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득한 브라우니가 완성될 즈음, 나는 결심했다.
“어? 오늘 브라우니 하네.”
학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달콤한 초콜릿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마음이 어지러울 땐 단맛이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심란했다. 채용 면접이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지역 연구원의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지만 사실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연구원이라는 직책이 주는 안정감과 유연한 출퇴근이 매력적이었을 뿐, 이곳이 내게 꼭 맞는 자리인지 확신이 없었다. 게다가, 면접을 앞둔 지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경쟁자는 단 한 명, 그런데 분위기가 그쪽으로 쏠린 듯한 느낌. 갈까 말까 고민하며 결국 학원으로 향했다.
“자, 초콜릿 커버추어랑 버터 중탕 먼저 할게요.”
강사의 말에 따라 큰 볼에 초콜릿과 버터를 담아 부드럽게 녹였다. 불안한 마음이 손끝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이런 날은 칼질이라도 하면 손을 벨 것 같았다.
“무슨 걱정 있어요?”
같은 조 정인님이 다정하게 물었다. 연륜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아, 그게….”
원래라면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을 텐데, 그녀의 따뜻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고민을 줄줄 털어놓고 말았다.
“사실, 오늘 면접이 있는데 준비가 안 된 것 같고, 자신이 없어요.”
“에이, 그래도 한 번 가보세요. 경험 삼아도 괜찮잖아요?”
“근데 이 동네 좁아서 면접 망하면 소문 나면 어쩌죠.”
“그래도 도전하는 거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실패도 쌓이면 맷집이 생겨요.”
생각지도 못한 격려였다.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 어쩌면 내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녀의 말처럼 결과가 어떻든 일단 가보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나는, 우황청심환 한 알을 삼키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예상대로였다.
연구원 면접이라기에 산업경제 관련 질문이 나올 줄 알았는데, 면접관들은 내 학부 전공인 ‘음식’과 직장 경험과 관련된 ‘약학’에 대해서만 물었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다는 느낌도 없었다. 애초에 누군가를 뽑기 위해 진행한 면접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불려간 병풍이었을까.
면접장을 나서자 서운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더 이상 곱씹지는 않기로 했다.
다시 학원으로 돌아오니, 갓 구운 브라우니의 달콤한 냄새가 날 반겼다.
“어? 벌써 왔어요?”
정인님이 내 표정을 살피며 살짝 웃었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브라우니 좀 먹어요. 단 거 먹으면 힘 나잖아요.”
그녀가 건넨 브라우니는 뜨끈하고 찐득했다. 초콜릿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래, 뭐든 한입씩 삼켜가며 살아가는 거지.
그날 이후로 정인님과 나는 찰떡궁합이 됐다.
내가 휘퍼를 찾기 전에 그녀가 먼저 건네주었고, 내가 반죽을 할 땐 그녀가 서포트했다. 정인님이 작업할 때는 내가 곁에서 도왔다.
덕분에 우리 조는 늘 가장 빨리 제품을 완성했다.
“우리, 꽤 환상의 복식조 아닌가요?”
내 말에 정인님이 웃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다가 잠시 쉬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다. 누구에게나 따뜻했고, 사람의 마음을 살필 줄 알았다. 배우고 싶을 만큼.
우리는 제과 클래스를 끝까지 함께했고, 나는 그녀 덕분에 힘을 내며 버틸 수 있었다.
때로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깊은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그날, 나를 다독여준 달콤한 브라우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