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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16. 2021

이래도 저래도 엄마는 불안하다

생애주기가 다른 여러 아이를 키운다는 건

엄마들은 늘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특히, ‘엄마라면 이렇게 해야지’라는 끝도 없이 펼쳐지는 한 생명체를 향한 무한 책임은 엄마를 더 주눅 들게 만든다. 물론, 첫째 아이보다 둘째, 셋째를 키울 때 좀 더 수월한 것은 분명하다. 앞선 아이들 키울 때의 양육 경험이 아무래도 도움이 되는 듯하다. 하지만 도움은 될지언정 아이마다 성격과 기질이 다르니 그 양육 경험이 무용하다는 말이 또 맞기도 하다.


셋째 때까지는 체력이 받쳐줬다. 입덧이 한창인 임신 초기 기간 동안 힘들었지만 입덧이 끝나고 나면 원래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들 마음껏 하면서 삶을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넷째는 달랐다. 입덧이 끝나 속이 메슥거리는 것만 없어졌을 뿐 기운이 없고 병든 닭 같은 삶이 이어졌다. 매일 누울 자리만 보였다. 한마디로 체력이 저질 체력이 되고 가고 있었다.  


늘 건강을 자부하며 살아왔던 나는 약하고 아픈 몸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또다시 마음에서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아이가 뱃속에 있는 지금도 이렇게 체력이 안 따라주고 힘든데 아이가 세상에 나와 네 명이 되면 정말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짜증이란 감정으로 표출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은 죄책감에 마저 시달려야 했다.


엄마의 역할도 아이의 성장 시기에 따라 분명 달라진다.  


영아기에 엄마는 전적으로 모든 것을 해 줘야 하는 보호자 역할을 한다. 어느 것 하나 아이 혼자 할 수 없기에 아이는 전적으로 엄마에게 의탁한다. 이때 엄마라는 존재는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놀게 하는, 아이에겐 신적 존재다.

1~3세의 걸음마기에 엄마는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면서 영아기처럼 모든 것을 해 주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많은 부분 아이를 대신해서 도와주는 양육자 역할을 한다.

3~7세의 유아기에는 엄마가 기본적인 사회 규칙이나 규범 등을 가르치고 도와주는 훈육자의 역할을 한다.

7~12세의 학령기가 되면 엄마가 해야 할 일은 아이가 스스로 공부나 대인 관계 등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격려자의 역할을 한다.

12~20세의 청소년기에는 인생의 갖가지 고민이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이야기 나누고 조언해 주는 상담자 역할을 한다.

20~40세 성인기 이후에는 엄마는 인생을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의 역할을 한다.  


여기에 따르면, 지금 세 아이 중 큰 아이는 학령기에 접어들었고 둘째와 셋째는 유아기에 속해 있다. 훈육자와 격려자의 역할들 속에서도 매일 좌절하고 아파한다. 그리고 다시 영아기인 아이까지 내 삶에 보태졌다. 엄마는 아이의 성장에 따라 자신의 엄마 역할도 자유자재로 갈아입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더군다나 다둥이 엄마인 나는 그 옷이 여러 벌이니 마음의 부담감은 커지기만 한다.

출처:픽사 베이


지난주는 학부모 상담 주간이었다. 코로나로 전화로 상담을 했다. 세 명의 초등학생 선생님으로부터 연달아 삼일 동안 전화를 받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 목에 가시처럼 걸린 것은 집에서도 학습을 좀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 학습에 대한 무신경과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난 얼굴이 화끈거렸다. 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선생님들께 아이가 네 명이라는 것을 인지 시키며 내가 이 아이 한 명에게 매달릴 수 없음을 변명했다는 것이다. 끊고 나면 마음이 뒤숭숭하고 나 자신이 미워졌는데 그 다음날 또 다른 아이의 담임에게 또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내가 꼴 보기 싫었다.


작년 코로나 상황 속에서 아이들 건강하게 먹이고 입히며 키우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여기며 그 터널을 빠져나왔다. 겨우 한 숨 돌리며 내 삶도 좀 들여다볼까 하는데  이제는 아이들 학습에 아무 관심도 없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하원과 하교로 잠시 고요했던 집이 시끄러워지면 나는 손과 발을 부지런히 놀려야 한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육아와 가사노동이 하루 중 가장 높은 강도로 찾아오고 어쨌든 그 노동들을 해내야 아이들 뱃속이 채워지고 집은 걸어 다닐만한 공간이라도 확보된다. 아침에 아이들이 집을 떠날 때는 분명 다정다감했는데 어둠이 짙어질수록 나는 점점 사나운 엄마가 되어간다.


그렇게 사나워지고 마음속에 짜증과 분노가 도사리고 있을 즈음, 딸아이가 내미는 수학 문제는 눈에도 안 들어오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하는지, 그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마음이 없었다. 나는 공부를 봐줄 여력이 없고 딸의 공부는 점점 어려워지니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의 수학 공부는 학원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 수학 학원까지 더해지니 아이는 얼마 동안은 갑자기 불어난 해야 할 과업 때문에 많이 피곤해하고 힘들어했다. 며칠 동안 신경질이 잦아진 딸내미 비위를 맞춰가며 마음에서 늘 도사리는 화를 겨우 겨우 달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등굣길에 딸은 내 신경을 건드렸다. 오늘따라 막둥이까지 아침부터 징징거려서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공부방 다니니까 피아노 학원이라도 끊어줘. 진짜 힘들어. 엄마가 내 마음을 알기나 해?"

화를 누르며 겨우 듣고 있다가 결국 버럭하고 말았다.

"야 너 공부방도 피아노도 다 다니지 마. 이렇게 맨날 엄마한테 신경질 내고 아주 상전 모시듯 하려니까 엄마도 힘들어 정말!!!!"

"알았어. 나 오늘부터 아무 데도 안 다닐 거니까 다시 가라고 절대 하지 마!!!"


우리의 대화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말았다. 속에서는 '에이 진짜 아무 데도 안 가고 오늘 집으로 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딸아이는 씩씩거리며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고 있었다. 이대로 보내면 정말 모든 게 끝일 것 같아 한 마디 던졌다.


"야 너 나중에 공부 더 어려워지면 엄마 원망하지 마. 엄마는 너 지금 도와주려는 건데 네가 거부한 거야."


속으로는 벌벌 떨면서도 더 당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말도 안 하던 딸이 집 문을 열면서

"나도 힘들어서 그런 건데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학원 갈 거야 가."

딸이 나가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 엄마 세대만 해도 일단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한 문제였다. 더 가난한 세대를 거치는 동안 부모로부터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랐고 교육도 많이 받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 역할이라고 하면 그저 아이 낳아 잘 키우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참고 견디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지금 우리 세대는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엄마를 보고 자라서 마음속에서는 ‘엄마라면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지.’,‘엄마라면 이 정도는 해 줘야지.’등의 우리 엄마 세대가 가지고 있었던 마음과 사회적으로 자신의 능력과 꿈을 펼치고 싶은 자기 욕망이 늘 충돌한다.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내 꿈에 관심을 가지면 이기적이고 한없이 부족한 엄마 같고 그렇다고 아이에게 온 정성을 쏟으면 나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아 억울하고 슬프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한 명 한 명 아이들 각자에게 더 잘하지 못하는 것 같아 주눅 들고  ‘내가 좋은 엄마일까?’ 의심한다. '이럴 거면 왜 이렇게 네 명이나 낳았을까?' 생각하다 우울해지기도 한다. 이래도 저래도 엄마는 불안하지만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지지해주고 토닥여주고 싶다. '애쓴다고 잘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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