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릿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이야기만 그런 게 아닙니다. 한 이야기 안에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소설이나 영화는 많습니다. 예를 들어,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Sendak, 2017)’의 주인공 맥스는 집이라는 현실 세계를 떠나 괴물들이 사는 환상의 나라로 여행을 떠납니다. 현실과 환상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보면 그림책이나 아이들 이야기나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허무맹랑한 이야기에서는, 현실과 환상을 지속적으로 넘나들지만 그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환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 맥스는 집이라는 현실세계로 반드시 돌아옵니다. 도로시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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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보니 이야기가 복잡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추리소설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메인플롯과는 별개의 서브플롯이 있는 복합구조 이야기라서 복잡한 게 아닙니다. 또한 이야기 속에 또 이야기가 있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어서 복잡한 것도 아닙니다.
현실과 환상을 꾸준히 오가기 때문에 또는 생각나는 대로 ‘마음껏’ 이야기를 펼쳐가기 때문에 내용이 복잡해지는 겁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라는 생각이 절로 나올 정도로 복잡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웬만한 내공이 없다면 아이들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허무맹랑함’ 정도에 대한 판단은 누가 내려야 할까요?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에 스스로 만족한다면! 그렇다면 성인의 관점에서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판단하는 것이 적절할까요?
저는 아이들이 만족한다면, 허무맹랑하다는 어른들의 판단은 접어두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어제 했던 이야기가 오늘 이야기 중간에 갑자기 생각나는 경우도 있고, 예전에 봤던 그림책의 내용이 갑자기 들어갈 수도 있고, 그저께 본 만화 영화 장면이 반영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른의 관점에서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아이들 생각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허무맹랑하다는 판단을 미루고 아이들의 경험에 귀 기울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보다 먼저, 연암 박지원 님의 말에 귀 기울여보면 좋겠습니다.
그의 말이 비록 터무니없이 거짓되어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라도 미리 거짓말이라 단정하지 말고 일단 믿을 만한 말이라고 인정해 주는 것이 어떨는지요? 비유하자면 마치 거짓말쟁이가 꿈 얘기하는 것과 같아서 참이라고 믿어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거짓이라고 이를 수도 없는 게 아니겠소. 다른 사람의 꿈속이라 한 번 달려 들어가 볼 수도 없으니 말이오.(박지원b, 2007: 412쪽, ‘성지에게 보냄’의 내용 가운데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