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렌체장탁 Mar 23. 2024

국제 바람 2

중국에 이어 일본이냐!!!

 

 지지부진하고 어차피 그렇고 그런 연애를 하면서... 이번엔 진짜 끝이라고 정말 싫다고 쓰레기라고 상대방을 욕하면서도 결국 다시 만나는 그런 여자들을 많이 보았다면...


 그래 그게 바로 나였다.


 J가 캘거리에 왔을 때 그를 데리러 나갔다가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500 걸음도 채 걷지 않았을 때 우리는 다시 손을 잡았다. 손을 잡지 않고 걷는 게 더 어색한 사이에서 갑자기 헤어졌었으니 몇 개월 만에 만났는데도 저절로 손이 붙더라.  


 손이 붙듯이 마음도 몸도 곁에서 며칠 지내다 보니 바로 붙어버렸다. 우리는 함께 록키산맥으로 가는 투어를 신청해서 여행을 하기도 했다. 투어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다 영어권 관광객들이어서 함께 다니는 2박 3일 동안 영어를 잘 못하는 우리는 왕따를 당했고 더 돈독해졌다. 헤어져서 떨어져 있던 그 몇 개월의 시간은 삭제된 듯 느껴졌다. 참 우습게도 Y의 존재조차도 J가 내 손을 잡아주던 그 순간부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라졌다. 나 자신조차도 어이없었지만 그냥 그게 자연스러웠다. 그냥 우리 둘은 원래 이렇게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서로 어떤 설명도 변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J가 밴쿠버로 돌아가고 나서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연락은 이어졌다. 어느 누구도 다시 사귀자느니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그 순간의 감정에만 충실했고 그 감정은 그와 연락을 지속하라고 나에게 말했다. 연락이 이어지는 동안 J가 잘해주기만 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한 마디가 있다면 내가 전화를 자주 하자 어느새 귀찮아진 그가 했던 말.


"너랑 통화하느니 카지노 한 판을 더하겠다."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이 말을 주제로 한 꼭지를 쓰려고 했으나 너무 적나라하게 구구절절 적기엔 이것 말고도 할 말이 많기에 이렇게 살짝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어쨌든 당시 둘이 통화를 하려면 통화요금이 나갔고 그 돈 가지고 카지노 가서 블랙잭 한 판을 더 하겠다고 말할 만큼 그는 나를 홀대하면서도 놓아주진 않았다.


 이런 애매한 상황이 갑갑했던 나는 밴쿠버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냥 그를 보기 위해 간다고 하면 너무 부담스러울까 봐 밴쿠버 근처 어떤 섬에서 하는'WWOOF(우프)'를 신청했다.  'WWOOF(우프)' 란 일종의 해외 농촌 봉사활동으로 해외 농가나 농장에 가서 일을 돕는 대신 숙식을 제공받는 체험활동이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가브리엘라'라는 섬에 있는 농가로 가기로 하고 그전에 밴쿠버에 들른다는 핑계로 J를 만나러 갔다.  마침 그도 한국으로 귀국 전 캐나다 동부 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는 2주가량을 함께 보내며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1분 1초도 아쉬울 만큼 그 여름의 밴쿠버는 행복으로 가득했다.


 그가 나보다 하루 먼저 여행을 떠나야 했기에 내가 그를 공항에 바래다주었다. 그때처럼 누구랑 헤어지기 싫었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뭐랄까 나랑 한 몸인데 그 반을 뚝 떼서 누가 가져가는 느낌이랄까.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냥 딱 느낌이었다. 웬일인지 J도 아쉽고 섭섭해하는 게 다른 때랑 달랐다. 내가 밴쿠버로 굳이 와서 시간을 보낸 것이 큰 효과를 발휘한 듯했다.


 그리고 같이 잡아 둔 숙소로 혼자 다시 돌아가서 노트북을 켰는데...

(아직도. 그걸. 보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노트북으로 그가 메일을 확인하느라 로그인을 해두었었나 보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로그아웃을 하려고 한 순간.... 메일 제목 하나가 내 눈을 미친 듯이 사로잡았다. 보고 싶지 않았는데도 보였다.


"OPPA BOGOSHIPAYO!(오빠 보고 싶어요!!)"


 아니 시보롱... 이게 대체 뭐지? 내가 꿈꾸고 있는 건가....

나 방금 울면서 사랑한다면서 배웅했던 그 남자 메일 맞는 건가 이게?


