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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Jan 13. 2024

이름 부르기는, 마법으로 서로를 구속하기

말놀이로 시작해보세요 (18)

⑰ 이름 짓기  

 

마지막으로 소개할 말놀이는 이름 짓기입니다. 이름 짓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소개가 필요할 것 같지 않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물, 자신이 만든 작품, 아이들과 함께 한 활동이나 놀이에 이름을 붙이기만 하면 됩니다.

     

㉠ 자기 이름 (새로) 짓기

말이 안 되는 글자로 이름을 지어도 좋고(예: 쾅핑쩡),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바를 담아 이름을 지어도 좋습니다. 또는 인디언식 이름을 흉내 내도 좋습니다. (인디언식 이름은 특징과 성격 등을 잘 담아내는 방식으로 짓습니다. 예를 들어, 시련을 잘 이겨내라는 의미로 ‘주먹 쥐고 일어서’1) 라고 지을 수 있습니다.)     


㉡ 자기 주변에 있는 사물(동, 식물)에게 이름 지어주기

장난감, 가방, 신발  등 주변 사물 또는 집과 기관에서 기르는 동, 식물에 이름을 지어주면 됩니다.      


㉢ 자기 작품에 제목 붙이기

클레이 작품이든 종이 오리기 작품이든 무슨 작품이라도 좋습니다. 항상 제목을 붙여주면 좋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제가 찍었습니다. 재활용 통인데 오래된 거라 갈라졌더군요. 그래서 ‘병 담다 병들다’라는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병 담다 병들다 (최연철, 2022년 11월 7일)

    

㉣ 현재 하고 있는 활동이나 놀이에 이름 붙이기

일련의 행동이나 놀이에 대해 이름을 붙일 수도 있지만, 동작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점 한 가지!

(가능하다면)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교사와 부모가 그 내용을 받아 적어주면 됩니다.      


매우 간단하기 때문에 이름 짓기 말놀이에 대한 설명은 이상으로 마치려고 합니다. 다음에서는 이름을 짓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바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이름을 붙인다는 건, 특정 사물(생명체, 현상 등)에 특정 단어(기호)를 강제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특정 사물(생명체)의 됨됨이를 바꾸고 싶다는 희망을 담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씩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대에만 그치면 절대 안 됩니다. 이름을 지어 준 다음에는 돌봐주고 배려하는 행위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헌신하지 못할 바에는 이름을 지어 주면 안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영화, ‘펭귄 블룸’에서는 아이들이 아픈 까치를 집으로 데려옵니다. 이름을 지어 주자는 아이들 제안에 엄마는 반대합니다.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름 지어주고 같이 살면, 정들게 마련이고, 그럼 당연히 돌봐주어야 하는데, 교통사고로 인해 휠체어에서 생활해야 하는 엄마는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영화, ‘펭귄 블룸'의 한 장면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손석구 분)는, 이름 부르면서 키우던 염소가 목으로 넘어가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염미정(김지원 분)은 이렇게 답합니다. “잡아먹을 건 원래 이름 지어주지 않아.” 잡아먹을 거면서 이름까지 붙여준다면 너무 미안할 것 같습니다.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책임을  지겠다는 말입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한 장면


우리 각자의 이름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붙여진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표면적으로는 자신에 대해 말해주는 게 아무것도 없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하나의 이름과 함께 살다 보면, 그 이름에 자신이 담기게 되고, 가족들이 담기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이름을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화, ‘몰리스 게임’의 주인공은, 범죄와 관련된 사람 명단을 검찰에 넘기면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변호사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유죄를 인정하겠다고 말합니다. 왜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지 않았을까요? 단지, 자신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영화, ‘몰리스 게임’의 한 장면


이름을 짓는다는 건, 단순히 단어와 구체물을 강제로 결합하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이름을 짓는다는 건, 지속적인 배려와 관심을 쏟고 사랑을 베풀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짐의 혜택을 받은 자가 자기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닐까요?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기대와 희망을 확인하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자신의 욕망을 확인하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자'가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욕망이, '이름이 불리는 대상'에게 덧씌워지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 1918년~1990년)는, 이를 ‘호명(interpellat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어떤 존재에게 이름을 붙인다는 행위는 그 자체가 결국 상대방을 나의 영역에 꽁꽁 묶어두는 주술이 됩니다. 또한  이름 부르기는 나의 이데올로기를 상대방에게 적용하는 일종의 주술이 되는 것입니다.   

    

‘철자하다.’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spell’에는 ‘마법’이라는 또 다른 뜻이 있습니다. 알튀세르가 호명을 이야기하기 훨씬 이전에 (영어권) 사람들은 ‘이름을 부르는 것’과 ‘마법으로 서로를 구속하는 것’이, 같은 의미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호명과정을 통해 호명하는 자와 호명당하는 자는 마법에 걸리게 됩니다.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연인은 상대방이 건 마법에 서로 빠져듭니다. 그렇게 이름을 불러주고 나면, 상대방은 나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는 존재로 바뀝니다. 마법이 풀려서 헤어지면 마음이 아픈 이유도, 그렇게 컸던 의미를 이제는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때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였으나 때로는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그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이 되기도 하고 또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너의 의미, 작사 김한영 작곡 김창완)’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당신이 날 불러주기 전에는 부르고픈 이름’이 있었지만 지금은 부를 수 없습니다. 오직 당신의 이름만을 불러야 합니다. ‘당신이 날 불러주기 전에는 가보고픈 곳’도 많았지만 지금은 나 혼자 갈 수 없습니다. 당신과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내가 가고 싶은 곳만을 고집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사는 세상에는 더 이상 ‘새는 날지 않고’ 나 또한 이젠 ‘별을 헤질(당신이 날 불러주기 전에는, 산울림)’ 않습니다.

      

그래도 난 슬프지 않습니다. 아니! 너무 행복합니다! 당신이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 지어주기, 그리고 이름 부르기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서로가 마법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이름 짓기로, 아이들과 마법의 세계에 빠져보시면 어떨까요?     




나의 해방일지(JTBC드라마토, 일 16부작, 2022.4.9.~5.29) (12회 2022.5.15(일) 방영분)

몰리스 게임 (Molly's Game, 2017년, 아론 소킨 감독)

펭귄 블룸(Penguin Bloom, 2020년, 글렌딘어빈 감독)     



1) '주먹 쥐고 일어서'는, 영화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 1991년, 케빈 코스트너 감독)에 출연한 매리 맥도넬의 인디언식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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