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도댕 Jan 22. 2023

관찰자로 살아갑니다

어딘가에 살고 있을 누군가의

인스타에서, 유튜브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염탐하는 것을 즐긴다. 곁에 누가 있음에도 외롭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는 라디오에서 들리는 말소리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도 뱉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어딘가에 살고 있을 누군가의 하루가 위로가 된다. 혼자가 아님을 깨달았다가 여전히 혼자임을 깨달을 때면 더 깊숙이 외로워진다.


내 20대는 이따금 스스로를 동굴에 가뒀다. 특히 일을 하지 않을 때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는데, 그럴 때면 최소한의 인간관계 이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회사 사정이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2년간 다니던 회사가 해고를 통지한 적이 있다. 작은 중소기업이었지만 팀 전원이 퇴근을 30분 남기고 실직자가 됐다.


한 명씩 개인 면담을 하고 사직서를 쓸 때 대표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도댕 씨한텐 정말 미안해요." 수많은 사건을 한 줄로 요약할 순 없지만 근태불량, 업무태만인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얼마나 성실히 버텨왔는지 알고 있단 반증이었다.



어린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결정임을 이해하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이 나의 노고가 인정받았음을 뜻함에도, 나는 마음속에서 허무함과 분노가 끓어올랐다. 왜 열심히 일한 내가 열심히 일하지 않은 자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거지? 그럼 난 무엇 때문에 열심히 일한거지? 남이 어떻든 간에 난 스스로한테 떳떳하기로 했으니까? 언젠가는 보답을 받을 거니까?


노력의 대가는 실직이었다. 그날 나는 책상 위 짐을 한가득 싸들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백수가 되었단 현실에 그 많은 짐을 들고도 차마 택시는 타지 못했다.



1년쯤 되는 시간 동안 나에게는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인생의 암흑기라고 생각하는 그 시간들 덕분에 나는 많은 걸 얻었다. 그때도 그랬다. 다큐 3일, 유퀴즈온더블록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 걸 즐겼다. 멈춰버린 나의 세상에서 흘러가는 사람들의 삶을 구경했다.


이상하게도 가까운 지인의 괜찮냐는 말 한마디보다 생면부지 모르는 남의 인생이 더 위로가 됐다. 티비 속 저 사람이 잘 살든 못 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찌 됐든 살아내고 있구나,라는 그 사실이 좋아서.



바깥세상은 누가 누가 더 힘든지 순위를 매기는 경쟁 같아서 힘이 빠졌는데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 몫을 해내는 사람들에게는 순위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약간의 위로와 공감만 있다면 다시 또 내일을 살아내듯, 아주 단단해 보였다. 속은 곪아터졌을지라도 겉은 꽤 단단해 보이는 그들의 삶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그러니 필요하다면 타인의 삶을 염탐하세요. 잠시라도 혼자가 아님을 느끼세요. 그리고 그냥 사는 거예요. 실은 혼자 있고 싶지 않은 거잖아요.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면서 실은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은 거잖아요. 그러니 세상 곁에 있으세요. 별 거 없어요. 일단은 그거면 돼요.


이전 07화 고작 30만 원짜리 식탁이 뭐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