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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Jan 12. 2024

논어 읽는 제비, 맹자 읽는 개구리

말놀이로 시작해보세요 (17)

⑯ 의성어, 의태어 말놀이 ㉡


처음에는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의성어와 의태어로 시작하지만 익숙해지면 아이들과 함께 창의적으로 의성어와 의태어를 만들어보면 좋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전에 KBS2 개그콘서트의 ‘리얼사운드’라는 코너에서 개그맨 유민상님이 의성어와 의태어를 흉내 낸 적이 있습니다.   

   

“찌개가 끓는 소리 ‘보글보글’, 이상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찌개가 끓을 때는 “무럭무럭우럭무럭 오락가락 카락카락 치치치 잇”이라는 소리가 나고, 큰 솥단지에서 끓을 때는 “푸학으락푸하 그락빡빡빡” 소리가 난다고 하더군요(2015년 10월 4일 방영분).

     

“멍멍”이라고 짖는 강아지는 없다면서, 대형견은 “에프(F)”, 중형견은 “알(R)”, 소형견은 엘(L)이라고 짖는다며 합니다(2015년 8월 30일 방영분).    

  

여러분들도 실제로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과 함께 해보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아이들과 직접 창의적인 의성어와 의태어를 만들어보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사실 쉽진 않습니다. 만들고 나면 재미있는데 만들기까지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개그콘서트 ‘리얼 사운드’ 2015년 12월 27일 방영분)

   

“낙엽을 밟으며(김진영 작사 작곡, 내 마음이 기쁘단다에 수록)”라는 동요에는 낙엽 밟는 소리를 “촉착촉착”, “비삭비삭”, “초국초국” 등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어떤가요? 아이들과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겠죠?

     

다음은 유지희 선생님이 아이들과 만든 의성어입니다.

수박 먹는 소리: 쿠락쿠락

사과 먹는 소리: 스악스악, 사사삭

강아지 소리: 헥헥헥 뢀뢀!! 뢀뢀뢀!!

고양이 소리: 먀아아아오

튀김 소리: 스로르록 습습, 치이이이, 파파, 푸르르르          


‘귀뚤귀뚤.’ 우리가 상투적으로 알고 있는 귀뚜라미 소리입니다. 하지만 ‘찌릉찌릉 찌르릉 찌르릉’ 또는 ‘수쩍 수쩍’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이오덕, 1993: 37쪽). 그리고 송아지를 잃은 어미소가 견딜 수 없이 토해내는 울음소리는 ‘음머’나 ‘음메’가 아닙니다. ‘으우움머 으우움머’일 수 있습니다(이오덕, 1993: 39쪽). 모든 매미가 같은 소리로 우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매미는 여름 여름 울고, 어떤 매미는 씨벌 씨벌 울고, 어떤 매미는 짜리릿짜리릿” 웁니다(안도현, 2015: 26쪽). ‘몇데시벨이라꼬? 몇데시벨이라꼬?’ 이렇게 우는 매미도 있습니다(안도현2015: 105쪽)

     

고전에서 예를 찾아보겠습니다. 연암 박지원님의 귀에는 제비소리가 ‘회여지지(誨女知之),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로 들렸습니다. ‘회여지지(誨女知之), 지지위지지’는 ≪논어≫ <위정>에 나오는 문장으로 “유(제자 자로)야! 내 너에게 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곧 아는 것이다.”로 풀이됩니다(이철, 2011: 343쪽). 우리가 아는 상투적인 표현 '지지배배'가 들어있네요!

    

이수광 님은 한술 더 떠 개구리도 맹자를 읽는다고 말합니다. 지봉 이수광 님은 개구리 소리를 ‘독악락(獨樂樂), 여중악락(與人樂樂), 숙락(孰樂)’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말은 ≪맹자≫ <양혜왕 하>에 나오는 문장으로, ‘홀로 음악을 즐기는 것과 사람들과 같이 음악을 즐기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라는 뜻입니다(이철, 2011: 344쪽). 맹자의 말을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가능하면 개구리 리듬에 맞추어 읽어보세요. 어떤가요? 정말 개구리 소리 같지 않나요?   

   

상투적이고 전형적인 표현에서 벗어나면 훌륭한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창의적으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평소에도 그런 창의적인 표현을 많이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졸음이 어슬렁어슬렁 온다.” 제가 직접 들은 한 아이의 표현입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어슬렁어슬렁 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관례적인 표현을 잘 몰라서 그런 표현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상투적인 표현으로 고쳐줄 필요는 없습니다. 관례적인 표현을 배울 기회는 많습니다.

     

낙엽은 ‘떨어진다’는 말로 연결되고, 코스모스는 ‘한들한들’이라는 의태어를 만나고, 귀뚜라미는 ‘귀뚤귀뚤’이라는 의성어와 결합하며, 단풍은 ‘빨갛게’ 물이 들 것이며, 하늘은 ‘푸른 물감을 뿌리다’는 문장과 조우하며, 황금 들녘은 풍요의 이미지를 데리고 올 것이며, 허수아비는 반드시 ‘참새’를 불러들이고, 추석은 ‘보름달’로 귀결될 것이다. 이렇게 한심한 조합으로 시의 틀을 짜려고 한다면 그 순간, 그때부터 당신의 시는 망했다고 보면 된다.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다. 당신의 시는 상투성의 그물에 스스로 갇힌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안도현, 2009: 40쪽)    

 

상투성의 그물에 갇힐지도 모른다는 고민은 시인만의 것은 아닙니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창의적으로 만들어보는 놀이는, 새로운 생각을 여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안도현(2015). 잡문: 안도현 雜文. 서울: 이야기가있는집.

이철(2011). 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 오래된 지식의 숲, 이수광의 지봉유설. 서울: 알마.

이오덕(1993). 어린이 시 이야기 열두 마당. 파주: 지식산업사.


개그콘서트 ‘리얼 사운드’ (2015년 10월 4일 방영분).

개그콘서트 ‘리얼 사운드’ (2015년 8월 30일 방영분). 

개그콘서트 ‘리얼 사운드’ (2015년 12월 27일 방영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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