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보고, 거침없이 말하고, 전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 그거 참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되는데 어른들은 (좀처럼 잘) 안 되는 게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카소는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입니다. “나는 열세 살 때 거장처럼 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이처럼 그리기 위해서는 평생이 걸렸다.”
우리는 고정관념을 쌓아가면서 어른이 되어갔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심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심을 박제화시키기도 했습니다. 동심은, 천사같이 아름다운 마음이나 순진무구한 마음이라고 말입니다. 고정관념 때문에 동심을 잃어버리고, 동심 또한 우리들의 고정관념 속에 가두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보여준다고) (제가 생각하는) (어른의) 작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봉은사에 있는 추사 김정희 님의 ‘판전’
봉은사에 있는 추사 김정희 님의 ‘판전’이라는 글입니다. 이에 대한 유홍준 님의 소개를 들어보겠습니다.
<판전>은 파격의 글씨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리숙한 글씨라고 할 정도로 기교가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어찌 보면 어린애 글씨 같은 천연스러움이 있을 뿐이다. (유홍준, 2002: 14쪽)
추사 김정희 님의 ‘판전’과 관련지어 성어 두 개를 말해보려고 합니다. 첫째, 대교약졸(大巧若拙)입니다. 대교(大巧)는 ‘큰 기교’를 뜻하고, 약졸(若拙)은 “서투른 것 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대교약졸은 “커다란 기교는 마치 서툰 것처럼 보인다.”라는 말입니다. 대교약졸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온 말입니다. 1)
둘째, 불계공졸(不計工拙) 입니다. 공졸(工拙)은 기교의 ‘능함(工)과 서투름(拙)’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리고 불계(不計)는 ‘셈하지(따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불계공졸은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2)
성어 두 개를 연결해 보겠습니다. 대교약졸(大巧若拙), 즉 “큰 기교는 마치 서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불계공졸(不計工拙), 즉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추사 김정희 님의 ‘판전’이 그러합니다. 피카소가 평생 노력했다는 ‘어린이처럼 그리기’ 또한 대교약졸(大巧若拙)과 불계공졸(不計工拙)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담긴 부적절한 내용을 수용해 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느라, 부적절한 내용을 단순히 부적절한 내용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는 이야기도 했고, 아이들의 마음이 천사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맨 마지막에는 동심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아이들의 이야기가 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느라, 김정희 님도 모셔오고 피카소 님도 언급했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냥 있는 그래도 받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유홍준(2002). 완당 평전 1. 서울: 학고재.
1) “대교는 자연을 근본으로 함으로써 기(器)를 완성하는 것이며, 인간들은 이것을 최고의 미라고 생각한다. 인위로 기교를 부려서 이상한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졸렬하게 보인다.(大巧, 因自然以成器, 不造爲異端, 故若拙也.)”
2) 작품의 첫머리에 찍는 도장을 두인(頭印)이라고 합니다. 김정희 님은 두인만 여러 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에는 불계공졸(不計工拙)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정희 님의 ‘판전’에는 그 불계공졸을 실천하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