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
지금까지 J는 어떤 인물이었던가.
새하얗고 말랑콩떡같이 얇고 쫀득해 보이는 피부를 가졌으며 조금만 당황해도 금세 얼굴이 빨개지고... 차은우같이 전형적인 잘생김이라기보다는 귀여움과 매력적인 잘생김을 동시에 갖춘 요즘 아이돌로 따지자면 '입덕몰이' 상의 소유자.
그런 외모인 주제에 낯을 많이 가리고 대학교에 재입학해서 어릴 때부터 자란 동네 친구 몇 말고는 친구 하나 없는 '아싸' 인 데다 조심성 많은 성격이라 해본 게 거의 없는 순백의 도화지 같은 남자.
그럼에도 자기가 또 잘생겼다는 사실은 아주 잘 알고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한 자부심과 자애감이 넘치고 조금 친해졌다 싶으면 귀여운 허세와 싸가지 없는 말투로 사람 애간장을 녹이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자.
그렇다면 남자친구로서의 J는 어땠길래 나는 중국까지 찾아가서 마음을 다 잡아야만 했을까.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있던 나는 늘 급하게 신호가 왔고 절대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보통 데이트 할 때 밥을 먹거나 하면 불안해서 식당 화장실을 꼭 들렀다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5분쯤 걸으면 다시 배가 아파왔다. 그럴 때마다 '아! 나 화장실.'이라고 외치면 J는 두말없이 내 손을 잡고 함께 뛰어주었다. 근처 지하철 역이든 카페든 화장실이 있을 만한 곳까지 숨이 턱까지 차도록 함께 뛰어가서 맘 편히 시원하게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주는 남자친구가 세상천지 어디 있냐 말이다. (가끔 휴지가 없을 때는 휴지도 구해왔다.)
또 J는 가끔 질투하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내 남사친들을 인정해 주었다. 질투라기보다는 늘 내가 술이 과해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끝에 자기가 데리러 나와야 하는 상황을 싫어했다. 지금 생각하면 백번을 차여도 할 말 없는 사건들이 많았지만 그는 조금 짜증을 낼지 언정 한 번도 나나 내 친구들의 연락을 외면한 적 없이 묵묵히 나를 데리러 와주었다. 당시에 그게 고맙긴 했지만 얼마나 어려운 건지 몰랐으나 그 뒤에 몇몇 연애경험을 통해 '남사친'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였구나 느끼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J는 나를 존경해 주었다. 말 그대로 늘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하다고 너는 참 똑똑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를 사귀는 것만으로도 내 자존감은 한껏 올라갔는데 그렇게 나를 믿어주고 칭찬해 주고 표현해 주니 당시 나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수준이었다. 사랑받는다는 기분이 어떤 건지도 처음 느끼게 해 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가끔 차가운 말을 내뱉거나 짜증을 냈어도... 군대를 제대한 얼마 뒤 중국에 갔어도... 그렇게 간 중국에서 미심쩍은 행동을 했어도 나는 여전히 그의 곁에 남아있고 싶었다.
그가 나를 존경하고 믿는 만큼 내 말 하나만은 참 잘 들었었는데 그렇게 그는 캐나다까지 가게 된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나는 '90일간의 유럽배낭여행' 이후 다시 또 하나의 목표를 세웠는데 그게 바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외국인 친구들과 소통하고 각 나라마다 가진 다른 매력에 흠뻑 빠진 나는 좀 더 외국에 길게 나가서 생활해 보고 싶어 졌고 당시 '워킹홀리데이'를 진행하던 나라 중에 선착순이 아닌 선발방식을 가지고 있어 희소성이 있는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캐나다는 에세이와 학업계획서 및 몇 가지 서류들을 심사하여 정해진 인원을 선발하여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주었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요했었다. 나는 종로에 '캐나다 유학원' 몇 군데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인터넷 카페 등을 뒤져서 자료를 수집하는 등 꽤나 차근차근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J'라는 변수가 생긴 것이었다. 물론 그와 사귀게 되었다고 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그와 사귈 무렵만 해도 그는 해외생활이나 유학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나도 선발될지 떨어질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일단 붙고 나서 생각해 보자'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그가 중국에 갔고 그렇게 해외생활의 맛을 본 그는 전에 없이 자신감이 넘치고 유학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중국 생활도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끝난 상황이어서 못내 아쉬워했다. 경력으로 삼자니 짧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워킹홀리데이에 덜컥 합격을 했다. 합격 후에 1년 안에만 출국하면 되는 비자였다. 이번에는 나 때문에 떨어져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었다. 사실 그가 중국에 가 있는 동안 나는 전혀 잘 지내지 못했었기 때문에 또다시 떨어져야 하는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것도 이번에는 적어도 1년 이상이었고 거리도 몇 배나 먼 캐나다였다. 그렇다고 그와 헤어질 수도 없었던 나는...
