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지겹다. 좀 아무렇게나 살자.
꼬꼬마 유치원 시절부터 나는 이타적인 태도가 당연했다. 이기적으로 살면 안 된다고 누가 나를 가르친 것도 나를 몰아세운 것도 아닌데, 남이 조금이라도 곤란하거나 손해 보는 상황이 싫었다.
어디 가서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부모님의 말씀이 어린 시절의 나에게 영향을 줬다기보단 내가 그저 당신들을 닮은 것뿐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던 융통성 없는 나는 남에게 피해 주지 말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직역했다. 그 말이 나에게 손해를 입혀도 괜찮다는 말은 아니었는데. 남에게 하는 싫은 소리조차 남이 입는 감정적 피해로 계산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손해를 입어도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라는 핑계를 만들어 상황을 무마시켰다.
분명 커갈수록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조금 불편하고 말지, 어떻든 간에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순 없었다. 실은 불편함이라고 자각은 했을까. 내 순번이 마지막이 되어도 남에게 양보하는 게 당연했고, 배려받지 못해도 배려하는 게 당연했다.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서 내가 남을 고려하지 않고 온전히 나를 위한 결정을 내리는 건 이기적인 행동이니까,라며 나는 스스로에게 손 한번 내밀어 준 적이 없었다. 남한테는 그렇게도 내미는 손을 단 한 번도.
사회생활도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상사의 기분 나쁜 농담에도 일이 커져 상대방이 불이익을 받는 게 두려워 그저 웃어넘겼고 그러다 지치면 다른 핑계를 끄집어 내 퇴사를 했다. 마땅히 이별을 고해야 하는 순간에도 선뜻 이별카드를 내밀지 못했다. 그의 다음 날 컨디션이 어떨지, 지금 그의 상황이 어떤지, 마지막 순간마저도 상대가 상처받지 않을 타이밍을 쟀다. 내 감정은 철저히 외면한 채.
아, 지겹다. 좀 아무렇게나 살자.라는 생각이 든 건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이기적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내가 암만 이기적으로 굴어봤자 진짜 이기적인 인간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나에게 지금은 너만 생각해도 돼,라는 속삭임을 했다.
여전히 나는 괜찮아,라는 말을 괜찮아?라는 말을 자주 한다. 허나 괜찮지 않을 때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배려가 마땅한 '나'를 부정하지 않는 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니 나 역시 마땅히 배려받아야 하는 사람이구나,를 깨닫게 된 것이다.
종종 이해되지 않는 내 성격에 화가 날 때가 있었다. 근데 그 걸 바꾸려고 하다 보니깐 공연히 미워지는 건 나 자신이었다. 타고난 성격을 완벽하게 바꿀 순 없다. 나를 위한 변화라면 더 나은 나,를 기다려 주면 된다. 천천히, 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