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이 몇 주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행적이 정해지지 않은 지금. 나의 기분은 초조와 불안, 약간의 슬픔과 자기 연민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이다. 문득 여기서 처음 일했던 1년 8개월 전이 생각난다. 딱 8개월 동안만 일하면서 죽으라 박사학위만 마무리 짓고 나가야지 생각했던 나의 다짐은 그 후로 1년이나 계속됐다. 물론 만 3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주 3일 하루 6시간 동안 일할 수 있는 이런 직업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고 있어서 뭉개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안을 찾지 못했다.
이것저것 허우적거리다 뾰족한 대안을 만들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여러 가지 대안을 생각하긴 했었다. 올 3월에는 큰맘 먹고 어느 대학의 사업단 비슷한 곳에 원서를 넣었다. 물론 서류는 특별한 흠결이 없는 이상 일상적으로 다 붙여주니까 면접을 보러 갔다. 아이도 낳고 나이도 마흔을 넘겼는데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기질인가 보다. 청심환을 먹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내가 마지막이라 그런지 면접관이 내가 이야기를 다 하기도 전에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뭔가 급한 볼일이 있나 보다 하고 웃어넘겼지만 결과는 내 바로 앞에 면접을 본 사람의 합격이었다.
어제는 어느 대학의 강사자리 공고가 떴길래 조금이라도 숟가락을 얹혀볼 수 있는 자리가 있을까 싶어 검색해 보다가 그중에 내 전공과 경력에 부합되는 자리가 있어 앞뒤 안 가리고 원서를 접수했다. 강의계획서도 작성해야 한다고 해서 챗GPT와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잔뜩 빌려다 또각또각 키보드질을 한참 하는데 작성하고 보니 학부강의가 아니라 대학원 강의라는 사실을 깨닫고 깜놀해서 접수 취소를 눌렀다. 강의 경력도 전무하다 시피한 나를 누가 뽑아줄까. 그리고 뽑아준다 한들 한때 기 센 학생들 앞에서 상처받아 한동안 괴로워했던 그때의 내가 생각나 다행히 자기 객관화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돌기 시작했다. 현실이다. 급하다고 잔칫날에 거지 같은 옷을 입고 나타날 수는 없다.
그러다 문득, 10여 년 전 어느 날이 떠올랐다.
20대 후반에 잠깐 한 대학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함께 일하던 40대 여성분이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앉아계셨다. 학점은행제 업무를 담당하고 계셨는데 그 자리에서 5년간 일하다 계약해지 통보를 받고 학교 노사단체와 협의를 한 후 결정한 행동이라고 하셨다. 물론 5년 계약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셨다. 너무 열심히 일한 나머지 또 그 분야의 일은 자기밖에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며 계약 해지를 납득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때 나는 그분을 보며 '아 회사에서 몸 받치면 안 되지', '회사와 나는 다른 개체지' 하는 생각을 정말 깊이 했다. 결국 그분은 학교차원에서 다른 일자리를 매칭해 줘서 나가게 되었는데 다음 해 정규직 공채로 들어온 남자 사원이 인수를 받으면서 학점은행제 일 뿐만 아니라 이 부서의 모든 일은 자기 혼자서도 할 수 있을 정도라며 헛웃음을 쳤다. 그분의 착각이었을까. 자신과 직장을 너무 동일시했던 걸까. 일에 너무 매몰되어 있으면 나와 일이 한 몸이 되어 이게 쉽게 분리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보니 내가 딱 그 마음이 들려고 한다.
그러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무리 낯익은 장소도 일도 사실은 나에게 잠시 자리를 내준 것뿐이라는 사실을.. 그 사실을 알고 떠나야 할 시간이 되면 자리를 깨끗이 정돈하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나에게만 주어지는 특별대우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분 좋게 마무리 청소를 해보려고 한다. 그 흔한 한마디,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하나의 문이 열린다는 문장을 붙잡고 오늘도 서운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인수인계 폴더를 클릭해 그동안 했던 일들을 차곡차곡 정리한다. 그동안 뒤도 안 돌아보고 퇴사했던 내가 이리도 마음이 싱숭생숭하다니 이게 바로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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