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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보다 달콤한 비밀

남편을 위한 생일 케이크

by 보석바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 본 사람은 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단순히 ‘만드는 일’을 넘어서, 그 안에 마음이 담긴다는 걸.

그리고 누군가를 생각하며 만드는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달콤하다.

나는 지금, 제과 수업을 들은 지 딱 2주째.

제대로 된 케이크 한 번 만들어 본 적 없으면서 남편 생일에 생일 케이크를 만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니까,

‘이 실력으로? 지금?’

이성은 이미 말리고 있었지만 딸기가 예쁘게 익어가는 이 계절이 그런 결정을 부추겼다.


남편은 늘 나의 실험적인 베이킹을 경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 맞지?”

그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번엔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진짜 ‘먹을 수 있는’ 케이크를.

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수업을 마치고 마트에 들러 딸기를 사고, 다이소에서 고깔모자와 생일초를 골랐다.

아직 굽지도 않은 시트를 떠올리며 마음만 앞서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생일이 이틀 차이다.

동갑내기지만, 그가 이틀 먼저 태어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내가 먼저 태어난 게 다행이지”

내가 '왁'하고 성질부릴 때마다 먼저 태어난 본인이 참는다며 혼자 위로(?)를 하곤 했다.


내 계획은 이랬다.

남편 생일 케이크가 성공하면, 이틀 뒤 내 생일 케이크도 내가 만든다.

그렇게 기억에 남을 일주일을 완성할 것.


집 부엌은 요즘 제과 클래스 못지않게 붐빈다.

오븐, 반죽기, 계량스푼, 스크래퍼, 케이크틀.

도구는 준비됐고, 조금은 어설픈 실력도 오늘만큼은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딸.


이 작은 존재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내가 제과책을 펴는 소리만 나도 달려온다.

“엄마, 오늘은 뭐 만들 거야?”

그 한마디가 참 귀엽다.

물론 엄마로 시작되는 소리를 하루에 서른 번쯤 들으면 귀가 얼얼하긴 하다.

그래도, 함께 케이크를 만들기로 했다.


시트는 실패 확률이 낮은 버터스펀지.

생크림도 준비했고, 오늘은 아이싱도 해볼 생각이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왠지 될 것 같았다.


문제는 늘 욕심에서 시작된다.

‘우유를 살짝 넣으면 거품이 잘 생긴다’는 글을 본 게 생각났다.

살짝,

그런데 그 ‘살짝’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나는 우유를 그대로 쏟아버렸다.

생크림은, 거품이 아니라 포기가 되어갔다.


다시 사 올까 고민했지만, 생크림 가격을 생각하니 쉽게 결정이 나지 않았다.

결국 남은 크림으로 최대한 아이싱을 시도했다.

결과는, 시트 사이로 스며드는 크림.

하얗게 덮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태.

마지막 희망은 딸기였다.


그런데 딸이 말했다.

“엄마 손대지 마. 내가 할 거야.”

그리하여, 딸기 장식은 전적으로 다섯 살 딸의 손에 맡겨졌다.


그리고 완성된 케이크는, 말 그대로 ‘거지 케이크’였다.

정말 먹을 수 있는 게 맞는지, 이번엔 내가 묻게 생긴 모양새.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남편이 돌아온 저녁 7시, 불을 끄고 생일 노래를 틀고,

“서프라이즈!”


그는 케이크를 보고 말 그대로 놀랐다.

아마 감동보다는 충격이 먼저였을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딸을 방패 삼았다.

“우리 딸이 만들었어요! 정말 잘했죠?”


그날 밤, 남편은 조용히 말했다.

“딱히 맛있진 않았는데… 기분은 진짜 좋았어.”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케이크는 실패였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전해졌나 보다.

그걸로 됐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 마음,

이 순간만큼은 케이크보다 달콤한 비밀로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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