그렇다. 그를 꼬시기 시작한 것이었다.
"너 중국 갔다 와서 영어 이제 막 트이기 시작했는데 아쉽지 않아? 지금부터 준비해서 내년 워킹홀리데이 비자받으면 내가 한 두 달 먼저 출발하고 너는 받자마자 오면 같이 캐나다 갈 수 있어."
"내가 캐나다를 어떻게 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자신도 없는데. 그래도 좀 가보고 싶기도 하다!"
(오오~~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반응!!)
"나 한 번에 합격했잖아. 나만 믿어. 내가 서류준비랑 에세이랑 학업계획서랑 싹 다 해줄게. 넌 그냥 제출만 해."
"나 모아놓은 돈도 없고. 아니.. 이거 진짜 가능할까?"
"너 도전해보고 싶어? 아님 하기 싫어?"
"흠.... 해보고 싶긴 해!!"
"그럼 하자! 같이 가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그렇게 J는 팔자에도 없던 캐나다를 꿈꾸게 된 것이다. 나 또한 내 준비만으로 벅찼으나 그를 어떻게든 데려가겠다는 생각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와 나의 학사과정에도 큰 무리가 없으면서 함께 갈 수 있는 시기를 정하고 가서 둘이 붙어 다니면 한국어만 하고 영어공부가 안될 것 같아서 각자 다른 도시로 가기로 했다.
각자 마음에 드는 도시를 검색한 결과 나는 '캘거리' 그는 '밴쿠버'로 가기로 했다. 그것 또한 결국 장거리연애이긴 했으나 같은 나라, 같은 시차에 있고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라는 점과 그와 나 둘 다 낯선 환경에 떨어져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많이 다를 것 같았다.
어학원 몇 군데를 돌며 상담을 하는데 필수 서류 중 하나가 그에게 문제가 되었다. 그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기가 어려워 보였다.
'아.. 어쩌지... 그가 못 가게 된다고 내가 포기할 수 있을까? 난 정말 가고 싶은데 그와 떨어지기도 싫고... 그렇다고 불법체류를 시킬 수도 없고...'
그런데 어느새 나에게 전염(오염)된 그가 무한긍정과 용기백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학 비자 6개월까지 된다며? 일단 그거 받아서 가보지 뭐!!! 가면 또 방법이 있을 거고 안돼도 그냥 6개월이라도 경험하고 오는 거고."
"너 누구여.. 내 남자친구 어디 갔어?"
"왜... 자기가 맨날 이야기했잖아. 한다 안 한다 중에 고민될 때는 무조건 하는 거라고. 이렇게까지 알아보고 준비했는데 나도 꼭 가고 싶어졌어. 갈래!"
"와.... 진짜 너무 멋있다. 내 남자. 진짜 사랑해. 멋있어. 멋있어서 걱정돼. 근데 또 이렇게 용기 있어진 거 너무 좋고 자랑스러워. 나 눈물 나. 우에엥"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고 했나. 다음 연도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 우리는 속전속결로 비행기표를 알아보았고 각자 등록한 학교의 일정에 따라 그가 나보다 두 달 반 정도 먼저 캐나다에 가게 되었다. 그 쫄보에 낯가림쟁이에 맨날 '나 잘 몰라. 자기가 알려줘.'라고 하던 그 J 가 심지어 나보다도 먼저 캐나다 땅을 밟게 되었던 것이다! 자기가 일단 밴쿠버는 완벽 마스터 해놓을 테니 걱정 말고 따라오라는 그가 너무 자랑스러우면서도 뭔가 일이 너무 커져버린 것 같아 당황스럽기도 했다.
짐 싸는 것을 도와주려고 그의 집에 갔을 때도 괜스레 그의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기가 죄송스러워 고개를 푹 숙이고 옷만 둘둘 말았더랬다. 당장이라도 '네가 내 아들을 꼬여냈겠다!!!'라고 외치실 것 만 같은 이상한 상상에 사로잡혔다.
정작 그의 부모님은 둘 다 잘 다녀오라고 집 앞에서 불고기를 사주시며 말씀하셨다.
"우리 J가 이렇게 도전하는 모습 참 보기 좋아. 둘이 가서 건강 잘 챙기고 싸우지 말고 좋은 경험 많이 하고 돌아와!"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J 잘할 거예요!!"
그리고 몇 개월 뒤.. 바야흐로 08년도 10월.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밴쿠버 스탠리 파크 해변으로 향하며 쫄았거나 걱정될 때 부르는 우리 둘만의 유행가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괜찮스 괜찮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괜찮스 괜찮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무한반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