별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리고 얼마 후 내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저렇게까지 아픈 이별을 했다고 이야기해 놓고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어렸던 나는 '사랑은 사랑으로 치유한다'는 말을 조금 믿고 있었던 것도 같고 그의 빈자리를 무엇으로라도 채워야 할 정도로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기적이었다.


 새로 생긴 남자친구는 Y였다. 학교 친구들이 내가 걱정돼서 찾아와 놓고 '이별위로파티'를 열었다는 그날 그가 남들보다 조금 늦게 그 장소에 왔다. 그는 내 일본인 친구의 친구였고 한국인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다른 반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날 나는 처음 그를 보았는데 술기운에 처음 본 그에게 J와 헤어진 구구절절한 사연을 울면서 다 털어놓았다. 아마 한국말을 할 수 있어서 편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내 이야기를 쭉 들어주던 그도 오래 사귄 여자친구가 한국에 있다고 했다. 요즘 사이가 좋지 않아서 힘들다고. 그러면서 자기도 장거리 연애가 너무 힘들어 내 이야기가 공감이 간다고 했다.


 거기서 끝날 줄 알았던 인연이었는데 Y에게서 자꾸만 연락이 왔다. 메신저로도 문자로도 수시로 연락이 왔다. Y는 와인을 좋아했는데 나도 학교에서 와인수업을 듣기도 했고 꽤 와인을 좋아했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잘 통했다. 어느 날 추천을 부탁하며 같이 와인을 사러 가자고 했고 같이 산 와인을 나눠 마셨다. 사실은 너랑 같이 마시고 싶어서 산거라고... 지금 생각하면 참 뻔한 수작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뭐라도 하고 누구라도 만나고 싶었었기 때문에 그가 하자는 대로 했다. 심지어 내가 밴쿠버에 가는 날 그는 공항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얼굴 보고 잘 이야기하고 오라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당연히 밴쿠버에 가면 J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Y의 다정함에 조금 기대었을 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J였으니까.


 그리고 결국 헤어지고 다시 돌아온 캘거리의 공항에 Y가 또다시 나를 마중 나와있었다. 그를 보는데 갑자기 또 눈물이 나왔다. 왠지 모를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것 봐. 난 혼자가 아니야.

공항버스에서 슬그머니 손을 꼭 잡는 그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냥 내가 너무 힘드니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아주 심각한 문제가. 오빠 여자친구가 있잖아?  불현듯 정신이 들어 Y에게 말했다.


"오빠... 나한테 잘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호감을 표시해 줘서 고마워. 그런데 나 헤어진 지 너무 얼마 안 됐고 오빠도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랑 제대로 정리된 거 아니잖아. 이건 아닌 것 같아. 그냥 친구로 지내거나 보지 말자."

"하아..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알겠어. 나도 잘 생각해 볼게. 미안."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퇴근하는 길에 술에 취한 오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너 지금 나한테 와주면 안 돼?"

"아니. 무슨 일이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렇게 술에 취한 목소리는 처음 들어서 너무 걱정이 되었다. 목소리에는 술기운과 눈물도 배어있었다.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가 그의 아파트 바로 앞이었어서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의 방에 들어간 순간 소주냄새가 진동을 했고 방바닥에는 소주병 몇 개와 휴지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Y는 울고 있었다.


"나.. 헤어지자고 했어. 사실 거의 헤어진 상태였는데 그냥 오늘 확실하게 말했어. 나 네가 너무 좋아. 나도 이런 게 나쁜 거라는 거 아는데 우리 알게 된 지 얼마 안됐는데 이 감정이 주체가 안돼. 이런 적 처음이라 나도 무서워. 여자친구한테도 솔직하게 다 말했어. 나 너 때문에 나쁜 놈 됐어. 그러니까 네가 나 책임져야 돼!!"


"헐... 뭐라고? 아니.. 왜... 오빠 진짜 그럴 필요 없었는데. 왜 그랬어."

"아. 몰라.. 네가 다 책임져. 나랑 만나. "

"아니,, 나 전 남자친구에 대한 마음 하나도 정리안됐어. 아직도 그 사람 좋아해. 그런데 어떻게 만나."

"내가 잘해줄게. 잊게 해 줄게. 그냥 일단 만나보자. 나 많이 안 좋아해도 괜찮아. 싫은 건 아니잖아."

"좋긴 하지. 호감도 있고. 그런데 너무 빠른 것 같아. 오빠 여자친구한테도 못할 짓이고."

"난 이미 끝났어. 이미 말했고. 네가 안 받아주면 나 어떻게 하라고."

"하... 일단 알겠어.. 술 깨고 다시 이야기해.."


