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속사정은 모르지만
평소처럼 숨을 작게 내쉬었을 뿐인데, 속삭이듯 서른 하나다.
나는 잘 안다. 세상을 다 산 듯한 약간의 자조 섞인 멘트는 매년 매해 갱신되고 있음을. 지나고 보면 그 시절의 나를 아주 귀여워하게 될 거라는 것을. 그 몇 개의 귀여운 나이가 켜켜이 쌓여 지금의 삼십대다. 다행인 것은 귀엽지만은 않은 나이인 오늘의 나를 가장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사실. 이쯤이면 잘 살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엄마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 탄 아이는 매일 아침 어른스러운 가방을 메고 출근길에 오르는 어른이 꿈일 것이다. 김밥 한 줄 먹어가며 학원과 독서실을 전전하는 중고등학생은 지독한 입시를 끝낸 대학생이 부러울 것이다. 취업 전쟁에 뛰어든 취준생은 선배들의 몇 없는 합격수기를 찾아가며 희망을 품는다. 프리랜서는 오늘의 할 일이 주어진 직장인이 때때로 부럽고, 직장인은 스케줄 조정이 가능한 프리랜서가 꽤 자주 부럽다. 노인은 꼿꼿이 서 있는 젊은이의 건강한 신체와 찬란한 젊음이 부럽고, 신경성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으로 속이 망가진 젊은이는 더 이상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내 명의의 집이 있는 노인이 부럽다. 물론 여기까진 세상을 플랜 A로만 바라봤을 때의 이야기다.
엄마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 탄 아이의 꿈은 매일 터질 것 같은 지옥철에 몸과 마음을 구겨 넣는 일은 아닐 테니까. 투박해 보여도 멋들어진 가방에 얼마나 많은 무게가 실렸는지 아이는 모를 테니까. 젊은이라고 해서 매일이 즐겁거나 신체가 건강한 것은 아니며 노인이라고 해서 경제적 부를 이뤘거나 내일에 대한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삶을 설령 유추할 순 있어도 재단할 순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결혼이 꿈인 사람에겐 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 친구가 부럽다. 생면부지 모르는 SNS 스타가 좋은 옷에 좋은 차, 좋은 집을 가졌으면 가지지 못한 자는 그게 또 부럽다. 햇볕도 들지 않는 자취방에서 단숨에 한강이 내다보이는 집으로 업그레이드되거나, 수 십억 빚에 허덕이던 연예인이 모든 빚을 청산했다는 기사를 접할 때면 그게 또 부럽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겐 내가, 당신이, 아니 우리가 꿈일 것이다. 속사정도 모르면서 우리가 누군가를 부러워하듯 속사정도 모르면서 누군가는 우리를 부러워한다. 그렇다면 보란 듯이 좀 잘 살아보는 건 어떨까. 실패한 인생이라는 게 없다면, 그럼에도 누군가의 꿈이 나라면, 한 번 실망시키지 말아 보자. 관객이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소문이 현실이 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