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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렷 경래 Nov 28. 2023

프롤로그

새로운 모험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냥 풍경을 즐기며 앞으로 가야겠습니다.

당신은 모험 중


삶을 돌아본다. 가끔 황당한 성적표는 스스로를 놀라게 한다.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이민을 결정하고 수많은 생각과 계획과 각오로 공항을 빠져나오지만, 생소한 나라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일이 입맛에 맞게 떨어 지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가능보다 불통이 턱없이 많다. 한국에서 획득한 학벌이나 경력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비슷한 사회적 위치에서 뭔가를 새로 시작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많은 경우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무학자'로 전락해야하는 참담한 시작에 무너지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돈 없이 시작하는 이민자=무학자의 공식인 것이다.


이 암울한 status(사회적 신분)를 벗어나기 위해, 어색한 땅에서 다시 언어를 배우고, 학교를 가고, 자격증에 도전한다. 그것이 아니면, 사업을 시작하거나, 발품을 풀어 취업을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은 없다.



이민에 대한 견해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과정을 빼고 성공과 그 결과만 조명된 많은 예화가 이민이라는 주제에 착시현상을 줄 때가 있다.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가 있어 그냥 기대고 가면 되겠지 생각할 수도 있고, 재력이 있으니 좋은 사업 하나 잘 잡아 시작하면 되겠지 한다. 타국에서 살아가는 것은 돈으로나 인맥으로 되지 않는 불가항력에 마주칠 때가 더 많다. 다른 문화와 언어, 관계의 벽, 법과 규칙의 문제, 적응과 어울림의 깊이 등 수많은 요소는 타국에서의 훼방꾼이요 걸림돌이다. 


그러나, 이민을 "재미있는 모험" 쯤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재미있어서 기대가 되지만, 예상 밖의 일을 만나게 되어, 그 일을 해결해야만 하는 힘든 과정도 포함시켜야 한다. 산과 물을 보고 즐기다가도 종종 산을 넘고 강을 건너야 하는 힘든 선택의 순간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가야 한다는 말이다.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 산악인은 단단한 채비를 한다. 기후와 풍습을 익히고, 가상훈련을 하고, 철저한 장비를 준비하지만, 현실에서는 갑작스러운 일천 가지 조건들로 생사를 오가게 된다. 이민, 뭐 다를까? 가기 전에 설레면서 두렵고, 과정에서 익숙지 않은 환경을 극복해 가다가 결국에는 더 좋은 길로 진보해 가는 탐험가의 발걸음이다.


요즘은 환경이 좋다. 특히 좋은 정보를 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리하다. 찾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


그런 현상은 인터넷에 기반을 둔 유튜브, 블로그와 SNS 등의 디지털 문명의 결과다. 이민을 생각한다면, 먼저 디지털 이민을 가보는 일쯤 이젠 상식이다. 그 나라에 대한 일반 정보에 친해지고,  현지인들이 올린 경험담을 듣고, 구글맵과 구글어스를 통해 관심 지역을 한번 둘러보는 일만으로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2년은 족히 벌고 가는 셈이다. 경험과 실패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디지털 이민은 시행착오를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제 갓 시작한 이민 초년생이, 이민 경력 여러 해 된 사람도 알지 못하는 내용을 줄줄이 풀어놓을  경우도 많아졌다.




나는 약간은 이전 세대 이민자다.


컴퓨터를 현업에서 접했고, 프로그래밍과 웹디자인을 공부해 여러 단체와 교회 및 개인 홈페이지를 제작했었으며, 문서 작업은 종이와 펜보다 키보드 및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 - 그러다 보니 졸필의 진보로 악필이 되긴 했다. -  이민에 필요한 정보를 다 취하고, 열렬한 설렘으로 비행기를 탔으며, 정착 지역엔 한국에서 미리 온 친구들도 몇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헝그리 마인드 200%로 이민이라는 여정을 취항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 이후의 여정은 에베레스트 등반 이틀쯤 지나 불가사의한 기후 변화 앞에 선 입장이 되었다. 돌아가기는 죽기보다 싫고, 앞으로 나아가기엔  너무 무서웠지만, 그렇게 20년 넘게 남의 나라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루를 살아도 내 땅 보다 편할 수가 없는데, 그래도 언덕을 넘고, 물을 건너서 터널까지 지날 수 있었던 것은, 징검돌 같은 ‘감사’, 이 강제적이면서 극히 자발적이기도 한 힘 덕택이다.


꼴랑 몇백만 원 가지고 이민길에 올랐던 때를 회상하며, 이제야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자 한다. 그러나, 너무 사소한 개인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벗어나야 할 의무를 가지고 시작한다.


책 제목에 신경이 꽤 쓰였다. 한두 가지 생각하다 진부하고 초라해 이제는 다 버렸다. 아무러면 어떤가. 완성본이 될 때까지 생각해 보기로 하고 임시 (혹은 고정) 이름을 지어 연재로 하기로 도전해 본다. 이미 2020년에 이민에 관한 수기 형식의 글을 쓰고자 브런치를 시작하고 결국 몇 장 밖에 쓰지 못한 부족함이 있다. 일정과 강제가 정해지지 않으면 한없이 스스로 타협하고 느슨해 진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느꼈다. 그러므로, 연재의 형식을 빌어 몇 분의 독자가 되든, 마치 몇 만의 독자들에게 예의를 다하듯, 과도한 의무에 몸을 맞추어 나가 보기로 한다.


20년 동안의 극적 진화를 조명하고 싶지만 너무 물질적인 승패에는 거부감이 든다. 그렇다고 또 무슨 맨손으로 북미에 건너와 빌딩 몇 채를 가지게 된 어떤 "거대한" 성공 스토리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단순한 에세이형식으로 가볍게 쓰는 방향을 택한다. 자랑은 없다. 사실과 관찰과 경험에 의한 담백한 이야기를 잘 담아내 감칠맛 나게 쓰고만 싶은 욕심이다.


나의 여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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