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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렷 경래 Dec 21. 2023

꼬드김

오늘의 자신은 과거의 뭔가가 구술렸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영주권, 시민권



한국 땅에 이민의 붐이었던 시절이 있다. '너도 가니 나도 가자'는 - 우리가 익숙한 경쟁적 분위기 - 지기 싫어하는 민족성과 함께 유행을 일으킨 것이다. 내 주위의 사람이 하나 둘 어디론가 사라져 간, 분실과 실종의 유행병 때문이었던 것을 나중에 알았다.


경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한국에서의 삶의 질이 당시엔 낮았던 이유 만은 아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취업을 목표로 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일류가 아니면 하류라는 공식으로 많은 '패배자'를 양산해 내는 듯한 문화 때문도 아니다. 


그 이유는 또 다른데 있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영주권이라는 자격증 하나 더 받아두는 데 있었다. 온 가족이 선진국에서 거주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하는 자격증이라면 다른 어떤 자격증 보다 가치가 있어 보였다. 어쩌면, 이곳을 등지고 떠나는 듯한 현실에 대해 스스로 가진 보상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 


영주권은 시민권과 달리 국적 포기가 아니다. 국적포기로 오는 외국인 신분의 불편함을 없애고, 양쪽 나라에서 자유롭게 거주하고 살 수 있는 자격을 유지하는 것이다. 영주권 취득은 한국 국적은 유지하면서 해당국에서 영구적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의미다. 그러나, 시민권은 말 그대로 해당 국가의 시민이라는 뜻으로 취득하면 그 나라 국적자가 된다.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캐나다는 시민권을 취득함과 동시에 한국 국적을 상실한다. 시민권 취득 후에는, 캐나다 국적자로서 더 이상 한국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캐나다법을 준수해야 하지만, 차후에 캐나다 시민권을 포기한다면 다시 한국 국적을 회복할 수도 있기는 하다.

권리면에서 영주권자는 시민권자와 다를 바 없다. 여행, 취업, 학업 등 활동에 제한 없이 영구 거주할 수 있다. 단지 투표권이 없고, 중범죄에 연루되면 추방당할 수 있지만, 캐나다 정치는 어느 당이 정권을 잡아도 국민의 편에 서서 일하는 것은 마찬가지임으로 투표권은 사실 영주권자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정말 투표를 해서 원하는 당을 위해 일하려 한다면 시민권을 따면 된다. 



분위기


정말 주위에는 기후변화가 심했다. 절친했던 교회 친구가 떠나더니, 옆자리를 지키던 직장 동료도 어느날 떠났다. 더러는 미래에 대한 회의감으로 떠났는데, 또 다른 사람은 미래에 대한 꿈을 안고 떠났다. 모두 내 주위의 친구요, 동료요, 선배들이었다. 이런 초유의 사태는 직장 생활 7년 차에 접어들던, 집과 직장과 교회만 알던 나에겐 다소 충격이었고, 내가 처한 현실을 그제서야 좀 돌아보는 계기를 주었다. 어떤 면에서는 뒤떨어지는 것 같은 불안감도 엄습했다  하필 왜 내 옆이 진원지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많이 떠나야 했던 이유는 결국 두세 가지로 요약된다.



자녀 교육


근무했던 회사는 다국적 기업이다.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 지부를 두고, 외국물을 많이 먹었다 자부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던 직장이다. 그들은 "외국물 먹었다"하는 외국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지금처럼 외국을 손쉽게 나다니지 못할 때에, 전 직원이 매년 한번 이상 해외 출장 기회가 주어지면서 일종의 엘리트 의식을 갖게했다. 외국을 알고 이해하는 데는, 한번 그곳에 가보는 것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이런 다국적 기업의 일원으로, 발 빠르게 시류를 보고 읽은 그들의 선택은 외국에서 직접 살아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을꾸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녀 교육의 절대적인 목표가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특별히 캐나다 영주권을 가지거나, 본인이 교육을 받는 학생 신분이 되면 자녀는 모두 무료로 학교를 보낼 수 있게 된다. 그 혜택을 굳이 금액적으로 환산하기 위해 유학생과 비교한다면, 일년에 일인당 $7000 - $10,000에 달하는 금액이 된다.



한국 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 붐어 (baby boomer)의 교육열은 빼놓을 수 없는 원인 중 하나다. 자신은 못 먹고, 못 입고, 어떤 일을 하든, 자식만은 성공해야 한다는 집념은 이들 세대 누구 할 것 없는 공통성이었다. 온 나라가 교육열로 뜨거워져 그 이전에는 없던 현상이 생겨났다  학교 교육은 치마 바람이 주름잡고, 과외가 경쟁적으로 몸집을 불렸고, 농촌의 공동화,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이 생겨났다.  방과 후 학원이 학교보다 중요하게 떴고, 과외비 충당 문제로 인한 부의 격차는 사회의  걸림돌이 되었다. 방학 중 보충 수업, 학벌 위주의 문화가 왜곡된 현상으로 자리를 잡았음은 물론이다. 이 땅에서 만족지 못한 이는 외국으로 눈을 돌려, 조기 유학, 언어 연수, 해외 유학 등 외국물 먹이자는 운동이 유행했는데, 이런 기류의 문화는 결국, 일명 기러기 가족을 양산했다. 과연 이 교육열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모든 불가능한 일도 가능케 만드는 요인이지 않을까.



