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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도댕 Jan 22. 2023

다시 돌아가도 우리는 사랑을 했을거야, 이별을 했을거고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내 20대를 통틀어 가장 사랑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당연히 나는 그를 말한다.


그는 알까. 고작 10개월 만난 너를 내가 사랑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행여 알게 돼도 너는 몰라야 한다. 바람피운 구남친을 사랑했다고 말하는 바보로 기억되고 싶진 않으니까.



2년 가까이 다니는 네일숍이 있다. 극 E성향인 원장님은 그날 처음 말문을 트게 된 나에게 자신의 지난 5년간의 연애사를 읊었다. 연애의 참견을 즐겨보는 나로서도 꽤 충격적인 이야기였는데 그녀는 마치 무용담을 털어놓듯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지금은 너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바보 같이 울며 불며 처절히 사랑했던 그 시절의 기억을 꺼내면서도 이제는 구남친에게 미련 한 톨조차 남지 않았으며 너무나 잘 지내고 있다는 그녀의 말 한마디가 이별 직후의 나에게 적잖이 위로가 되었던 모양이다.



20대의 마지막 이별을 하고 나는 한동안 누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제 막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 틈에 누군가가 비집고 들어 올 공간도, 내어줄 마음도 없었기에 나는 나에게 최선을 다해 집중했다. 한두 번 썸을 타기는 했지만 왜일까 진지한 관계는 겁이 났고 또다시 상처받기 싫어 재고 또 쟀다. 옛날에는 열개 중 서너 개만 좋아도 직진하던 나였는데 한두 개만 마음에 걸려도 빨간 불이 켜졌다.


아, 이래서 나이 들수록 사람 만나기 어렵다는 거구나.



소개팅이라면 고맙지만 미안해,라고 거절부터 하고 보는 내가 밤늦게 대뜸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너랑 너무 잘 맞을 것 같은데 소개받을래?라는 친구의 연락. 자기가 아끼는 남사친을 소개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초입에 들어서 받은 전화 한 통에 웬일로 나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때 그 친구의 남사친이 지금의 내 남자 친구가 되었다.


친구의 확신에 찬 말 한마디에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지금 가장 충만한 사랑을 한다. 내 생애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있다한들 궁금하지 않을 만큼.



사람의 판단력이 가장 흐려지고 감정이 말랑말랑 해지는 이별 전후 단계의 사람은 인터넷에 떠도는 작은 사랑글귀에도, 그다지 친하지 않은 직장 동료의 연애조언에도, 멜로드라마 속 주인공에도, 구태여 찾아 듣는 이별 노래 가사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별 중인 당신에게 한마디를 더 보태자면 당신에게 분명 지금보다 나은 사랑이 찾아올 거라는 말이다.


앞만 보며 잘 가다가 길을 잃어 헤맬지라도, 길 가다 만난 소매치기에 재수 없게 소지품을 잃어버릴지라도, 저 길 끝에 서 있는 누군가가 당신에게 춥진 않냐며 담요를 덮어줄 거라고. 오느라 고생 많았다고 울먹이는 당신을 토닥여줄 귀인을 만나게 될 거라고.



당신이 나의 아주 오랜 친구라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다시 돌아가도 너는 그 사람을 사랑했을 거야, 이별을 했을 거고. 그러니 필연적인 일에 귀한 마음을 끌어다 쓰지 말고 지금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너를 잘 보살펴 줘. 언제 그랬냐는 듯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다는 그녀의 말을 지금의 내가 너에게 하듯이 말이야. 우리 그 순간이 오면 두 손 잡고 함께 기뻐하자. 우리는 겨우 이별을 한 거야. 세상은 조금도 무너지지 않았고 너는 여전히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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