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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렷 경래 Dec 27. 2023

신혼방

도피, 도망치는 게 아니다. 방향을 바꿨을 뿐이다.

빌라 2층

결혼 전, 부모님 집과 담 하나를 두고 방 한 칸짜리 빌라 2층을 신혼살림방으로 세 얻었다. 부모님과 분가를 하면 떠나 사는 것이 지혜로운데, 계산 속 없었던 우리는 부모님과는 가까운 곳이 좋으려니 하며 빈집을 세 얻게 되었다. 참고로, 빌라는 미국, 캐나다로 치면 아주 작은 저층 콘도로 볼 수 있다. 전세 자금 확보는 회사에서 결혼 비용으로 무이자 할부로 가능했지만, 부모님 댁과 가깝다는 것과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불편함은 둘 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기대감에 아무것도 아닌 듯 모두 덮여 있었다.  


사건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결혼식은 나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갑자기 주인공이 되어 플래시와 과장된 웃음으로 격려를 받는다는 것이 체질에 맞지 않았다. 당연히 어색한 웃음과 허접한 언변으로 행사가 진행되는 세네 시간을 힘겹게 버티다시피 했다. 회사의 직원들이, 대학과 고등학교의 친구들이, 교회의 청년들이, 시골서 올라온 어르신들이 모두, 그렇다고 그것을 눈치챘을 리는 없다. 그저 내 속에서 지나친 환대와 관심에 대한 본능적인 부자연스러움이 싸우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객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고 결혼식은 종결되었을 때, 모인 부조돈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부조는 모두 결혼 당사자인 나를 위해 모인 것이라는 착각은 쉽사리 깨졌다. 김칫국 마신 후의 씁쓸함으로, 시골 아제, 아줌마들이 폐백 때 던져주신 단 몇 푼의 절값을 받아 제주도행 비행기로 부랴부랴 달렸다.




점거



나와 아내가 신혼여행으로 제주도에 있는 동안 아버지는 시골에서 올라온 친척들을 신혼방에서 묵게 하셨다. 아버님 댁엔 내가 거치하던 방 한 칸의 여유 외에는 없었고, 동네 호텔이나 여관에 재우기엔 형편이 안되었다.


그 신혼방은 빈집이기 때문에, 우리가 신혼여행을 떠나 있는 며칠 동안은 아무라도 지낼 수는 있었다. 문제는 이곳이 신부가 새로운 기대로 결혼생활을 시작할 곳이라는데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 며느리가 떠나 있던 3-4 일 동안 편하게 사용하실 수 있다는 생각을 미리 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냥 남는 공간이 조용히 쉬다가 흔적 없이 떠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그러나, 시골 어른들은 신혼의 요와 이불을 꺼내 깔고 덮으셨고, 담배 냄새로 찌들게 했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는 깊은 실망으로 너무도 쉽게 다가왔다. 


시작이 이 지경인데, 본격적인 결혼 생활엔 더 험난한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며느리에게 지나친 요구를 종종 하셨다. 나에겐 감추면서도 아내에게는 부담 없이 부가시켰던 숙제들이었다. 


겨우 담 하나로 가까이 있으니 아침마다 문안 형식의 방문을 요구한 것이 그 대표적인 내용이다. 이것은 그로부터 2년 동안, 중계동에 13평 아파트를 사서 옮겨가기 전까지 성실하게 지켜졌다. 


한편, 외출하고 돌아오는 날에는 또 다른 요구와 질문에 종종 맞닥트려야 했다. 화장실 창문을 통해 지켜보시다가 계단으로 올라가는 아내에게 다짜고짜 어디 갔다 오냐며 아내를 놀라게도 하셨다. 


화장실 창문이 신혼방 오르는 계단을 향해 나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어야 했다. 조금 신중했더라면 창문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짚어 봤을 것이고, 그렇다면 절대 이곳을 얻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더래도, 창문이 환기의 용도 외에, 외부를 내다보는 목적으로 더 사용되리라고 생각하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설령 신중했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테다.


아내는 분명 이 창문의 역설적 용도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났음을 지금도 토로한다. 그럼에도 당시 나는 그 부분을 별로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우둔했다. 싸움이 될까 봐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 알았다 해도 아들 입장이 다르고 며느리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 우리 둘의 갈등으로 끝났을 수도 있다. 


아침저녁으로 나고 드는 것이 들키는 입장에선 일종의 감옥을 느껴야 했다. 그럼에도 사정을 모르고 지켜보는 사람은 오해를 하기 쉬웠다. 아침 일찍 외출을 하고 귀가 시간이 생각보다 늦는다면 반드시 질문이 날아왔다. 창문을 통하든, 전화를 통하든 어디를 그렇게 오래갔다 왔냐는 질문이다. 그 한마디에 피로감 역시 아들에게 보다는 며느리에게 상상할 수 없이 컸던 것이다. 그 스트레스 정도를 좀 감지하게 된 것은 이 글을 쓰기 겨우 몇 년 전이다.  



선물


아버지께 목도리 선물을 해드렸다. 아버지는 선물에 대해 색깔과 재질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셨다. 선물은 액수 가치와 상관없이 정성에 감사하는 것이 맞다고 알아왔음에도, 이런 상식에 반하는 반응을 바로 신혼에서 돌아오자 마다 목격해야 했다.  


선물과 반응, 그 입력과 출력의 조화가 아름답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선물은 줘서 기쁘고, 받아서 더 기쁘다. 주는 사람은 정성으로, 받는 사람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선물이 그날에는 공식 외의 결과물을 배출했던 것이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최선을 다해 준비해 드렸는데, 받으면서 싫다고 하는 표현은 어떤 뜻을 내포할까 가늠하기에 당시 우리는 너무 경험이 없었다. 그냥 눈물 만이 답이었던 모양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때는 2023년 크리스마스다. 하루 전 성탄 이브에 아이들과 선물 교환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 달 넘게 고민하며 준비한 선물이 예쁜 포장지에 싸여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모두 놓여있었다. 개수가 이 삼십 종류는 족히 넘어, 일인당 최소 다섯, 여섯 개는 받을 수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이때쯤이며 늘 하는 행사라 이젠 발품을 품으며 여러 개의 선물을 한 달 여 동안 준비해 온다. 다 정성이고 사랑이지, 비싸야 한다는 기준은 아예 없다.


아내의 피곤해도 발품을 좋아한다. 꼭 필요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일 선물 교환은 그 한 달간의 성의를 여실히 보여주어 감동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모두 뜨거운 반응과 감사가 넘친다. 


매년 하는 행사다 보니, 받는 선물의 반은 꼭 필요한 것이고, 반은 꼭 필요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받는 사람의 반응은 감탄사의 연발이다. 


"와우~",

"고마워 ~~"

"이건 너무 마음에 들어~"

"진짜 예쁘다~"


꼭 서구인을 추켜세우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지만, 그들의 표현력에서는 배울 점이 많다. 어릴 때 이민 화 1.5세로 살아가는 아이들은 이미 이쪽 문화에 더 익숙해져 있다. 당연히 표현에도 남 다르다.  만사에 남을 기분 좋게 해주는 액션과 멘트로 가득 찬 말들의 잔치를 우리는 이 시간에 다 볼 수 있고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랑과 기대로 준비한 물건을 받는 사람이 거부적이고 갸우뚱한 순간을 상상해 보라.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일이 바로 며느리의 선물을 받아 들 때마다 보이신 아버지의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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