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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븐 속의 꿈틀거림

by 보석바 Mar 10. 2025

오늘도 헐레벌떡 쿠킹클래스에 도착했다.

학원에서 제공해 주는 유료 주차장은 학원에서 100m가량 먼 곳일 뿐만 아니라 신호도 2번이나 건너야 해서 편의 제공이라는 말이 무색한 거리다.   

오늘부터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재료를 미리 계량해 두라는 선생님의 지시가 있어 나름 서둘러왔는데도 우리 조 테이블에는 벌써 계량이 끝나 있었다. 아쉽기도 했지만 머쓱함이 더 컸다.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나 봐요."

"아 저도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네.."


어색함으로 물에 버터 돌듯 겉돌던 차에 다행스럽게도 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은 오늘도 긴 머리를 질끈 묶고 알이 큰 안경 너머로 아이라인을 살짝 위로 올려 그려 아주 상큼해 보인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는 게 도대체 몇 년 만인지 기분이 묘하다.

"오늘은 슈를 한번 구워봅시다"

나의 로망 중 하나는 앞치마를 입고 가족을 위해서 요리를 하는 그런 현모양처의 모습이다. 사실 마흔이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음식 하나 해 본적도 할 줄도 모르던 나에게 제대로 된 뭔가를 만든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제과 수업은 한 테이블에 3명씩 조를 지어 작업하는데 우리 조는 23세 민진 씨와 53세 정인 씨 그리고 43세 나 이렇게 셋이다. 이렇게 한 조 사람들이 나이로 널뛰기를 할 수 있을까. 요즘은 나이 물어보는 게 실례라고 하길래 나는 애당초 나이 물어볼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는데 나란히 앉은 둘의 대화소리를 들어보니 민진 씨는 아주 당돌하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나는 53세야"

"아! 그게 아니고 자녀분이 저랑 나이가 비슷하다고 해서요. 자녀분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물은 건데.."

거침없이 나이를 밝히는 정인 씨는 관리를 잘해서인지 나보다 세네 살 정도 많을 줄 알았는데 우연히도 찐 나이를 알게 됐다. 나도 참 이상하다. 나이 말하는 게 뭐가 부끄럽다고,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내가 나이 말하기를 부끄러워했지. 다음에는 나도 당당하게 나이를 말하고야 말겠다라고 생각하는 참이었다.


"오늘 슈는 아주 간단하지만 팔이 너덜너덜해지는 작업입니다"

"아 네.. 한번 해볼게요"

셋이서 하는 작업이다 보니 한 가지를 만들어도 하는 일은 셋이 분담해야 했다. 사실 모두 나중에 제과기능사 자격증 시험을 보려고 모이다 보니 서로 많은 작업을 해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우리 조원들은 다행스럽게도 양보도 하고 물러설 줄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둘은 주부다 보니 모든 게 성큼성큼 한 반면에 민진 씨는 모든 게 조심조심 하나씩 정확히 하는 타입이다. 이 부분이 계속 거슬리는데 뭐 어쩌겠는가. 민진 씨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니 들어야지.  


"이거 제가 해볼래요"

민진 씨는 키가 껑충 크고 뽀얀 피부에 긴 손가락을 가졌는데 손이 매우 느리다. 아줌마들은 벌써 다음 공정을 생각하고 있는데 이 아이는 하나하나 칠판에 쓰여있는 레시피를 읽어보고 질문도 많이 하고 놀라움도 많다.

"아! 그렇게 하는 거였구나"

"아! 아! 아!"

뭐가 그렇게 놀랍고도 깨달음이 많은 건지 나중에는 나까지도 아! 에 중독되고 말았다. 별일 아닌 것에 나도 모르게 아! 를 연발했다. 민진 씨는 서울에서 조리과를 다니다 휴학을 했다고 한다. 물론 다닌 지는 2년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손이 많이 서툴러 보였다.

"도저히 못 버티겠더라고요. 하는 일이 꼭 노동일 같아요. 밤새는 일도 많고 과제하다 죽어요 죽어."

나는 차마 나도 조리과 출신이라는 것을 밝히지 못했다. 민진 씨의 아! 하는 감탄사를 듣고 싶지 않아서다. 물론 이번의 아! 는 감탄이 아닌 탄식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슈는 아주 귀엽고 깜찍한 제품이다. 완성된 제품은 손가락만 한 크기의 미니 양배추처럼 생겼는데 윗부분 반죽이 갈라지면서 특유의 양배추 무늬를 낸다. 오븐에 구우면 작은 유지 방울들이 지글지글 끓고 있는 모습이 너무 탐스럽다. 특히나 슈는 중간에 오븐 문을 열면 폭삭 가라앉아 폭망이니 이 부분을 조심해야 한다.

 

1. 버터와 물, 소금을 넣고 바글바글 끓인다.

2. 잠시 불을 끄고 채 친 밀가루(중력분)를 넣고 섞어준다.

3. 다시 불을 켜고 거품기로 저어주면서 충분히 호화시킨다.

4. 한숨 시킨 후 달걀을 나누어 넣으며 섞어준다. 전완근이 울부짖는다.  

(이때 반죽이 주르륵하고 흐르면 폭망이다. 반죽을 들어 올렸을 때 찢어지는 느낌을 유지한다)

5. 반죽을 짜는 주머니에 넣고 3cm 정도 짜준 후 물을 부어 침지시킨 후 물을 버린다.

6. 오븐에 넣어 굽는데 처음에는 아랫불을 크게 한 후 어느 정도 부풀면 윗불을 세게 해서 굽는다.

7. 식은 후 아랫부분에 구멍을 내서 커스터드 크림으로 채워준다.


오븐에서 슈의 윗부분이 터지는 모습을 보면 킹스맨 2에서 오색빛깔로 머리가 터지는 모습이 떠오른다.

도파민이 분출하듯 슈는 그렇게 꿈틀거리다 더 이상 내 안의 것을 담고 있기 힘들다며 터져버린다. 그리고 더 귀여운 미니 양배추 모양이 된다. 여기에 살짝 분당을 채로 쳐서 윗부분을 하얗게 덮어주면 더욱 그림이 산다. 정진 씨는 도마에 슈를 예쁘게 담고 슈 위에 분당을 채 쳐서 사진을 찍는다.

달걀을 섞느라 탈진한 나는 그런 그녀의 의욕 넘치는 모습을 멍한 눈으로 바라본다. 아무래도 오늘은 집에 가서 좀 쉬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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