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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19. 2021

엄마의 3대 욕구가 거세된 삶

돌쟁이 엄마가 신생아 엄마를 회고하며 쓴 글

며칠 전,

카페에 갓난아기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독서모임을 함께 하던 회원 한 분이

아가를 낳았다.

그 아가를 본 순간,

새삼스러운 기분과 축하하는 마음 한 구석에

엄마와 아가와 함께 헤쳐나갈 험난한

신생아 엄마의 우울하고 피폐한 삶이

그려지면서 동지애가 느껴지며

혼자 울컥하고 말았다.

인간의 3대 욕구가 거세당한 삶 가운데

당연히 올 수밖에 없는 산후우울증...

이 글은 내가 아가 낳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이 상황에 온전히 처해 있을 때

꼭 쓰고 싶은 주제의 글이었다.

그 당시엔 쓰지 못하고 시간은 흘러

산후우울증 따윈 없는

평온한 육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허나 글로 풀어내지 못한

이 글감은 늘 내 마음에 둥둥 떠 다녔다.

글이 되지 못한 수많은 생각은 아무짝에도

쓸 데 없음을 알기에,

어쨌든 한번 써본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인 3대 욕구가 있다.

식욕. 성욕. 수면욕.

출산 후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있다.

아직 몸 상태가 정상 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내 한 몸 보하기도 힘든 상황에

나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한 존재가 옆에 있다.

이 자체로도 큰 돌덩이를 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

식욕.

먹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

식도락이 삶의 기쁨 가운데 큰 자리를 차지한다.

맛있는 음식 먹으면 기분이 그렇게 좋다.

특히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

청양고추고 와그작와그작 잘 씹어먹는다.

8개월 모유 수유하는 동안

자극적인 음식을 피했다.

내가 좋아하는 매운 음식도 마음 편히 먹지 못했다.

식도락이 쑥 빠져나간 삶에 구멍이 생겼다.

성욕.

아이를 네 명 낳았다.

길게 말하지 않으련다.

넷째가 생기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부부 금슬이 좋으신가 봐요?"였다.

네 명의 아이를 낳을 정도이면

금슬은 분명 좋을 것이다. 아니 좋다.

아이 낳고

특별히 잘못하지 않아도 남편이 밉다.

심신이 지쳐있는데 옆에 오는 것도 싫다.

또 아가가 생길까 봐 무섭기도 하다.

성욕 따윈 싹 가셨다.

그 욕구에 따른 후폭풍이 너무 거대함을

몸소 체험하는 중에는 욕구가 생기지도 않는다.

성욕 없다.

수면욕.

'단 두 시간만 이어서 잠 좀 잘 수 있으면'

신생아 엄마들의 소원일 것이다.

사람이 잠을 푹 못 자면 모든 삶은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친다.

힘든 시기 다 지났다고 할 시기가 바로 아가가 통잠을 자기 시작한

7개월쯤이었던 것 같다.

아가가 밤에 잠에서 깨지 않고 잠을 자니

엄마도 숙면을 취했다.

이게 정말 얼마만의 숙면인가.

임신 중 배가 불러있을 때도 자세가 불편해서 깨고

아가가 자꾸 자궁을 누르니 소변이 얼마 차지 않아도

수시로 화장실에 가고 싶은 느낌이 들어

또 수시로 일어났다.

신생아 엄마는 밤에도 항시 대기.

아가가 '엥~'하면 젖가슴을 내어준다.

아가가 밤에 통잠을 자자

정상인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전까지는 정말 늘 피곤에 절어서

늘 잠이 고파서

아가 잘 때 따라 자고 하다 보니

내 시간도 전혀 없고

겨우 겨우 시간을 버티며

엄마의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수면욕이 가장 큰 데

전혀 채울 수 없는 욕구였다.


인간의 기본적인 3대 욕구가 거세된 삶 속에서 우울하지 않으면 그게 비정상이다. 산후 우울증은 호르몬의 장난인 데다 이 기본 욕구 결핍으로 인한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비몽사몽 간에 새벽에 눈도 뜨지 못한 상태에서 아가에게 젖을 물리고 있으면 '내가 젖소인가, 사람인가' 헷갈렸다. 창밖의 불빛만 봐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정상인 상태였을 때 늘 긍정적이고 밝았던 나는 이런 내 모습이 더 적응이 안 되고 무서웠다.

그래서 난 곁에 있는 남편에게 내 상황을 소상히 알렸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산책 나가서 햇빛 받고 걸으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남편은 건조기를 사주었다. 빨래 너는 행위만 쑥 빠져나가도 집안일이 절반으로 준 느낌이 들었다. 산후 우울증이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내 심신은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고 아가는 자라 점점 '꼬마 사람'이 되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힘든 시기를 현명하게 잘 지나왔다. 가장 힘든 건 내 몸뚱이가 내 것이 아닌 삶 그 자체다. '나'는 없고 오로지 '엄마'라는 역할만 덩그러니 남아 나를 짓누르는 시간들. 내가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이 무력한 존재는 우는 것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엄마는 그 울음에서 아가의 모든 마음을 알아채야만 하는 막중한 임무 앞에 내쳐진 상황.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이 작은 아가가 원하는 걸 들어주고 어르고 달래야 한다. 정상일 래야 정상일 수 없는 시간과 상황들이었다.

그 상황과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 내 기분이 나아질 수 있는 방향을 늘 스스로 결정하고 그렇게 해 왔다. 가장 힘든 시기는 지난 듯하다. 내 몸과 마음을 나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게 좋다. 힘든 시기를 지나고 돌쟁이 엄마가 된 나를 토닥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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