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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Jan 27. 2024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아이들이 사용하면 안 되나?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좋습니다 (3)

아이들이 만드는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의 역할놀이에서도 허무맹랑함이 많이 나타납니다. 난데없이 구급차가 오기도 하고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가상놀이의 ‘추후 대본’1)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만든 이야기 역시 허무맹랑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무맹랑하다는 점에서만 본다면, 그림책이나 아이들이 만든 이야기나 같습니다. 그런데 그림책은 돈을 주고 사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는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왜 그럴까요? 그림책은 이야기의 구조를 갖추고 있는 반면,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냥 허무맹랑하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플롯의 구조를 갖추지 못한 경우도 많고 전반적인 구성이 일관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이야기에서는 서술자의 시점이 예기치 않게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술자의 시점이 바뀔 뿐만 아니라 아예 주인공이 바뀌는 경우도 많습니다. 처음에는 토끼가 주인공이었는데 어느새 아기가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서술자의 시점이 이동하는 건 아이들 이야기만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소설에서도 시점이 이동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매우 드뭅니다. 시점의 이동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1978)’이나 ‘엄마의 말뚝(박완서, 1982)’과 같은 일부 연작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영화에서도 시점의 이동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라쇼몽(1950년,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오! 수정(2000년, 홍상수 감독)’, ‘영웅: 천하의 시작(2002년, 장이머우 감독)’ 등과 같이, 같은 사건을 겪은 등장인물들이 그 사건을 각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다르게 해석하는지를 다룬 영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반적이진 않습니다. ‘500일의 썸머(2009년, 마크 웹 감독)’와 같은 영화에서는, 화면 분할방식으로 주인공의 ‘기대’와 ‘현실’을 한 화면에 나누어서 보여주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역시 드뭅니다.  

   

전지전능한 해결자의 ‘느닷없는’ 등장 또는 기적 같은 사건의 발생 또한 아이들의 허무맹랑한 이야기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이건 아이들 이야기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드라마 ‘펜트하우스 1-3(SBS 드라마, 2020.10.26.~2021.09.10.)’에서는 죽었나 하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과정이 펼쳐집니다. 왜 살아났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 걸 잘 설명해 주는 말이 있습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라는 장치입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 연극무대에서 실제로 사용한 장치이기도 하고 문학작품에서 사용하는 개념상의 장치이기도 합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기계로 만든 신’이라는 뜻으로, (문학작품 안에서) 인간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신이 깔끔하게 해결해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신(으로 분장한 연극배우)이 직접 연극무대로 내려와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고 합니다.


< 출처: Utah Avalanche Center  >

      

아이들 이야기에서는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신이 아니라, 요정이 등장하기도 하고 천사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든, 신비한 능력을 가진 해결자가 모든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한다는 점은 같습니다. 인과관계가 있고 사건의 전후맥락이 분명해야 이야기가 재미있어지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아이들 이야기가 허무맹랑할 뿐이라고 주장해도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박완서(1982). 엄마의 말뚝. 서울: 일월서각.

조세희(1978).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서울: 문학과 지성사.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2009년, 마크 웹 감독)

라쇼몽 (In The Woods, 1950년,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영웅: 천하의 시작 (Hero, 2002년, 장이머우 감독)

오! 수정 (Virgin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2000년, 홍상수 감독)

펜트하우스 1-3(SBS 드라마,  2020.10.26. ~ 2021.09.10.)




1) 유아의 연극놀이나 가상놀이는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추후 대본’이라고 이름 붙여보았습니다. 말 그대로 즉흥적이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상황변화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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