발신자를 보니 일본 이름이었다. '무츠미'


 그 뒤로는 누구도 나를 제어할 수 없었다. 그 이름으로 검색해 본 메일들은 정말 가관이었다. 아마 내가 Y를 만났듯이 그도 다른 사람을 만났던 것 같았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다른 사람을 만났으니 사실 할 말도 없었다. 그런데 그 메일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서서히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이 여자는 아직도 J랑 사귀고 있었다.


그러니까 밴쿠버에서 만나다가 일본으로 돌아가기는 했으나 아직도 사귀고 있었고 곧 한국으로 돌아가는 J와의 국제 연애를 이어갈 생각인 것 같았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또 있었다. 메일 중 하나에 일본으로 돌아가는 그녀를 데려다주는 J와 그녀의 공항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혹시 그런 이야기 들어보셨는가?


' 남자는 전 여자친구의 새로운 남자친구가 자기보다 멋있거나 잘생기면 열이 받고 여자는 전 남자친구의 새로운 여자친구가 자기보다 못생기고 뚱뚱하면 열이 받는다는?!'


 내가 딱 그 꼴이었다.

나라고 초 미녀는 아니었지만 '무쯔미'는 정말 '무' 같았다. 땅땅하고 짧고 굵은 조선토종무.


'아니... 이런 친구를 만난 건 그렇다 치고.. 지금 제대로 정리도 안 하고 나를 다시 만나???? 그럼 우리가 그간 연락했던 시간이랑 내가 밴쿠버에 와서 함께 했던 2주의 시간은 다 뭐였던 거야? 나랑 그렇게 지내면서도 이 일본여자친구한테는 또 다정한 메일을 보내고 있었던 거야?'


 방금까지도 사랑으로 가득 찼던 내 마음이 증오와 분노와 배신감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녀가 보낸 마지막 메일에 답장 버튼을 눌렀다.


'나.. 너랑 헤어지고 싶어. 다른 여자를 사랑해. 다시는 연락하지 마.'


 이렇게 메일을 보내고 내가 쓴 그 메일을 발신함에서 삭제하고 그녀의 메일주소를 차단했다. 이러면 J는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르고 자연스레 그녀와 끝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나는 그냥 돌아버렸다. 네가 기어이 나의 끝을 보게 하는구나.


하룻밤을 꼬박 새워 울고 머리를 쥐어뜯고 절규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 꼴까지 봐놓고서도 감히 헤어지자는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해가 밝았고 나도 섬으로 가야 하는 시간이 왔다. 섬으로 떠나는 선착장으로 가는 버스에 타는 순간 그에게 문자가 왔다.


 "나 토론토 잘 왔어. 그거 알아? 여기 와보니까 자기가 얼마나 나한테 소중한 사람인지 너무 절실하게 느껴져. 너랑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 그동안 철없는 나를 다 받아줘서 고맙고 나를 사랑해 줘서 고마워. 여행에서 돌아가면 너한테 진짜 잘할게. 진짜 너 생각 많이 난다. 사랑해."


 나는 또 버스에서 오열했다. 버스 승객들이 나에게 다가와 성추행을 당했냐고 물을 정도로 오열했다. 하필 그때 온 그의 반성하는듯한 사랑의 문자가... 나는 견딜 수 없이 화가 나면서도 또 기쁘다는 게 끔찍했다.


 섬에서 지내는 동안 그에게 아무런 티를 내진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다시 밴쿠버로 돌아가서 재회하는 날. 모든 걸 밝히고 헤어지리라.


 매일 결심하며 바라본 가브리엘라 섬의 바다는 나의 마음을 정리하기에 충분히 푸르고 푸르고 시렸다.



비하인드. 가브리엘라섬에 가서 내가 한 일은... 그러니까 농장일도 있었지만 주로 통나무집을 짓는 일이었다. 내가 농장주인한테 왜 나한테 공사를 시키냐고 따지자 그가 한 말. "넌 이 일을 배울 수 있는 걸 자랑스럽게 여겨야 해. 우리 섬에 얼마나 훌륭한 여자 통나무집 기술자들이 있는지 알아? 이건 전 세계에서 돈을 주며 배우려고 하는 기술이라고." 그 말에 현혹되어. 통나무를 나르고 자르고 사포질 하고 페인트칠 했던 그 여름... 여러모로 추웠네. 참.


 



이전 11화 환승연애_25살, 캘거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