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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보다 달콤한 우정

마들렌(마드레드)

by 보석바 Mar 14. 2025

오늘은 벌써 제과 수업 3일 차다. 

뭔가 매일 고정된 스케줄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직장 다닐 때만 해도 이 지긋지긋한 밥벌이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 괴로웠는데 막상 딱 끊기고 나니 그래도 개똥밭에 구를 때가 낫지 않았나 하는 푸념이다.


학원에서 제공해 주는 주차장은 시에서 운영하는 공영주차장인데 1층과 2층은 장애인, 임산부, 전기차 충전소가 있어서 굳이 3층까지 올라가야 한다. 이게 귀찮다. 전기차 충전소 앞에 친환경차라는 말이 작게 쓰여 있어서 여긴 괜찮겠지 하고 주차를 시작했다. 비록 친환경차가 어떤 차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구입한 지 채 1년도 안 된 차가 엔진이 더러워 봤자 얼마나 더럽겠냐 싶어 이게 바로 친환경차가 아닐까 스스로 정의 내리며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땐 전혀 몰랐다. 이 단순한 사고에서 시작된 재앙을... 이곳에 그 정해진 친환경차가 아닌 차를 주차할 시 1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사악한 곳이었다는 사실을....


그것도 모르고 신나게 제과클래스에 인했다. 

오늘은 뭘 만들까 속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들어갔는데 마들렌이라네. 아 신나 오늘따라 왠지 기분이 신난다. 흠칫 둠칫~

우리 클래스에는 귀여운 소년이 한 명 있다. 첫날부터 눈에 띄는 소년이었는데 3일째가 되니 이 친구도 아주 신이 났다. 경훈이라는 아이인데 6학년이라고 했다. 나도 작은 키로 오븐에 팬을 넣는 일이 힘든데 나보다 작고 내 몸무게의 반 밖에 안 나갈 것 같은 친구가 어쩌나 걱정이 됐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오지랖이었다. 경훈이는 천진난만하다. 휴대폰 게임에 푹 빠져서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웃어대다가 갑자기 화를 내기도 하고 암튼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시연을 할 때는 선생님이 휘퍼를 제대로 돌리지 못할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어 눈총을 받기도 하고 설거지를 하러 갈 때나 재료를 계량하러 이동할 때마다 입을 쉴 새 없이 놀린다. 가만히 들어보면 어린애가 끊임없이 아재개그다. 나 혼자 빵 터져 경훈이가 지나갈 때마다 웃참 실패다. 그렇다고 곁을 쉽게 내주진 않는다. 친해지고 싶어 인사를 해도 살갑게 대해주지 않는다. 


그런 경훈이에게 조원들은 참 너그럽다. 너그럽다는 의미는 상황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여기서의 너그럽다는 이런 경훈이지만 조를 바꿔달라고 하지 않는다는 정도의 너그러움일까. 경훈이네 조는 조리학과 대학생 윤조와 지호다. 윤조는 경훈과 비슷한 체격에 작은 얼굴, 까만 피부에 정갈하게 조리복을 갖춰 입는다. 입이 야무진 친구다. 또 지호도 윤조와 비슷한 체격에 이제 25살쯤 되었을까. 어려 보이는 얼굴에 커다란 눈, 오늘은 하얀색 폴로 니트를 입은 모습이 상큼하다. 이 두 여자 틈에 경훈이가 있는데 이 두 여자도 만만치는 않다. 


경훈이의 고사리 손도 설거지를 안 하려거나 공정 중에 힘든 일을 빼려고 하면 어김없이 윤조의 잔소리가 날아온다.

"너 뭐 하냐. 아 진짜. 설거지도 안 해 버터크림도 못해. 너 정말 제대로 하는 게 뭐냐"

"뭐 지금 나한테 그러는 거야. 누나는 뭘 얼마나 잘하는데"

그러면서도 서로 할 일은 한다. 오늘 만드는 마들렌은 제과기능사에서는 마드레드라고 한다. 왠지 익숙지 않다. 홍차와 함께 마들렌을 먹으며 여행을 떠나는 소설이 익숙해서일까. 마드레드는 입에 잘 붙지가 않는다.


여하튼 오늘의 마들렌은 정말 설탕이 사악하게 들어간다. 밀가루보다 좀 더 들어간다. 버터 역시 그렇다. 그러니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생각보다 공정이 많이 어렵진 않은데 특히나 공포의 크림법이나 항상 맞지 않는 비중체크가 없으니 해볼 만하다. 

1. 계란은 잘 푼 뒤 설탕과 소금을 넣고 중탕(~43℃)하고, 버터도 중탕(~35℃)한다.

 (다른 동영상 강의에서는 왜 계란 중탕을 아무도 안 하지ㅠㅠ) 

2. 계란에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잘 섞어 주는데 날가루가 보이지 않을 정도만 섞어준다. 

3. 여기에 버터를 넣고 겉돌지 않을 때까지 섞어준 후 랩으로 감싸서 실온에 휴지 시킨다. 

4. 마들렌 팬에 녹인 버터를 발라 이형제 처리해 주고 균일하게 팬닝 하여 굽는다. 


마들렌은 잘 구워주면 윗부분이 볼록하게 나오는데 배꼽모양처럼 생기는 게 앞뒤로 귀여운 과자다.  

솔솔 버터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오븐에서 꺼내면 오늘도 뭔가 한건 해냈다는 성취감이 느껴진다. 요즘같이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나에겐 최고의 치유약이다. 


"누나 그런데 오늘도 아침 안 먹고 왔지"

"못 먹었지. 우리 집은 아침 먹으려면 5시 30분에 일어나야 돼"

"헥~왜~"

"우리 부모님은 일찍 일 나가셔서 나도 그때 아니면 밥 못 먹어"

경훈이와 윤조의 대화에 좀 놀랐다. 내가 모르고 있던 둘만의 케미가 있었던 걸까. 서로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다. 


경훈은 왜 나한테는 마음을 안 열어주는 걸까. 나도 저런 대화 좋아하는데... 서른 살의 나이차이는 역시 건널 수 없는 강이었던가. 갑자기 나의 꼰대력을 반성하게 된다. 오늘은 집에 가서 홍차에 마들렌을 먹으면서 빈둥빈둥 책이나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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