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살아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아니 너무나 잘 살아있다. 약은 일상이 되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잘도 살아있다. 살아있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점점 무뎌지는 것 같다. 나는 살아있을 가치가 있는 인간인가 라는 생각이 결국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었다는 것을 안다. 지난 진료에서는 에너지를 함부로 쓰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에너지를 풀대출해서 쓰는 습성 그런 습성은 에너지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관계에서도 돈에서도 모든 것에서 나타난다. 지금 내가 집중하는 것에 많은 것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는다. 그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하는 건데요? 그렇게 의사 선생님께 반문했다. 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은 약간 당황한 듯이 말씀하셨다. 아 맞다. 나...... 그러려고 병원에 온 건데... 내가 더 이상 나의 힘으로는 삶을 살아갈 수없어서 병원에 와놓고... 지금 물속에서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으로 말했다... 의사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했다. 맞아요 제가 그래서 병원에 왔죠. 변하고 싶어서 병원에 와놓고 의사 선생님께 따지다니.... 지금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는 어느새 있고 이대로인 나를 정당화하려고 하고 있다. 나는 변하고 싶고 나는 살고 싶었다. 그걸 어느새 잊어버린 것이다. 삶은 당연해지고 나는 아직 살아 있으므로
회사가 합병을 했다.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일을 계속하면 되고 나의 일이라는 것이 나는 꽤 만족스러웠다. 늘 일을 찾아서 하는 나는 사서 고생을 하는데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질 때 희열을 느낀다. 어느 정도 자율성이 존재하는 업무가 맘에 들었다. 누구도 나의 일에 간섭이 없었다. 그렇게 어쩌면 관성처럼 일을 해나가고 있었고 합병으로 인해 인원의 방 이상이 퇴사를 하게 되었어도 나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 일은 상관이 있었다. 허탈감과 허무함이 밀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볼 수없다는 것이 이일을 더 이상 할 이유가 사라진 것처럼 다가왔다. 내가 이 회사에 있었던 이유 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사람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들 선한 사람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한다는 게 즐거웠다. 그런데 그분들이 사라진다. 그 부분이 사라져도 난 회사에 있을 이유가 있는 걸까? 적막하다 일할 이유가 사라져 간다. 나는 회사의 부품이 아니라고 스스로 세뇌하고 있었는데 그게 풀렸다. 나는 회사의 부품일 뿐이다. 나도 그들처럼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언제든 잘려나갈 수 있다. 나는 그런 존재이다.
음악이 없으면 숨을 쉴 수가 없다. 어느새 음악은 공간에 꼭 있어야 하는 존재 가 되었다. 일종의 강박이라는 걸 이번 진료에서 알게 되었다. 에너지를 다 써야 한다는 나의 습성도 일종의 강박이라는 것이다. 강박이라는 것이 이렇게 흔하게 존재하는 것인가? 회사에서 옆자리 사람이 ai로 음악을 만드는 수업을 듣고 음악채널을 만들어서 운영 중이었다. 힘들어했다. 조회수가 안 나온다는 것이다. 그때 마침 나의 업무의 틈이 조금 생겼었다. 한번 집착해 볼까? 에너지를 좀 태워볼까?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테스트를 해본다고 음악 채널까지 만들게 되었다. 음악채널이라니? 나는 언제나 음악채널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었다. 늘 유튜브로 음악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음악 채널도 이미 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음악을 선택해서 듣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나만의 음악채널을 만들고 싶었지만 에너지가 없었다. 그런데 약의 효과 때문인지 혹은 에너지를 이제 분배해서 사용하고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하루아침에 음악채널을 만들고 음악을 루틴처럼 올리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눈뜨고 일어났더니 음악채널이 생겼어요. 수준이다. 나는 또 몰입한다. 그렇지만 모든 에너지를 쏟진 않는다. 약의 효과이다. 하루 2시간 이상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렇게 멋진 채널이 되지도 못했고 구독자수도 늘지 않고 조회수도 없다. 그러나 매일 루틴 하게 하고 있다. 요즘은 음악을 올리는 것보다 음악 플레이될 때 나오는 영상 만드는 것에 더 흥미가 생겨서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거기까지.... 더 이상 몰입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젠 다른 음악채널을 들을 시간이 없다. 내가 올린 플레이리스트를 듣는다. 당분간 이럴 것이다. 조만간 떼려 치울 수도 있다. 어느 순간 브런치에 글을 안 쓰게 된 것처럼 어느 순간 블로그에 글을 안 쓰게 된 것처럼 그렇지만 상관없다. 지금 나는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있다.
나는 살아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해내고 있다. 나는 살아있다. 살아있는 것에 감사는 잊고 더 많은 것을 신계 요구한다. 엄마가 계속 꿈에 나온다 창문이 닫히지 않는 집 문을 잠가도 계속 열리는 집에 엄마를 초대한다. 우우리는 불안하다. 폭풍우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없다, 문이 잠기지 않으므로.... 하지만 엄마랑 함께 있다는 안도감이 마음의 평화를 찾게 한다. 엄마가 보고 싶다. 길을 걷다가 작은 키의 고집 있어 보이는 몸짓의 마른 어르신을 보면 엄마가 떠오른다. 잠시 멈춘다. 엄마가 보고 싶다.
난 거창하게 정신건강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공간을 나들어 놓고도 나는 너무 뿌듯해하고 가끔씩 공간에 들어가 본다. 나도 글을 쓰지 않고 아무도 오지 않는 그 공간을 앞으로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우선 만들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나는 살아있으므로 삶의 감사를 망각할 정도로 잘 살아있으므로 커뮤니티 공간도 만들고 음악 플레이리스트 채널도 만들고 회사에 서도 살아남아 잘 지내고 있다.
아직은 살아있는 저를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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