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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Feb 18. 2024

거침없는 마음, 동심

부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 어떻게 하죠?(12)

동심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예 몇 가지를 연달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배한권 님의 ‘엄마의 런닝구’라는 시입니다. 1993년 이전에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테니, 배한권 님은 2024년 현재 중년이 되셨을 것 같습니다. 배한권 님의 시는 제가 정말 좋아해서 많이 인용하는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엄마의 런닝구 

(경북 부림 6년 배한권) 


작은 누나가 엄마 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만하게 

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만하게 뚫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 쭉 쨌다. 


엄마는 

와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한다 한다. 

엄마는 새 걸로 갈아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이오덕, 1993: 95쪽)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일 뿐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가 보고 들은 대로 썼을 뿐입니다. 그런데 시를 읽으면 눈이 번쩍 뜨입니다. 새로울 게 하나 없는 것에서 새로움을 찾는 마음, 그게 바로 동심입니다.


다음은 연암 박지원 님 글 가운데 일부입니다. 



마을의 어린애에게 『천자문』을 가르쳐주다가 읽기를 싫어해서는 안 된다고 나무랐더니, 그 애가 하는 말이 “하늘을 보니 푸르고 푸른데 하늘 천(天)이란 글자는 왜 푸르지 않습니까? 이 때문에 싫어하는 것입니다.”하였소. 이 아이의 총명이 창힐로 하여금 기가 죽게 하는 것이 아니겠소? (박지원b, 2007: 379쪽)    


아이들 말에 거침이 없습니다. 그 거침없는 마음, 그게 바로 동심입니다.  (그런데 하늘은 푸르고 푸르지만은 않습니다!)


다음은 한 철학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세네갈 수도 다카르의 교회에서 문법을 강의한 때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 동사의 형태는 목적어가 아니라 주어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동사는) 주어의 조종을 받는다고 설명하면서 ‘어린아이가 과자를 먹는다’라는 예를 들어주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선생님, 아니에요. 어린아이가 과자가 맛있어서 과자를 먹는 거예요. 어린아이들은 과자를 보면 먹고 싶어 못 견뎌요. 그러니까 아이들을 조종하는 건 과자예요.” (Galichet, 2019: 8-9쪽)


최연철, 2024. 2. 18. (Midjourney로 그림) - 게임이 아이를 조종하는 거, 맞죠?


주어가 동사를 조종한다고 설명했는데, 한 아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가 동사를 조종한다는 겁니다. 목적어가 과자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새롭지 않나요? 이 새로움,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해체주의적 사고, 그것이 바로 동심의 특징입니다. 




박지원b(2007). 연암집 (중). (신호열, 김명호 역). 파주: 돌베개.

이오덕(1993). 어린이 시 이야기 열두 마당. 파주: 지식산업사.

Galichet, F. (2019). 아이와 함께 철학하기: 명상하고 토론하며 스스로 배우는 철학교실. (강만원 역). 파주: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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