 그렇게 막무가내 고백과 책임지라는 요구에 의해 나는 그와 사귀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환승연애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유명한 '유학 가서 바람난 남자 친구의 그녀'가 되어 본 희귀한 경험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사귄다기보다는 J에게 상처받고 힘들어진 마음을 기댄 것에 가까웠다. 서로 의지하면서 잘 지내면서도 자꾸만 J 생각이 났다.  Y에게도 수차례 이야기했다. 나는 아직도 전 남자친구에게 마음이 있다고 그래서 널 좋아할 순 있지만 사랑할 수는 없다고. (대사가 참 유치한데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


 Y는 항상 말했다. 자길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진심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그러면서 나에게 참 잘해주었다. 그는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이었는데 그래서 세심한 부분까지도 나를 잘 챙겨주었다. 내 퇴근 시간에 맞춰서 맛있는 요리를 해둔다거나 내가 지나가면서 좋아한다고 말했던 물건들을 사서 늘 선물해 주었다. 어딜 가나 늘 내 곁에 있어주었어서 친구들 사이에서 다정하고 잘생긴 남자친구로 소문이 났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했다. 게다가 솔직히 외모는 정말 내 스타일이었다. 하얀 피부와 헬스트레이너 출신다운 근육질의 섹시한 몸매, 선 굵은 이목구비와 매력적인 선홍빛 입술의 소유자였다. 그래서인지 조금씩 조금씩 그에게 마음이 열려만 갔다. 이렇게 자상하고 멋진 남자가 내가 이렇게 좋다는데.... 나 때문에 다른 여자한테 상처까지 줬다는데 나도 이 사람을 좋아해야지... 어쩌겠어.  


 그런데 마음을 여는 속도가 너무 느렸나 보다.

섬세하고 여렸던 그는 혼자만 주는 사랑에 나도 모르게 점점 지쳐갔었나 보다.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하면 돌아서 누워버리는 내 뒷모습을 보고 그는 혼자 늘 한숨지었는데 그 시간이 참 길었었나 보다. 그는 나의 무심함에 다시 전 여자친구를 그리워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연락을 했고....


 내가 드디어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라고 결심하며 직접 초콜릿을 만들고 선물을 준비해서 줬던 그날에 나에게 떠나겠다고 말했다.


"뭐라고???????"


"나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그런데 아무리 내가 너한테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해도 넌 날 영원히 안 봐줄 것 같았어. 너도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잖아."

"하.. 기다려준다며. 나 이제야 오빠 믿고 좋아하고 진심으로 마음 열고 있었는데. 이게 뭐야."

"전 여자친구가 다시 돌아오라는데 흔들리더라. 용서해 준대. 걘 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주는데... 난 뭐 했나 싶었어."

"그래서 돌아간다고? 헤어지자고? 그럼 내 마음은 어떻게 해? 이제 오빠 좋아하는데 난 어쩌라고?"

"미안해. 내가 다른 도시로 떠날게. 진짜 미안."


 하.. 쓰다 보니까 너무 열받네. 아무튼 저런 식으로 환승에 환승을 거듭한 Y는 옆 동네인 벤프로 말 꺼낸 지 2주 만에 도망치다시피 이사를 갔다. 하하하.


나는 거의 반 실성상태가 되었다. 그냥 나를 내버려 두지. 자기 마음대로 좋아했다가 자기 마음대로 떠난 Y 덕분에 내 상처는 몇 배로 커져있었다. 내가 캐나다까지 와서 뭐 하고 있나 싶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사람 마음을 이용하다가 벌 받은 건가도 싶었다. 당시에 제일 많이 들었던 노래는 '총 맞은 것처럼'이었다.


 정말로 총 맞은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고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그 다음 어떻게 지냈나 돌아보면... 그냥 될 대로 돼라 싶어 미친 듯이 놀고 가볍게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처음 캐나다에 갔던 목표는 어느새 잊은 채 그렇게 한동안을 방탕하게 살았었던 것 같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 일은 계속했지만 더 이상 공부도 문화체험도 여행도 친구들과의 교류도 큰 의미가 없었다. 그냥 술 사준다는 사람들 쫓아다니며 밥 먹고 술 먹고 일하고 그게 다였다.

 아. 나는 똥차 컬렉터인가 싶어서 자괴감이 들었다가도 그 나쁜 놈들 (J와 Y)이 번갈아가며 보고 싶어서 또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팠다.

 

 반쯤 미쳐서 살아가던 어느 날 J에게 연락이 왔다.


'캘거리에 가게 됐어. 볼 수 있을까?'

 

25살... 어리긴 어렸었다.

그 많은 일을 겪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장을 했다.


'당연하지! 우리 집에서 지내!!!!'


도대체 나는 뭐 하는 인간이었냔 말이다. 후


(오늘 이야기에서 나왔던 대사나 감정 표현들이 내가 쓰면서도 너무 2000년대 초 싸이감성이라서 나도 놀랐다. 나 진짜 그 시대의 산 증인인가 보다. SNL 은 내 이야기였어... 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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