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인문학] 돌고 도는 게 인생이지. 순환하는 삶

글쓰기를 좋아하는 도시여자가 시골에 적응해가며 끄적이는 농부되기 프로젝트

by 작가 박신

다시 봄으로, 다시 죽음으로


양파밭이 논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농사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양파를 키웠던 땅은 제초로 벼농사를 시작할 때까지도 그대로 있다가, 모내기를 앞두고서야 부랴부랴 정리된다. 비만 오지 않는다면, 양파를 뽑고 며칠 말렸다가 망에 담아 출하(아니, 출가… 자식처럼 키웠으니)하고 나면 아빠는 바로 다음날 새벽부터 나가 양파밭을 뒤집는다. 로터리를 치고 물을 대면 미처 캐지 못한 양파가 족히 백여 개는 둥둥 물 위를 떠다닌다. 처음엔 아까워서 ‘저게 망으로 치면 몇 개야’ 싶었는데, 부모님의 생각은 달랐다.


“저게 다 거름이지. 그래서 양파밭이었던 논은 벼농사가 거의 실패가 없어. 따로 거름을 할 필요도 없지.”


양파의 죽음이 벼의 풍요로 이어지는 것이라니. 나는 쉼 없이 일하는 땅에게 미안했는데, 부모님은 오히려 ‘땅은 미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쓰며 함께하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농부에게 땅은 신과 같나 보다. 신도 자주 찾고 함께하는 이에게 더 많은 은혜를 내리듯, 땅도 부지런한 농부에게 더 큰 결실을 준다.


땅을 하나의 종교로 보니, 오래전 신앙 안에서 죽음을 체험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십자가를 지고 걷고, 관 속에 누워 죽음을 연습하며 욕심과 자아를 내려놓던 시간들. 울고 부르짖으며 바라던 건 단 하나, 죽음 뒤에 오는 생명이었다. 나는 죽고 그가 사는 인생을 그토록 부르짖었는데, 땅과 농부는 해마다 그리 살고 있다.

죽이고 살리며 행하는 순환. 농부는 양파를 보내고 묻고, 땅은 그 죽음을 받아 다시 벼를 살리는 순환.


죽음과 생명, 고난과 행복이 돌고 도는 순환의 굴레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몇 해 전만 해도 이 순환 속 내가 그저 쳇바퀴 속 다람쥐인 것만 같아서, 꼭 갇혀버린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원은 제자리가 아니다. 점점 커지고, 점점 깊어지고 있다.


우리 삶은 결코 제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믿자.

해마다 벼농사와 양파농사를 짓고 있지만 그 해의 농사와 내년의 농사가 다르고, 농부는 그만큼 자라고 늙고 지혜로워진다.

우리 모두는 평일마다 비슷한 하루를 반복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늙어가는 만큼, 조금씩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음을 믿자.

이것은 슬픈 이야기가 아니다.

살아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오늘도 농사를 짓고, 밥을 짓고, 글을 짓는다.

이것이 곧, 글쓰기를 좋아하는 도시여자가 시골에 적응해 가며 끄적이는 농부 되기 프로젝트의 이야기다.


사계절을 살면서, 순환 속에서 반복되는 이야기들이겠지만 해마다 점점 깊어지고 짙어질..


*에필로그

작년 봄에 시작한 농부 되기 일기는, 올해 초 양파 수확과 함께 다시 논으로 돌아가며 한 차례 순환을 마쳤습니다.

들판마다 벼가 쓰러지지 않고 꼿꼿이 서서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올해 가을은, 이대로만 간다면 작년과 달리 풍년입니다.

거대한 자연의 섭리에 기후환경의 위기 속에서도 이런 풍년이 우리에게 온 것이 기적 같으면서도, 이미 많은 농부들은 자연의 섭리에 자신의 방식을 조금씩 바꿔가며 그렇게 또 자연에 자신을 맞춰가는 것도 같습니다.

다음 순환은 어느 계절에서 시작하게 될까요? 시작을 어디로 보는가에 따라 또 전혀 다른 농부 일기가 쓰일 것입니다. 또 다른 계절의 원 위에서, 우리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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