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도댕 Jan 20. 2023

별반 다르진 않아도 행복

수많은 밤이 내게 준 선물

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이듯 우울이 나를 집어삼키는 그런 밤이 있다.


그런 밤이 오면 바깥에선 생기발랄한 내가 방문을 닫으면 왜 우울해지는지, 한참을 생각한다. 하루 종일 핸드폰을 쥐고 있으면서 하지 않는 답장에 대해서도. 기나긴 생각은 또 다른 우울을 낳고 나는 삽시간에 우울한 인간으로 전락해 버린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초등학생 때 의무적으로 쓰던 일기장에 담임 선생님은 내게만 항상 코멘트를 길게 달아주셨다. 빼곡한 일기장에 흰색 여백을 찾아다가 아주 길게.


어릴 때 나는 멍 때리는 게 습관일 만큼 생각이 아주 많았고, 그 생각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조금도 털어놓지 않았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작은 아이가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았는지. 아마도 선생님은 또래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내용의 일기가 걱정되셨던 것 같다. 그 아이가 삼십 대가 된 지금은 자주 행복을 말한다. 그러나 행복을 말하면서도 나는 하루 건너 한 번씩 몇 번의 좌절을 겪는다.



방문 밖에서의 나는 자주 행복을 말하지만 구석 한 켠에 남겨 둔 우울이 꼭 한 마디씩 보탠다. 실은 행복이 의심스럽다고.


무의식의 공간으로 치워버린 나의 고민은 밤새 이어지는 악몽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쉬는 날 하루 종일 먹고 자고 쉬는 것에 초점을 둘 때면 나만 세상에서 도태된 기분에 흥청망청 써버린 오늘의 시간을 후회하기도 한다. 연인과의 다툼에, 회사에서 겪는 마음 불편한 일들에, 내 행복은 자주 의심받는다.



다만 달라진 것은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의 변화에, 일련의 사건에, 내 남은 하루를 망치지 않으려는 노력. 무작정 감정을 덮어 놓는 것이 아니라, 어제 나를 괴롭히던 고민의 하나쯤은 오늘 아침 새까맣게 잊었듯 내일이면 또다시 지나갈 감정임을 너무나도 잘 아는 것.


별 거 아닌 데서 즐거움을 찾는 일은 고민으로 지새운 수많은 밤이 내게 준 선물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내가, 별반 다르진 않아도 내가 찾은 게 행복이라면 그때부터 그것을 보물이라 부르면 된다.


내 곁에, 너무나도 사랑하는 이를 슬프게 하지 않는 방법은 나를 더 이상 슬픔 속에 홀로 두지 않는 것.

내 안에,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를 지키는 방법은 매일 조금씩 다른 무게로 행복을 쌓아가는 것.


이전 03화 N잡러, 저는 거리가 멉니다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