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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Jan 26. 2024

‘뻥’에 담긴 소망, 기대, 그리고 바람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좋습니다 (2)

이제 그림책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빠는 뻥쟁이(竹内通雅, 2011)’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아이가 잠 안 온다며 아빠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릅니다. 아이가 조르니까 이야기를 해주긴 합니다. 그런데 아빠라고 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그렇게 재미있는 인생을 살아온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뻥을 치기 시작합니다. 모험을 하다가 상어를 만나고 고래와 마주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려줍니다. 제가 일부러 ‘뻥’이라는 말이 들어간 그림책을 고르긴 했으나 이 그림책이 아니더라도 그림책은 그 자체가 뻥입니다. 그림책은 원래 상상의 산물인데, 상상의 또 다른 이름은 뻥일 수 있습니다.  

   

옛날이야기는 그 자체가 뻥인데, 그 뻥에 또 다른 뻥을 더해서 새로운 뻥을 만든 사람도 있습니다. 안드레아스 크레빌(Andreas Krehbiel)은 잘 알려진 ‘개구리 왕자’ 이야기를 패러디했습니다. 그는 개구리를 포르쉐로 바꾸고, 공주는 게임을 즐기는 ‘게임 걸’로 만듭니다. 독일어로 개구리가 프로슈(Frosch)라는 점에 착안하여 포르쉐(Porsche, 자동차 이름)로 바꾸는 언어유희를 시도했습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공주가 궁중 우물에 앉아서 게임보이를 하다 게임기를 그만 우물에 빠뜨린다. 그때 개구리가 게임보이를 우물에서 건져 주었지만 그 대가로 공주의 절친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친구가 된, 예의 없는 개구리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닥치는 대로 케첩을 뿌리며 난리를 피운다. 화가 치민 공주는 개구리를 벽에 던져버린다. 그런데 개구리가 쭉 뻗었나 싶더니 멋진 포르쉐로 변신했다. 공주는 자동차 사고로 죽기 전까지는 행복하게 살았다. (건국대학교 동화와번역연구소, 2010: 175쪽)     


이번엔 영화 이야기입니다. 영화, ‘빅 피쉬(2003년, 팀 버튼 감독)’에 등장하는 아빠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합니다. 주인공은, 입만 열면 뻥 치는 아빠가 너무 싫습니다. 그래서 자기 결혼식 이후로 한 3년 동안 만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3년 후에 고향집에 돌아와서 아빠를 만납니다.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게 아니고 아빠가 임종을 앞두고 있어서 찾아간 겁니다. 아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그때 아빠 친구에게 아빠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아빠 친구가 말합니다. “네가 태어나던 날, 아빠는 지방 출장 중이어서 너의 탄생을 보지 못했단다. 그땐 지금이랑 달라서 아빠가 여기 있었어도 출산 과정에서 함께 하진 못했겠지만, 그래도 그때 너와 엄마 곁에 없었던 걸 항상 서운해했단다. 너한테 굉장히 미안해했단다. 자, 이제 네가 한번 선택해 보렴. 아빠가 지방 출장 중이었기 때문에 너의 탄생을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해 주는 게 좋겠니? 아니면 멋진 이야기를 꾸며서 너의 탄생을 축복해 주는 게 좋겠니?” 그 말을 듣고 아들은 곧바로 아빠와 화해합니다. 그리고 아빠는 행복한 임종을 맞게 됩니다.


영화, '빅 피쉬'의 한 장면


소설, 그림책, 그리고 영화는 허구이고 거짓말이지만 그 거짓 안에는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신화는 어떤가요? 신화야말로 ‘뻥’으로 일관된 이야기입니다. 정말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신화는, 말 그대로 신들의 이야기이니까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신화에는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의 소망, 기대, 바람이 담겨 있고, 인간의 고통, 슬픔, 아픔이 가득합니다. 신화에도 진실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소설가는 거짓을 통해 진실을 보여줍니다. 이때의 진실은 ‘1+1=2’와 같은 명제적, 정합적 진리가 아닙니다.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주목하지 않았을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그런 진실입니다. 고흐의 ‘구두’를 보면서 그 구두가 겪었을 일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 구두의 주인인 농부 또는 농부 아내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듯이, 만나본 적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소설 주인공의 삶에 대해, 그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행복과 기쁨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 소설가가, 소설이 드러내고자 하는 진실입니다.




건국대학교 동화와번역연구소 (편) (2010). 동화, 콘텐츠를 만나다: 유럽 동화 콘텐츠의 형성과 발전. 서울: 상상박물관.

竹内通雅(2011). 아빠는 뻥쟁이. 서울: 학고재.

빅 피쉬 (Big Fish, 2003년, 팀 버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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