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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20. 2021

아이를 키운다는 건

기쁜 건 더 기쁘고 슬픈 건 더 슬퍼지는 일

막내가 열이 났다. 분유 먹기를 거부한다. 6개월쯤 입원 직전까지 간 적이 있어 덜컥 겁이 났다. 다행히 이번엔 이유식은 엄청 잘 먹는다. 탈수 올 일은 없겠구나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병원에서 지어 준 독한 약을 먹고 다시 기운을 차렸다. 이번엔 셋째가 아프다. 월요일부터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고 있다.


밤새 열이 난 셋째 때문에 둘째도 밤잠을 설쳤다. 첫날은 그냥 둘째도 집에서 쉬라고 했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둘째는 꾀를 부렸다.

"엄마, 나도 머리가 아파요. 민유 안 가니까 나도 안 갈래요."

밤새 뒤척인 나는 둘째와 싸울 기력도 없어서 그냥 가지 말라고 했다. 그게 나의 큰 실수였다.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넷째와 나만 남으면 그래도 숨 돌릴 틈이 있었다. 이제 숨 돌릴 틈도 없이 나를 몰아붙인다. 분유를 타고 있어도 이유식을 먹이고 있어도 둘째와 셋째가 싸운다. 아 진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셋째가 서럽게 울면서 내게 오는 일이 잦아진다. 형아가 때렸다며 눈물을 흘린다. 응징을 위해 형을 소환했다.

"야 신민혁 이리 와 봐! 동생 때렸어?"

그러면서 안 해야 할 말을 내뱉고 말았다.


"이럴 거면 너 어린이집에 갔어야지! 아픈 네 동생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에 지금 엄마가 더 힘들다고!!!!!!"

그 사건에 대한 추궁과 그에 따른 적당한 응징만 했어야 하는데 난 또 내 분노를 가득 실어 그 화살을 아들을 향해 힘차게 쏘고 말았다.


화살을 맞은 아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응징은 이제 나를 향한다.


"그래 내가 나가면 되겠네"


하고 말하고는 둘째가 옷을 주섬 주섬 챙겨 입는다.

"너 나가기만 해 봐.

아주 집에 못 들어올 줄 알아."


둘째는 잠깐 고민하다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아.... 진짜 짜증이 솟구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쫓아 나가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울그락불그락 하는 마음을 살살 구슬려하던 일을 하려고 애썼다. 집안일을 하는데 일이 손에 안 잡힌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동선이 엉킨다. 냉장고 문을 열고 서서 무엇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망설인다.


'아 이런 젠장.'


얼른 옷을 입고 나머지 애 둘 옷 챙겨 입혀서 집을 나섰다. 어라 집 앞에 없다.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혹시 할머니 댁에 갔나?"


할머니 댁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 할머니 집 앞을 서성이다 우릴 보자 도망치기 시작한다. 겨우 겨우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눌러보았다.

주문을 걸었다.


'화내지 말자. 때리지도 말자.'


"민혁아 이리 와. 안 때릴게. 할머니 집 갔었어?"

"응. 근데 내가 띵동 했는데 아무도 없더라. 그래서 못 들어가고 여기 있었어."

"그랬구나. 민혁아 엄마가 그렇게 말해서 속상했지? 미안해. 엄마도 그런 말 하면 안 되는데 너희 세 명 돌보느라 힘들어서 그랬나 봐. 엄마가 미안해."

"엄마, 저도 죄송해요. 민유가 먼저 나를 화나게 해서 그랬는데 앞으로는 그래도 안 때릴게요."


물론, 우리의 화해 모드는 얼마 가지 않았다.

그 후로도 몇 번의 다툼과 화해.


저녁때가 되자 초등학생 딸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넷째 잠든 틈에 난 잠깐 식탁에 앉아 일기를 쓰고 딸은 수학 익힘책 숙제를 하고 있었다. 다 풀고 난 후 나에게 채점을 해 달라며 익힘책을 내민다.

곱셈 단원이었는데 잘 나가다 한 문제를 틀렸다. 명백히 실수임이 분명했다. 실수도 틀린 거라는 생각에 바로 틀린 표시를 하고 넘어갔다. 민아 표정이 어두워졌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아차렸다. 옆 페이지까지 채점을 마치고 나자 민아는 옆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아 왜 그래? 뭐가 문제야?"


이미 하루 종일 남자아이들에게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다 빼앗긴 후였다. 내게 남아있는 거라곤 피로감과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신경뿐이었다.


민아는 신경질적인 내 물음에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엄마가 내가 실수한 문제에 바로 엑스표 해버렸잖아. 선생님이 실수한 거는 다시 지우개로 고쳐도 된다고 했단 말이야."


뒤늦게 아차 싶었다.

"아 미안해. 민아야 엄마는 몰랐어. 엄마 생각에는 실수도 틀린 건 틀린 거니까.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해 버렸네."


후회는 항상 늦고 민아는 이미 화가 나 버렸다.


" 됐어!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아 진짜!"

하고 말하고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린다.


그 순간 민찬이가 자다 깨서 서럽게 운다. 민찬이 달래러 안방으로 달려 들어가 아가를 안았다. 민찬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내 눈에서도 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아 진짜 힘들다. 에이 모르겠다. 엉엉 울어버렸다.


깜짝 놀란 둘째가 쫓아와 우는 나를 안고는 토닥토닥해준다. 그리곤 눈물을 흘리면서 "엄마 울지 마. 내가 이제부터는 엄마 말 잘 들을게." 한다.


긴 하루였다. 주말이라면 남편이라도 있어서 육체노동과 감정 노동을 나눠서 짊어지니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남편도 없는 주중에 하루 종일 아들 셋을 돌보는 일, 숨이 막힐 지경이다. 돌봄 노동에 시달리는 중에 학령기에 접어든 큰 아이의 학습까지 신경 써야 하니 가끔 이 엄마 노릇이 힘에 부친다. 늘 생기발랄했던 난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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