미래의 불안감


또 다른 배경 하나로, IMF를 겪으면서 특히 40-50대의 직장인에게 팽배했던 불안감을 꼽을 수 있다.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고, 직원이 퇴출당했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미래는, 이미 직장을 떠난 사람이나 아직 남아 있는 사람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도피를 생각하게 했다. 그렇다고 누구나 아무 곳으로 떠날 수 있지는 못했지만, 환경과 기회가 동시에 주어지는 곳에 눈길을 쏠리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그 돌파구 역할을 한 것이 바로, IMF 후 몇 년 동안 활짝 열린 캐나다의 이민 정책이다. 캐나다 베이비 붐어 (1946-1965 생, 캐나다 통계청, 2011년 기준) 들에게 불어닥친, 10년 내 은퇴 준비의 급박한 위기감으로 인구 감소에 큰 도전을 받고 있었다. 베이비 붐어라는 말 자체가 폭발적 인구 증가의 장본인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당시 전체 인구 비율의 30% 가까이 차지하는 이 그룹의 머지않은 공백은 큰 국가 위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2011 Census reveals 9.6 million persons, or close to 3 Canadians out of 10 (29%), were babyboomers


결국, 그들의 자리에 외국의 숙련, 비숙련 노동자 및 전문직 종사자의 유치를 위해 이민의 문이 크게 열렸다. 그리고, 나는 그 대세의 꼬리쯤 해서 신문에 나온 설명회 광고에 내 발걸음을 뗀 전형적인 무목적, 밑져야 본전 파였다.





설명회의 풍경 & 꼬드김


광화문 한 빌딩의 사무실에서 열린 설명회는 저녁 시간이었다. 문을 들어서자 100여 명 앉을 수 있는 회의실은 왠지 낯익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와 있다. 한 곳에 이렇게 많이?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시간 다른 곳에서 또 많은 이주 공사가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하면서 각각 동일한 레퍼토리를 읊어대는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을 터였다. 하루에도 몇 번 있을 설명회에 몰린 모든 인원을 줄잡아 몇 백에서 천여 명에 이를 것으로 상상해 보면, 그들의 가족을 포함 한 달 동안의 사람 수를 상상해 보면, 가히 이 땅의 공동화를 예약해 놓은 것 아닌가. 과연 우리의 대한민국은 이 사람들을 훌훌 타국으로 자유롭게 보내도 되는 것일까? 인재와 일군들이 이렇게 많이 빠져나가도 될까?


이민의 열기가 앞 강단에 집중되어 있다. 일렬로 배치된 좌석은 대학 강의실 같다. 그래 눈에 많이 익다. 수시로 들락거리던 회사 회의실 모습, 영업 뛸 때 고객사 중역들을 모셔두고 오른 강단에서, 학생들 앞의 선생님인양 칠판에 뿌려진 파워포인트의 무수한 정보를, 이 정도는 꼭 알고 있어야 한다며, 설명하던 그 익숙한 장소와 동일하다.


시작 시간 30여 분 남아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미 참석해 나눠준 교제를 읽느라 열기가 뜨겁다. ‘캐나다’에 국한된 이민 설명회인 관계로, 캐나다의 역사와 문화가 간략히 적혔지만, 사실 준비한 사람은 종이가 모자랐을 만큼 더 내용을 증폭하고 싶었을 테다. 또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영주권자 맟 시민권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날의 특별한 설명회 목적에 맞게 수많은 '장점'으로 정리된 내용이었다. 평이한 캐나다 자랑거리지만, 좋은 것은 이야기하고, 나쁜 것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쁜 것이란 과연 무엇인지 파악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이 분야 문외한이었던 나에겐 내용 하나하나가 새로웠다. 인종 차별에 특히 엄격하고, 교통질서는 세계 최고며, 삶 간에 친절함이 뛰어나고, 자연경관이 수려하다는....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다.


특별히, "가족적 삶을 누리게 된다”는 말에 ‘극히 가족적’이었던 나는 촉수가 곧추섰다. “많은 캐나다 직장인은 3시부터 눈치 안 보고 퇴근을 한다”, “직장 술 문화가 없다”는 내용은 현재에 익숙한 삶과는 충격적인 차이다. 퇴근 후 가족과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반 강제적이고 빈번한 회식과 음주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직장 문화이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입사 후 나는 몸무게 10킬로가 느는데 딱 1년밖에 안 걸렸다. 가도 되고 안 가도 되지만, 안 가면 큰일 날까 가고, 강제로 동원되어 가기도 하고, 스스로 먹고 마시고 싶어 가다 보니 쉽게 몸이 부풀어 버렸지만, 그 부기를 빼는 일은 아직도 성취되지 않고 있다.


그날 이주공사는 이 설명 하나만으로도 듣는 이의 마음을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못 먹어도 고”. 결단에 크게 머리 쓰지 않고, 어찌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기질이 어떻게 뒷 인생을 궁극적으로 더 나은 지경으로 끌고 갔는지를 남기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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